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화

주승재가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익숙한 얼굴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주다인을 알아본 그는, 오래된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 간신히 표정을 다잡으며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었다. “다인아, 오랜만이구나.” 주승재와 시선이 마주치자, 주다인의 가슴 속에는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고 머릿속에 핏발이 서는 듯했다. 그녀는 아무리 감정을 억누르려 해도 눈가가 붉어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주다인은 이를 악물고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었다. “오랜만이네요.” 주승재는 위선적인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다인아, 너 왜 보육원을 떠난 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거야? 원장님은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단다. 그런데 오늘에는 어떻게 송 대표님과 사모님이랑 함께 온 거니?” 옆에 있던 이윤희는 떨고 있는 주다인을 지켜보며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캐묻지는 않았다. “다인이는 우리의 친딸이에요. 그리고 다인이도 이 보육원 출신이었고 우리가 청아를 입양할 때, 바로 이곳에 있었다네요.” 주승재의 눈동자에는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평정심을 유지했다. “그런 우연이 다 있었네요. 사모님께서 청아를 입양하신 후, 다인이가 우리 보육원에 들어왔었어요.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는데, 이렇게 큰 모습을 보니 원장으로서 정말 감회가 새롭네요. 마치 내 딸이 큰 걸 보는 것 같아요.” 주승재의 말은 마치 칼날처럼 주다인의 심장을 찔러댔다. 간신히 덮어둔 상처가 또다시 파헤쳐지자,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세상에 이런 우연도 있나요? 원장님, 오늘 부모님과 함께 온 건 청아의 입양 기록과 제가 정확히 언제 이곳에 왔는지 확인해 보려고요.” 이 말에 주승재는 불길한 눈빛으로 주다인을 바라보았다. 늑대 같은 그의 눈매, 특히나 어두운 밤이면 더욱 무서웠던 그 눈이 지금도 주다인을 위협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부모님이 곁에 계시니 두렵지 않았다. 주승재는 입술을 핥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사모님, 송 대표님,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