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하선아는 집으로 돌아온 후 스캔하는 어플로 1권의 나머지 부분과 2권 전체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다하고 보니 45만 자쯤 되었고 계약이 성사된 후 그녀는 처음에 올린 5만 자 뒤로 5만 자를 더 올렸다. 나머지는 매일 만자씩 올릴 작정으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스캔이 끝난 책은 곧바로 잘게 찢어진 채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돈이 될지 안 될지는 다음 달이 되어야 알 수 있다. 만약 책이 의도치 않게 베스트 셀러에 올라가면 그때는 서준수에게 남은 3권까지 찾아달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책들도 있으면 더 보내 달라고 할 생각이다.
‘준수 씨가 있는 곳이랑 문명에서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은데 그럼 휴대폰도 있겠지?’
하선아는 가격이 비싸지 않은 액세서리들은 중고 마켓에 올렸다. 가격은 20만 원에서 200만 원까지 아주 다양하게 책정했다. 사실 가격을 정확하게 책정하면 제일 비싼 액세서리라고 해도 10만 원 정도가 맥시멈이었지만 모양이 유니크하고 예뻤기에 조금 더 높게 가격을 불렀다.
사이트에 올린 후 청소하느라 몇 시간쯤 지난 뒤에야 다시 휴대폰을 들어 보니 문의가 한가득 와 있었다.
그녀는 일일이 대꾸한 다음 네고 없이 사겠다는 사람들과 거래를 진행했고 성사가 된 다음은 곧바로 액세서리들을 택배로 보내기 시작했다.
이로써 그녀의 계좌에는 총 천만 원이 생겼다.
예전에는 느껴본 적이 없었던 금전적인 여유로움에 그녀는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물론 이 여유로움도 서준수가 그쪽 세상에서 죽지 않고 계속해서 음식을 요구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선아는 서준수가 생각난 김에 공간 안을 확인해보았다.
음식들이 그대로인 것을 보아 그쪽은 지금쯤 자고 있는 듯했다.
[오늘 오후에 리허설할 거니까 너도 와야 해.]
하선아는 안주희의 문자에 얼른 옷을 갈아입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안주희의 집은 이곳에서 무척 가까워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하선아는 가는 길 휴대폰으로 소설에 대한 평가를 확인했다. 이제 고작 10만 자밖에 올리지 않았는데도 그녀의 소설은 벌써 인기 신작 순위권 안에 들었고 독자들은 빨리 뒤 내용을 달라며 재촉했다.
하선아는 생각보다 좋은 평가에 다음 달에 들어오게 될 돈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하선아...?”
그때 그녀의 앞 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하선아 맞구나. 너인 줄 몰랐어!”
안주희는 하선아의 얼굴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하선아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다크서클이 짙고 거기에 검은색 뿔테안경까지 쓰고 있는 모습이었으니까.
안주희가 굳이 하선아를 들러리로 부른 것도 그런 사람이 옆에 있어야 자신의 미모가 더 살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오랜만에 보게 된 하선아는 어느샌가 안경을 벗어 던졌고 두 눈도 맑고 투명했으며 피부도 백옥같아졌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이러면 내 피부가 어두운 게 더욱더 티가 나잖아!’
하선아는 대학교에 진학한 후로 거의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기에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난 건 지난 설 연휴 때였다.
“주희야, 결혼 축하해!”
하선아는 소설이 잘 돼서 기분이 좋은지 평소보다 많이 들떠있었다.
안주희는 이에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안으로 들어와. 이따 진희도 올 거야. 걔도 들러리 서주기로 했거든.”
이진희는 당시 마을에서 살집이 조금 있었던 여자애였다.
안주희의 결혼식은 내일이었기에 집 내부는 아주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집안에 앉아있던 동네 주민들은 하선아가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열성적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선아 왔니? 남자친구는 있고?”
“선아가 올해 22살이었나? 남자친구 없으면 아줌마가 소개해줄게.”
“그보다 도시는 연봉이 엄청 높다고 하던데 너도 그러니?”
“선아야, 너도 주희처럼 얼른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 주희 남편은 읍내에 집도 있는 공무원이래. 얼마나 안정적이야.”
“그래. 여자들은 자고로 남자를 잘 만나야 해.”
“선아야, 아줌마가 중매 한번 서줄까? 괜찮은 남자로 소개해줄게.”
하선아는 연봉부터 시작해 남자친구와 결혼, 심지어 아이 계획까지 관심해주는 그들의 환대에 머리가 다 어질했다.
“그런데 선아는 어쩜 날이 갈 수록 더 예뻐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요. 아까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잖아요.”
안주희가 다가와 조금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
내일이 바로 결혼식인데 만약 하선아가 들러리를 서게 되면 신부의 스포트라이트를 전부 다 하선아가 가져가고 말 것이다.
‘이대로는 안 돼. 내 결혼식인데 내가 주인공이어야지!’
안주희는 하선아를 옆으로 끌고 오더니 웃으며 말했다.
“선아야, 들러리는 안 서도 될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니 인원은 그 정도면 충분하겠더라고.”
“그래? 알겠어.”
하선아는 들러리를 서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오히려 좋아했다. 어차피 그다지 서고 싶지 않았으니까.
“에휴, 고구마가 안 팔려서 어째? 작년에는 불티나게 팔리더니 왜 올해는 아무도 안 사는 건지...”
그때 이웃 주민인 오채란이 한숨을 내쉬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예요. 요즘 애 아빠랑 얼마나 속이 타는데요.”
“읍내에서 안 팔리니 조금 더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거기는 한번 가는 것만 해도 돈이 드니... 에휴.”
하선아는 그 말에 눈을 반짝였다.
음식이 모자란 서준수 쪽에서 고구마는 훌륭한 쌀 대체재였다. 게다가 여기는 채솟값이 저렴하니 이참에 모두 다 서준수 쪽으로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주머니, 고구마 총 얼마나 심으셨어요?”
“600평은 돼. 작년에 고구마로 크게 돈을 벌어서 올해는 고구마만 집중적으로 많이 심었거든.”
작년에는 한 인플루언서가 말린 고구마를 좋아한다고 한 것 때문에 고구마가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유행은 금방 식었고 올해는 잘 팔리지 않았다.
“고구마는 보통 얼마 정도에 파셨어요?”
“작년에는 500g에 120원이었어. 올해는 60원도 될까 말까 하고.”
오채란이 연달아 한숨을 쉬었다.
“그럼 그 고구마, 제가 다 살게요. 집으로 돌아가신 뒤에 무게 한번 재주세요.”
“뭐?”
오채란은 자신이 잘 못 들은 건 아닌가 싶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600평이라면 고구마양이 어마어마하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선아야, 너 이거 장난하는 거 아니지?”
“아니에요. 의심되시면 선금부터 드릴게요. 만약 제가 말을 번복하면 돈 돌려주지 않으셔도 돼요.”
하선아가 선금으로 주겠다고 한 금액은 10만 원이었다. 고구마를 다 판다고 해도 12만 원인데 말이다.
“우리 집에 고구마 말고 감자도 있는데 그것도 사 가지 않을래?”
오채란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집에 있는 고구마도 살래? 내가 싸게 줄게.”
그때 옆에 있던 어르신이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우리 집도 고구마 있어. 감자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