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이정오가 끓인 컵라면 냄새에 사람들의 시선이 단번에 이쪽으로 집중됐다.
얼굴이 핼쑥하고 몸이 깡마른 사람들은 이정오가 든 컵라면에서 김이 폴폴 나는 것을 보며 마치 홀린 듯 입을 벌렸다.
그들의 눈에는 음식을 향한 갈망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향긋한 음식 냄새에 사람들은 눈을 떼지 않고 구경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멀리서도 다 들릴 정도였다.
지금 이곳의 분위기는 만약 누군가가 컵라면을 빼앗으러 달려들면 나머지 사람들도 일제히 달려들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이정오는 장기간의 굶주림에 눈동자가 탁해지고 에너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각성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그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정오는 한숨을 내쉬며 차라리 그들이 컵라면을 볼 수 없게 몸을 돌렸다.
“저 사람들 우리한테 달려들지는 않겠지?”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은 시선에 두려워진 전혜진이 아이를 꼭 끌어안으며 물었다.
아이는 분유를 먹어서 그런지 아까보다는 한결 편한 얼굴이었다.
“그러지 못할 거야.”
이정오가 조금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한번 훑었다.
그 눈빛에 겁을 먹은 사람들은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시선을 두 사람에게서 떼지 않았다.
서준수는 텐트 하나에 잔뜩 몰려있는 아이들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이 아이들은 모두 부모가 없는 고아들이었다. 이제 그들을 챙겨줄 사람은 이곳 어른들밖에 없었다.
“형님, 아이들은 아직 나뭇잎을 소화하지 못해요.”
안지호가 다가와 말했다.
그들과 같은 군인들은 대부분이 각성을 거쳐 독이 든 나뭇잎을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장기간 나뭇잎을 섭취한 일반인들은 갖갖은 형태로 몸에 그 영향이 나타났다.
일반인들도 이러니 아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여기 있는 것들 아이들한테 나눠줘.”
서준수가 음식을 하나둘 꺼내는 것을 본 안지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혀, 형님, 이거 다 어디서 나셨습니까? 음식도 그렇고 물까지!”
“우와, 음식이다!”
아이들은 음식을 보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얘들아, 나한테 금과 같은 돈이 되는 물건을 주면 언제든지 이런 음식들을 먹을 수 있어.”
아이들은 금을 달라는 말에 갸우뚱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서 금은 아무런 가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음식을 얻을 수 있다는데 굳이 이유까지 물을 필요는 없었다.
“네, 그럴게요!”
공간이 크지 않아 서준수는 음식 대부분을 다 나눠준 후 스스로에게는 아주 조금의 음식만 남겨두었다.
음식이 있다는 말에 사람들의 귀가 쫑긋하더니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아이가 먹는 것조차 빼앗으려고 했다.
물론 서준수가 있어 그 시도도 바로 제지당했지만 말이다.
그들이 아무리 단합을 해봤자 서준수에게는 상처 하나 낼 수 없었다.
서준수는 동생들을 불러 모아 라면을 끓이게 한 다음 아이들에게 나눠주라고 했다.
“안지호, 장혁, 그리고 이정오, 너희들은 동이 트자마자 나와 함께 시내로 간다.”
서준수가 호명한 세 사람은 모두 각성한 사람들로 체력이 괜찮은 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장기간 독이 든 음식을 섭취해 제대로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네, 알겠습니다!”
세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사실 예전이었으면 서준수 혼자 좀비를 쓰러트리러 가도 됐었다. 그는 그 위험한 정글도 혼자 정복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종말의 시대가 도래한 후 체력이 예전만 못해졌고 몸도 많이 허약해졌다.
물론 좀비 머리에 있는 수정구슬로 신체 능력을 강화할 수 있었지만 몸속에 남아 있는 독소는 없어지지 않았다.
공간이 부족해 음식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자리로 돌아갔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굶주림에 못 이겨 흙을 입에 집어넣었다.
“형님, 음식이 부족합니다.”
안지호가 난감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는 자신이 먹을 것도 이미 다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장혁과 함께 사람들한테서 금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돈 되는 물건들을 얻어와.”
서준수의 말에 안지호와 장혁은 잠깐 어리둥절했지만 일단은 그가 시키는 대로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서준수는 지시를 내린 후 아직 음식을 배분받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음식을 받지 못한 분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는 제가 깨끗한 물과 음식을 구해올 테니까요.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음식이 없다고 다른 이의 것을 빼앗으면 안 됩니다. 둘째, 약자를 괴롭히면 안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제 명령에 반드시 따라주세요. 만약 이 세 가지를 지키지 못하겠다면 지금 당장 이곳을 나가도 좋습니다.”
“형님 말을 따르겠습니다!”
안지호가 큰소리로 외쳤다.
“저도 형님 말을 따르겠습니다!”
“저도요!”
서준수가 본디 강한 사람인 것도 있지만 지금은 음식까지 구해주겠다고 하니 그들에게는 부모나 다름없었다.
하선아는 공간 안에 생긴 귀금속들을 밖으로 꺼냈다. 그리고 음식들이 텅 비어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오후에 읍내로 나가 호빵과 부침개 같은 것들은 가득 산 후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 얼른 공간 안에 넣었다.
공간 안에 넣은 후 그녀는 곧바로 근처 금은방으로 가 오늘 받은 귀금속을 팔아버렸다.
지난번과는 다른 금은방이라 가격이 조금 저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4백만 원은 얻을 수 있었다.
하선아는 금은방에서 나온 후 창고로 쓸만한 곳들을 구경하다 적당한 곳을 찾았다.
“외진 곳이라 원한다면 임대료를 싸게 해줄 수 있어요. 솔직히 위치만 아니었으면 30만 원은 받아야 해요.”
줄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가 창고를 보여주며 말했다. 사실 그도 하루빨리 이 창고를 임대해버리고 싶었던 참이었다.
“좋네요. 일단은 6개월 임대할게요.”
하선아는 이곳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코너를 돌아야 하는 곳에 있어 인적이 거의 없고 근처에는 CCTV도 없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통쾌하게 계약하겠다고 하는 그녀의 말에 신이 나 얼른 창고 열쇠를 건네주었다.
하선아는 공간이 아직 비어있는 것을 보고는 마트로 가 채소를 한 아름 집어 들었다.
기왕 온 김에 채솟값을 확인해보니 정말 너무나도 저렴했다. 도시에서는 한 끼 식사만 해도 2만 원이 넘고 커피 한잔도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말이다.
하선아는 채소와 돼지고기, 그리고 갖가지 음식들을 산 후 마트에서 장 본 것들을 공간 안에 넣었다.
가득 채워진 공간을 보니 이제야 한시름이 놓였다.
‘그쪽은 지금쯤 늦은 저녁이겠지? 내일 아침 음식이 한가득 들어있는 걸 보면 분명 엄청 기뻐할 거야. 나중에 공간이 더 업그레이드되면 그때는 더 많은 것들을 넣어야지! 물론 나도 그 대신 황금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값비싼 물건들을 얻게 될 거고.’
“솔직히 그쪽 세계의 박물관에 있는 거 아무거나 하나 달라고 해도 여기서는 꽤 좋은 값에 팔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선아는 돈을 벌어들일 생각을 하며 컴퓨터를 보다가 무언가를 확인하고는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지난번에 올린 소설이 심사를 통과한 것이었다.
하지만 서준수가 준 소설은 1, 2권이 전부였고 3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