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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소윤정이 자리에 앉는 순간, 최지민이 그녀를 향해 흘끗 시선을 던졌다. 의기양양한 눈빛이었다. “수아 언니, 언니랑 오빠는 정말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예요.” 오늘 오전, 소윤정은 최지민이 호텔에서 찍힌 사진을 빌미로 반격했다. 최지민은 당시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랐다. 오후 내내 참았던 최지민은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강수아를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하고 일부러 도우미를 시켜 강수아의 자리를 최성훈의 옆에 마련하여 소윤정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었다. 최지민이 보내는 시선을 의식한 소윤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돌려 하준을 바라보았다. 이혼 합의서에 서명하던 순간부터, 최성훈은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서 죽은 사람이 되었다. 소윤정은 이 사랑 없는 결혼 생활에 이미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부터는 최성훈 옆에 앉아 있는 여자가 누구든 그녀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소윤정과 최성훈은 더 이상 어떠한 관계로도 묶이지 않을 테니. 그래서 그녀는 더 없이 침착하게 행동했다. 최지민의 도발을 보면서도 반격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마음이 잿더미처럼 사그라진 소윤정에게 하준이를 빼고는 에너지를 낭비할 만한 일이 존재하지 않았다. 최지민의 말을 듣는 순간 강수아의 새하얀 볼에 홍조가 떠 올랐다. “지민아, 그렇게 말하지 마!” 당황한 강수아는 겁에 질린 토끼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그 모습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최지민의 말을 들은 최성훈은 소윤정의 반응이 궁금해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소윤정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최지민의 도발적인 말을 듣지 못했다는 듯 눈을 내리깔고 조각상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최지민은 자신이 소윤정을 자극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속이 쓰렸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 “수아 언니, 앞으로는 매일 우리 집에 와서 식사해요. 봐요, 언니가 우리 집에 오니 오빠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잖아요. 평소에는 수억 원의 빚을 진 사람처럼 어두운 표정이던 사람이 말이에요.” 소윤정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부드러운 눈길로 하준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에는 자애로움이 가득했다. 소윤정은 최지민의 자극을 모두 한 쪽 귀로 흘려버렸다. 그녀의 심장은 이미 부서진 지 오래였다. 만약 스스로 다독이며 강해지지 않는다면 이혼 후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설마 최성훈이 없다고 삶을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최지민의 말은 소윤정을 자극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허씨 집안의 어르신 최태수의 주의를 끌었다. 상석에 앉은 어르신은 모든 사람의 움직임을 한눈에 간파하고 있었다. 최태수는 손녀의 눈빛에서 도발하려는 의도를 보자마자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 “지민아, 뭐 하는 짓이야? 너 새언니한테 말하는 태도가 왜 그래?” 최태수는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시끌벅적하게 보내는 시간을 좋아했다. 평소에도 최지민은 조금 제멋대로 하는 경향이 있었고 때에 맞지 않은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늘... 그 자리에 손님이 있는 데도 면전에서 공개적으로 소윤정을 도발하니 최태수의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 그리고 소윤정이 서운해도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고개 숙인 채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 그는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최태수는 공연히 최지민을 지목했다. 여현아는 자기 딸만 나무라자 서둘러 최지민을 대신하여 변명했다. “아버님, 그냥 애들끼리 말다툼하는 거예요. 별일 아니니까 내버려두세요.” 최태수는 가볍게 ‘흥’하고 코웃음 쳤다. 그의 흐릿했던 눈빛이 순식간에 사나워졌다. 날카로운 시선이 여현아의 얼굴로 내려앉았다. “애들끼리 말다툼하는 거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 “재용아, 너도 그렇게 생각해?” 최재용은 평소 업무로 바빠 낮에는 거의 가족을 마주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저녁에만 최씨 집안의 식사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로 인해 자기 딸이 평소 어떤 모습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조금 전 최지민이 강수아를 칭찬할 때, 그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최지민이 소윤정을 대하는 태도와 최태수에게 지목되는 것을 보며 그는 일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지민아, 언제부터 그렇게 공격적으로 변했니?”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동시에 핀잔을 받은 최지민은 불편한 마음에 손에 쥔 젓가락을 그릇에 세차게 내리쳤다. “어딜 봐서 내가 공격적이라는 거예요?” “우리 오빠랑 수아 언니가 죽마고우인 건 분명한 사실이잖아요. 소윤정 씨가 갑자기 끼어들어 오빠를 빼앗기 전까지는 끈끈한 사이였단 말이에요. 다들 수아 언니의 마음은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수아 언니가 오빠를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오빠와 헤어지고도 다른 사람을 찾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외롭게 보냈다고요. 도대체 언니가 뭘 잘못했는데요?” “다들 양심에 털이라도 난 것 아니에요? 나는 뭐 올곧은 양심도 가지면 안 돼요?” “소윤정 씨가 최씨 집안에 베푼 그까짓 은혜 때문에 수아 언니와 우리 오빠가 누릴 평생의 행복을 빼앗아 버렸잖아요. 다들 왜 그렇게 매정해요?” “수아 언니를 대신해 몇 마디 하소연하는 것도 안 돼요?” 말하다 보니 최지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최태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은 네가 새언니를 대하는 태도를 얘기하는 거야. 무엇 하러 옛날이야기까지 꺼내는 거야?” “재용아, 딸아이 단속 좀 제대로 해. 갈수록 철이 없어지니 말이야!” 최재용은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기 딸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민아, 새언니한테 그렇게 버릇없이 굴면 안 돼.” 최지민이 초조한 모습으로 말했다. “내 마음속에서 소윤정 씨는 한 번도 새언니였던 적 없어요! 수아 언니야말로 새언니란 말이에요!” “남의 남자를 빼앗아 가는 저런 여자는 새언니가 아니란 말이에요!” “소윤정 씨가 수아 언니보다 나은 게 뭐예요? 다들 왜 수아 언니의 좋은 점은 보지 않는 거예요? 왜 저 여자만 감싸고 돌아요?” 마지막 말은 하면서 최지민은 눈물을 흘렸다. 강수아는 서둘러 그녀의 어깨를 잡고 안아주었다. “지민아, 날 위해 불평할 필요 없어. 난 괜찮으니까.” “그저 성훈 씨의 마음속에 내가 있는 한, 서운함을 느낄 일은 전혀 없으니까.” 탁... 최태수는 수저들이 튀어 오를 정도로 세차게 식탁을 내리쳤다. “지민아, 지금 내 말에 토를 다는 거니?” 최지민은 눈물을 머금고 자리에서 일어나 상석에 앉은 최태수를 고집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맞아요! 저는 할아버지께서 한 마디로 단정 짓는 걸 견디지 못하겠어요!” “오빠의 결혼은 오빠가 알아서 결정할 일이지 할아버지가 이래라저래라 할 일이 아니잖아요!” 최지민의 말은 최태수의 화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가슴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소윤정은 상황을 알아채고 서둘러 구급상자를 찾아온 뒤 우황청심환을 꺼내어 최태수의 입에 넣어드렸다. “할아버지, 진정하시고 절대 흥분하지 말아요. 편안한 마음으로 계셔야 해요.” 최성훈은 휴대전화를 꺼내 즉시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재용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식사를 멈춘 뒤 급히 다가가 최태수의 상태를 살폈다. “아버지, 좀 어떠세요?” 최태수는 최재용의 손을 잡고 한동안 가만히 있더니 담담하게 몇 마디를 뱉어냈다. “죽을 정도는 아니야.” 한바탕 난리가 난 후, 정신을 차린 최태수는 다시 상석에 앉았다. 하지만... 최태수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초췌함이 묻어났다. 최태수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최재용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민아, 오늘 네가 한 짓은 너무 지나쳤어!” “이따가 기도실로 가서 무릎 꿇고 반성해.” 자신이 준 벌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한 최재용이 고개를 돌려 최태수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이 정도 처벌이면 괜찮을까요?” 최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이더러 기도실에서 무릎 꿇고 반성문 3천 자를 써서 나에게 가져오라고 해. 다 쓰기 전에는 잠도 재우지 말고 밥도 주지 마!” 순간 최지민이 발끈했다. “아빠, 외부인 하나 때문에 딸인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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