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집안의 막내인 최지민은 여현아의 뜻대로 오냐오냐하며 키웠고 최성훈도 여동생을 유난히 아꼈기에 제 멋대로인 응석받이로 자랐다.
그래서 최지민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물건은 반드시 눈앞에서 치워버렸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욕설을 퍼부었다. 아니면 화를 내고 한바탕 때려 부쉈다.
최지민의 방에 있는 물건들은 항상 그녀의 화를 피하지 못하고 망가졌기에 기본적으로 보름에 한 번씩은 모두 교체해야 했다.
오늘 강수아가 손님으로 방문했을 때, 그녀는 강수아에게 잘 보이려고 소윤정의 험담을 연신 퍼부었다.
그리고 소윤정이 돌아오자 그녀에게 한 마디 쏘아붙여 강수아 앞에서 얼굴을 붉히게 했다.
최지민은 강수아 앞에서 체면을 세우기 위해 일부러 그녀를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했다. 그리고 이 기회를 빌려 소윤정을 곤란하게 만들어 강수아에게 웃음거리를 선사하려 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소윤정, 그 천한 년의 편을 들었고 게다가 최지민더러 기도실로 가서 무릎 꿇고 반성까지 하라고 했다.
순간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던 최지민은 화살을 소윤정에게 돌렸다.
그리고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외부인 하나 때문에 자신을 억울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방금 숨을 돌린 최태수는 또다시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그는 한 손으로 최지민을 가리키며 다른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은 채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소윤정은 최태수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까 봐 서둘러 그의 곁에 다가와 마사지도 하고 혈 자리도 문지르며 땅에 발붙일 새 없이 바삐 돌아쳤다.
“할아버님, 지금은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셔야 해요. 절대 노하시면 안 돼요.”
“우리 귀여운 하준이를 위해서라도 진정하셔야 해요.”
이 집안에서 소윤정을 진심으로 아끼고 가장 걱정해 주는 사람이 바로 최태수였다. 비록 최지민이 미웠지만 무엇보다 최태수가 무사하기를 바랐다.
최지민이 여전히 쉴 새 없이 최태수를 자극하는 모습을 보며 소윤정은 매서운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아직도 할아버님을 자극하고 싶어?”
“할아버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최씨 집안에서 소윤정은 항상 조용한 태도로 감히 큰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를 그림자처럼 잠잠히 보냈다.
바로 조금 전, 소윤정은 처음으로 사나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마치 먹잇감을 사냥하려 하늘로 날아오른 매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곧게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본 최지민은 심장이 덜컥댔다.
최지민은 소윤정에게 그토록 사나운 면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조금 전의 눈빛만으로 그녀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최지민은 소윤정의 눈빛에 깜짝 놀라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행히 최태수는 이미 회복되어 호흡도 제법 평온해졌다. 그는 소윤정의 손을 꼭 잡고 거듭 탄식했다.
“윤정아, 이 할아버지는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네 도움을 받는구나.”
“조금 전 일은 할아버지가 네게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구나. 네가 아니었다면 저 머리 검은 짐승 때문에 화가 나서 죽었을 거야.”
최태수는 정상상태를 회복한 후 더욱 어두워진 눈빛으로 최재용을 바라보았다.
“최씨 집안 자식들이 다 지민이처럼 되면 이 집안에 미래가 있겠어?”
최재용은 아버지의 실망한 눈빛을 보고 곧바로 최지민에게 다가가 밖으로 끌고 나가며 말했다.
“어서 기도실로 가서 무릎 꿇어!”
최지민은 여현아를 다급하게 바라보았다.
“엄마, 나 좀 도와줘!”
여현아가 딸을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려는 찰나, 강수아가 털썩 하고 최태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할아버님, 다 제 잘못이에요. 지민이는 그저 저를 대신해 불평했을 뿐이에요.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다 저 때문에 일어난 거니 벌을 주려거든 저를 벌하세요. 지민이와는 아무 관계 없는 일이니까요.”
“지민이가 아직 어려서 할아버님께 대드는 거니 아량을 베풀어 지민이와 똑같이 굴지 마시고 저를 벌하세요.”
최성훈은 무릎을 꿇고 최태수에게 애원하는 강수아를 바라보았다. 그의 수려한 얼굴에 가슴 아픈 기색이 떠 올랐다.
최성훈은 곧바로 강수아의 옆에 다가가 그녀를 부축하여 일으키고 품에 안으며 말했다.
“수아야, 뭐 하는 거야?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네가 아니야!”
깔끔한 셔츠가 구겨져 주름이 잡히고 넥타이는 비뚤어졌지만 최성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쌍의 매력적인 눈망울에는 강수아만 담고 있었다.
강수아는 부축되어 일으켜졌는데도 여전히 무릎을 꿇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성훈 씨,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지민이를 탓할 수 없어.”
다행히 힘이 센 최성훈이 그녀의 연약한 몸을 바로 세워주었다.
“수아야, 몸도 좋지 않으면서 이러지 마.”
최지민은 자신을 위해 최태수 앞에 무릎을 꿇은 강수아를 보며 조급한 듯 외쳤다.
“할아버지, 수아 언니를 탓하지 마세요. 다시는 그런 나쁜 말 하지 않을게요. 언니를 탓하지 마세요!”
“아빠, 이것 좀 놔 줘요. 아빠가 수아 언니를 혼내지 않는 한, 아무 말 하지 않고 얌전히 살겠다고 약속할게요.”
여현아는 황급히 최재용의 손에서 딸을 끌어당겨 자신의 뒤에 세운 뒤 굳게 감쌌다.
그리고 매서운 눈길로 최태수를 부축하고 있는 소윤정을 쏘아보며 말했다.
“윤정아, 이제 만족해? 네가 원하는 걸 이뤘잖아!”
최성훈의 날카로운 시선이 따라와 소윤정에게 내려앉았다.
허공을 가른 남자의 눈빛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소윤정의 몸을 향해 한뼘 한뼘 휘두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소윤정의 가슴을 극심한 아픔에 잠기게 했다.
소윤정은 물러서지 않고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최성훈과 시선을 맞추었다. 그녀의 눈빛은 맑고 태연했다.
“어머님, 농담도 여전하시네요. 제가 어떻게 결실 없는 결말에 만족할 수 있겠어요?”
소윤정은 최성훈을 사랑했기 때문에 최씨 집안의 모든 사사로운 것들도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최씨 집안 모든 사람의 경멸과 조롱을 묵묵히 견뎌왔다. 그녀는 한 번도 반항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혼 합의서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던 순간부터 그녀는 더 이상 최성훈을 사랑하지 않기로 다짐했기에 그의 가족들도 더 이상 봐줄 필요가 없었다.
소윤정은 맑은 목소리로 한 마디씩 또박또박 뱉어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또렷하게 들을 수 있을 만큼 선명했다.
소윤정은 입꼬리에 희미한 웃음기를 띈 채 도발적인 눈빛으로 최성훈이 부축하고 있는 강수아를 바라보았다.
“외부인인 수아 씨가 최씨 가문의 집안일에 끼어들 자격이 있나요?”
“우리 아가씨는 사지가 멀쩡해도 머리가 단순해서 그런 말은 할 줄도 몰라요. 혹시 수아 씨가 가르쳐 준 거예요?”
소윤정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굳어버릴 만큼 파장이 어마어마했다.
특히 강수아.
그까짓 속셈은 그 자리에서 소윤정에게 들통이 났다. 강수아는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뺨을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강수아는 최성훈이 자신을 오해할까 봐 급히 그에게 설명했다.
“성훈 씨, 그런 거 아니야. 윤정 씨가 헛소리하는 거야. 나는 최씨 집안일에 간섭하려는 게 아니야. 그리고 자매처럼 가까운 사이인 지민이에게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가르칠 수 있겠어?”
최성훈은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위로의 미소를 지었다.
“나는 널 믿어!”
그 간단한 말 한마디가 당황한 강수아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녀는 기침을 몇 번 하더니 순순히 최성훈의 품을 파고들었다.
이 광경을 소윤정은 고스란히 목격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마음은 산산조각 나서 다시는 복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혼이 가장 올바른 선택이라는 확신도 점점 더 커졌다.
최지민이 큰 소리로 외쳤다.
“소윤정, 뭐라고 계속 짖어대는 거야? 수아 언니를 모욕하는 걸 내가 언제 허락한 적 있어? 수아 언니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야! 그만 짖어 대!”
최지민은 심지어 소윤정에게 달려들어 때릴 기세까지 보였다.
만약 여현아가 잡아당기지 않았다면 진작에 달려들었을 것이다.
소윤정은 그녀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본 후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너같이 큰 똥 덩어리는 처음 봐서 너무 신나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