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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최성훈이 이혼 서류에 사인하지 않은 일은 소윤정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나치게 하얀 얼굴에 허탈감이 스치며 소윤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모르겠어. 강수아와의 사이를 인정해 주면서 이혼해 주겠다고 하는 데 왜 동의하지 않는 걸까? 남자의 자존심 때문인가? 남자들은 체면을 중요시 하잖아. 내가 먼저 이혼 얘기를 꺼내서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하는 거일 수도 있어. 그 사람이 먼저 이혼을 제의했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아니었을 거야.” 이혼 얘기를 꺼냈을 때 최성훈의 여러 반응을 떠올리는 소윤정은 자신의 추측이 맞다고 느꼈다. “분명히 그럴 거야. 최성훈처럼 성공한 사람은 자신이 버리더라도 먼저 내쳐지는 건 원하지 않을 거야. 얘기 좀 잘해서 먼저 이혼 얘기를 꺼내게 할 걸 그랬나 봐.” 소윤정은 말하며 캐리어 안의 옷을 하나씩 꺼내어 옷장에 걸었다. 백은지가 다가와 함께 옷을 정리하며 소윤정의 추측에 반박했다. “윤정아,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생각해 봐. 최성훈도 이혼하고 싶었으면 이혼 서류를 너한테 주면 되잖아. 강수아가 돌아오는 순간 내밀면 됐을 텐데 지금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었을까? 굳이 지금까지 기다려서 네가 먼저 얘기하게 할 필요는 없었어.” 소윤정은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최씨 가문에는 지금까지 이혼 스캔들이 없었다. 최태수는 가문에서 이혼 스캔들이 일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최씨 가문의 둘째인 최성현이 이혼했을 때 최태수로 인해 가문에서 쫓겨나고 지금까지 들들 볶이는 중이었다. ‘최성훈이 자발적으로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는 건 설마 그 상황이 두려워서 그러나?’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하자. 어차피 이혼 서류에 사인했으니 너는 이제 이혼했다고 생각해 줘. 하준의 양육권에 대해서는 할아버님이랑 얘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아.” 백은지가 혀를 차며 답했다. “윤정아, 그 생각은 단념해. 하준이가 지금 최씨 성을 달고 있는데 최성훈의 친자식이 아니더라도 할아버님께서 이미 하준이를 최성훈의 친아들로 여기고 있는데 네가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아? 설마 양육권 때문에 하준이의 비밀을 폭로할 거야?” 소윤정의 말문이 막혔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사생활을 남에게 드러내는 취미가 없었고 특히 하준의 일은 더욱 그러했다. 아이는 그녀의 생명줄이었고 하준이에게 해가 되는 일이라면 그 무엇도 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준이의 비밀을 폭로하여야 최태수가 이혼을 허락해 준다면 소윤정은 차라리 지금 상황을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다면 적어도 하준이는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다. 최성훈에게 외면받고 그에게 미움받더라도 소윤정은 기꺼이 그 상황을 감내할 수 있었다. 어떤 상처는 혼자 보듬을 수밖에 없었다. 백은지가 짐 정리를 도와주고 소윤정을 위해 이부자리도 깔아줬다. “너랑 하준이는 당분간 여기서 살아. 뭐가 부족한지 보고 부족하면 아래에서 사자.” 소윤정과 최성훈 사이의 일은 백은지가 나서서 뭐라 하기 어려웠다. 백은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조건 없이 소윤정을 지지하며 그녀가 좀 더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소윤정이 고개를 저었다. “급하지 않아. 우선 일자리 좀 알아봐야지. 스스로 나랑 아이를 돌볼 능력을 갖춰야지.” 최성훈과 결혼한 이후, 그녀는 집에서 남편 뒷바라지를 하며 아이를 키우는 것에 집중했지 하루도 일한 적이 없었다. 이혼 후 그녀는 자신과 하준을 먹여 살려야 했는데 직업이 없다는 것을 말도 안 됐다. 백은지는 그녀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쇠를 챙겨 신발을 갈아 신고 그녀의 팔짱을 끼고 함께 집을 나섰다.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급하지만 일상용품도 필요해! 먼저 일상용품 갖추고 나서 일자리를 찾아야지! 일자리 찾는 일도 중요하지만 급해한다고 해서 바로 찾아지는 건 아니잖아. 안 그래?” 백은지는 소윤정에게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그녀를 끌고 마트로 향했다. 소윤정이 하준을 임신했을 때는 대학교 2학년이었는데 이제 막 스무 살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전업주부가 되어 하루도 출근해 본 적이 없었다. 마트에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격세지감이 들었다. 소윤정은 사회와 단절된 지 너무 오래되었다. 지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는 호의호식하며 살았고 최성훈의 눈치만 봤지. 세상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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