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아…" 석진은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이건…
"안 돼?"
"아니요…아니요…백범 형님,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말을 마치고 석진은 겨울의 얼굴을 쳐다볼 용기도 없었다. 대신, 석진은 테이블 위에 열쇠를 챙겨 도망가려고 했다.
"우석진! 이 개자식아!" 겨울은 분노에 몸을 떨었다. 석진 같은 신사가 사실은 겁쟁이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다른 동기들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모두 큰일 날까 봐 무서운 듯 했다.
하현은 유일하게 덤덤한 얼굴을 하고있는 사람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백범은 하현과 구면이였다. 하현이 하엔에 있을 때 몰래 변백범을 훈련시키고 가꿔줬었다.
백범은 어린 나이에 길거리로 나왔었다. 돈도 권력도 모두 없었던 백범은 길거리에서 수 차례 찔려 죽임을 당할 뻔도 했었다. 그러다 하현이 우연히 백범을 만나게 되였고 그가 중요한 인물이라는 생각에 그를 키워주기로 결정하였다.
안본지 몇년사이에 백범이 이렇게 성장해 있을줄은 몰랐다.
그러나 하현은 백범을 아는 척하고싶지는 않았다.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하현은 이제 더이상 하엔의 후계자도 아니다. 아마 백범이 하현을 아는 척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한편, 백범은 여전히 사악한 표정으로 방안에 있는 나머지 사람들을 한번 쭉 훑어보았다. 그러다 시선이 하현을 지나칠 때, 그는 살짝 당황했다.
다음 순간, 백범의 얼굴이 순간 바뀌었다. 그의 오만함과 횡포함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동시에 빠르게 앞으로 이동해 하현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고개를 숙여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련님, 여기에 계신 줄 전혀 몰랐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세요!"
순간, 프라이빗 룸에 있던 모두가 큰 충격을 받았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지독하게 오만한 태도도 누구든 손쉽게 죽일 수 있을것 같이 굴던 백범이 지금 하현 앞에 공손하게 서있었다, 마치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듣고 있는 학생 같이.
백범의 부하들도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들의 대표님은 항상 카리스마 쩔었고 세상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기로 유명했는데! 그가 누군가 앞에서 이렇게 공손했던 적은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덤덤한 얼굴로 그의 기분을 도무지 알수 없는 사람은 하현뿐이였다.
"오랜만이야." 하현은 한참 뒤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서 백범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만해줘, 다 내 동기들이야."
"네! 도련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도련님. 이만하죠. 이 사람들을 여기서 내보내요. 도련님과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습니다. 저들이 우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해요!" 백범은 매우 흥분했다.
잠시 후, 야릇한 표정의 동기들은 다 쫓겨났다.
…
플래티넘 호텔 밖. 동기들은 전부 뻥진 얼굴이였다.
다윤은 중얼거렸다. "하현이 우리를 도와줄지는 몰랐어. 근데 플래티넘 호텔 주인과 어떻게 아는 사이래?"
겨울도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우리가 잘못 짚은건가? 어쩌면 하현도 꽤 능력 있는 남자였을지도 몰라."
"뭘 잘못 짚어 ?" 석진은 지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오늘 밤 그는 큰 망신을 당했다. 어떻게든 이미지와 명예를 회복해야만 했다.
"알겠어! 그러니까... 하현은 분명 사기꾼이였던거야. 술을 비싼 가격에 팔아먹으려고 이 플래티넘 호텔과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모두의 돈을 사기 쳐서 뜯어가려는 생각이었던 거야…" 석진이 씁쓸하게 말했다.
다윤은 코웃음을 쳤다. "하현이 만약 네 돈을 노린 거라면 너를 왜 그냥 가게 뒀겠니?"
"그건 하현이 내가 경찰에 신고한다는 소리에 쫄았던거야. 그래서 하현은 쫄았던 거야. 맞아! 아니면 일이 어떻게 그리 쉽게 풀려?! 하현, 이 썩을 놈! 아직 안 끝났어!" 석진은 원망했다.
다른 동기들도 서로를 쳐다보며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아직 안 끝났어!"
"하현, 이 데릴사위놈이 자기 동기들까지 속이다니. 두고 보자. 다음 번에 내가 걔를 만나면…"
그들은 그저 말로만 쎈척하고 있을뿐 아무도 정말 하현을 찾아가서 그를 괴롭힐 엄두를 못 냈다. 그렇게 한동안 저주를 퍼붓다가 모두 낙심한 모습으로 자리를 떴다.
그리고 겨울은 석진의 아우디를 거절하고, 자신의 포르쉐를 타고 떠났다. 자리에는 이를 악물고 있는 석진만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
프라이빗 룸에는 현재 하현과 백범만 남았다.
백범은 머리를 숙인 채 공손한 자세로 있었지만 그래도 창 밖을 바라보며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 "도련님, 저 사람들이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것 같던데, 제가…"
"아니야." 하현은 웃으며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 밤 다윤이만 아니었으면, 하현은 그냥 아무말없이 백범이 그들을 혼내주도록 놔뒀을 것이다.
"네!" 백범은 반박할 엄두도 못했다. "도련님, 지금은 어디서 일하고 계세요? 지난 3년간 도련님을 도무지 못 찾았어요…"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명심해, 앞으로 나를 만나게 된다면 그냥 내 이름을 불러." 하현은 신신당부했다.
하현이 말하고 있는데 그의 구형 핸드폰이 또 울렸다. 하현은 핸드폰을 힐끗 쳐다보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젠장! 집에 돌아가서 화장실 청소해야 돼. 백범아, 시간이 나면 다시 또 보자…"
말을 마치고, 그는 스쿠터를 타고 백범의 흐릿한 시야 속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