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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너는...하현?” 우석진은 하현을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픽 웃고는 주차를 하고 호텔로 바로 걸어갔다. 하현은 뻘쭘했다. 석진에게 먼저 말을 걸었는데 그렇게 무시당할 줄은 몰랐다. 그 둘은 한 명씩 차례대로 프라이빗 룸으로 들어갔다. 이 시각 동기들은 이미 다 도착해있었다. 문이 열리자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쏠렸다. “이거 과대 아니야? 소문대로 성공했네! 인물이 훤하다!” 누군가 분위기를 띄우며 말머리를 뗐다. 슈트 차림에 가죽 구두 한 쌍을 신고 있는 석진은 허리에 아우디 차 키까지 걸고 있어 그 순간 정말 잘생겨 보였다. 얼마 안 지나, 석진 뒤에 하현이 뒤따라 들어오는 것을 누군가 발견했다. 비록 하현이 입고있는 슈트가 잘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고급스럽고 유명한 명품 브랜드임을 알수 있었다. 동기생 한 명이 그걸 보고 웃었다. "하현, 너도 잘 지내나 봐! 일로 와, 이 두 메인 자리는 너랑 과대를 위해 미리 찜을 해두었어!" 석진은 하현을 슬쩍 바라보고는 픽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지만, 그래도 더이상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석진은 하현이 스쿠터를 타고 다닌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하현은 "어" 하고 대답했지만, 자리에 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그는 주변을 한번 휙 둘러보았다. 대학시절, 과에는 예쁜 여자들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대학여신 김겨울은 변함없이 예뻤다. 역시 여신은 여신이다. 그녀는 비즈니스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 무르익은 복숭아같은 그녀의 완벽한 몸매를 한껏 돋보이게 하였다. 이는 매우 고혹적이고 매력적이었다. 심지어 멋쟁이 석진의 시선도 겨울에게 꽂혔다. 그녀의 미모에 혹한 석진은 틈을 비집고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오, 너였네, 우리 여신님. 안본지 진짜 오래됐다. 왜 날 찾지도 연락하지도 않았어? 지금은 어디서 일해?" 겨울은 쑥스러운듯 웃으며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너만큼 잘 지내지는 않아. 넌 아우디도 타잖아." 그 소리에 석진의 두 눈이 반짝했다. 그에게 기회가 있는 듯 했다. 석진이 할부대출을 받아서 구매한 아우디를 여신님이 좋아하는 듯 보였다. 석진이 말을 하려고 하던 그때, 옆에 있던 여자애들이 웃으며 먼저 말했다. "과대, 겨울이한테 속지 마. 겨울은 현재 서울 최대 투자기업 하엔 그룹의 총무 부장이야. 곧 본부장으로 승진할거래. 여신님이 아니라 여왕님이지!" "우와…" 모두들 감탄했다. 서울시에서 하엔 그룹의 막대한 영향력을 모르는 사람이 또 있을가? 수많은 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이 그들에게서 재정적으로 지원 받고 있다. 비록 이 회사는 오프라인 사업을 하고있진 않지만, 그 영향력은 각종 업계에 널리 알려져있다. 만약 겨울이 이토록 젊은 나이에 본부장이 된다면 그녀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겨울에게 대시해서 성공한다면, 이는 미인을 품에 안게 될 뿐만아니라 많은 자원들도 품게 될 것을 의미한다. 좋은 점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게다가 이 여인은 A급 여자 연예인들에 비해서도 꿀릴것 없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 프라이빗 룸 안에 있던 몇몇 남자들은 자신들이 초라하게 느껴지면서 침을 꼴깍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이때 마침, 노래방 화면이 겨울이가 선곡한 곡제목으로 바뀌었고, 다음 순간 그녀가 마이크를 잡았다. 남자 동기들은 너나 할것없이 모두 겨울과 함께 콜라보하고 싶어 보였으나 누구하나 감히 그러질 못하고 있었다. 하현은 처음에 겨울한테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그녀가 하엔 그룹의 고위층이라는 말을 듣자 흥미가 생겼다. 또 겨울이 선택한 곡도 마침 하현이 아는 노래인지라 별 다른 생각없이 마이크를 집어들었다. 하현의 행동을 지켜본 김겨울은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는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 "하현, 마이크 좀 내려놓지?" "어? 여기 다른 사람 자리야?" 하현은 일어서서 말했다. "아니. 그냥 너랑 같이 노래 부르는게 싫어." 겨울은 말했다. "슈트를 입은 건 좋아. 하지만 너 신발은 그게 뭐니. 혹시 슈트도 어디서 빌린거 아니야?" 그녀의 말이 끝나자 다른 동기들도 하현의 슈트가 재질은 좋았지만 핏이 잘 안 맞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하현이 구멍 송송 난 슬리퍼 한 컬레를 신고 있었고, 그의 큰 엄지발가락이 튀어나와 있었다는 것이다. 하현의 코디는 엉망이었다. 하현은 무력감을 느꼈다. '신발 한 컬레를 살 걸 그랬어. 그래도 동창회인데 예의가 없었어.' "하하하 겨울아, 역시 너는 독수리의 눈을 가지고 있어. 그래도 같은 동기끼리 원래는 내가 말을 안 하려 했는데, 누군가 주제파악도 못하고 분에 넘치는 것을 탐내네. 모두들 그의 진실을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석진이 뒤쪽에서 걸어 나오면서 겨울을 향해 아양을 떨었다. "우리 하현이 아까도 고작 스쿠터를 타고 여기로 왔잖아. 나는 원래 하현이 자동차를 주차하기가 귀찮아서 일시적으로만 스쿠터를 타는 건 줄 알았어. 명품 슈트를 입고 있었으니 말이야. 근데 명품 슈트는 어디서 구했는지 몰라도 이렇게 신발은 까먹어버렸으니 얼마나 창피해…" 석진은 하현의 거짓말을 꿰뚫어 봤다는 듯이 계속하여 말했다. "하현, 어디서 할인 받아서 이 슈트를 산 거 아니야? 그리고 이 꼴을 봐서 라벨을 아직 떼지도 않은 거 같은데. 동기 모임 끝나고 가서 슈트 반납하자, 알았지?" "에이 설마…" "근데 하현이 스쿠터를 타고 온건 맞나봐! 열쇠를 봤어!" "그리고 신고있는 슬리퍼도 바꾸지 않고 몇 년 동안 신은 것 같은데…" "그러니까…" 동기생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특히 여신님 김겨울 앞에서 잘난 척하고 싶었던 남자 몇몇이 이 틈을 타 하현을 더욱 맹렬히 비난했다. 하현이 설명하려던 그때, 대학시절 그의 옆자리 친구 다윤이 일어서며 크게 외쳤다. "너희 좀 지나치다. 우리 다 같은 동기들이잖아. 하현의 스타일이 조금 이상하다고 해도 꼭 말을 해야겠어?" 다윤은 아름답고 청순한 외모를 가졌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스타일의 그녀는 대학 시절 하현과 사이가 꽤 좋았다. 그 시절, 하현은 다윤의 과제를 베끼느라 그녀를 자주 괴롭혔다. 하지만 다 옛날얘기인지라 이렇게 다윤이 나서서 하현을 대변해줄 거라고 하현은 생각지도 못했다. 같은 과의 다른 미녀가 루저 하현을 옹호해주는 걸 보자 석진은 갑자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하현의 멱살을 잡았다. 그는 얼른 옷 속의 태그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다윤아, 너는 아직도 얘를 도와주고 싶어? 이거 보여? 아직 태그도 안 뗐어! 한 벌에 수백 수천억 원은 해! 얘가 거지꼴로 이런 옷을 감당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리고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하현은 이미 3년 전에 설 씨 집안 데릴사위가 되었어, 맞지? 데릴사위가 아르마니 오트 쿠튀르 슈트를 입고 있다니, 하하하…" "아마도 이 녀석의 옷은 설 씨 집안 남자 것을 훔친 것일지도 몰라. 그래서 잘 안 맞는 거야…" "하현, 너 좀 솔직하게 살지 그래. 니가 설 씨 집안 데릴사위라는 것은 서울 전체가 알아. 우리 앞에서 연기하지 않아도 돼. 우리 다 동기생들이잖아. 왜 척을 해?!" 하현은 손을 들어 석진의 손을 밀쳐내고 그를 차갑게 쏘아보았다. 하현의 눈길을 의식한 석진은 비웃었다. "내가 너의 본모습을 까냈으니 나를 한 대 치겠다? 아니면 그 옷이 네 것이라고 우기고 싶어? 뭐 네것이라고 증명할 수만 있다면 내가 네 앞에 무릎이라도 꿇을수 있어!" 하현이 말을 하려던 순간, 그의 전화가 울렸다. 하현은 얼른 구형 핸드폰을 꺼냈다. 그가 전화를 받기도 전에 모두 이미 웃고 있었다. 너무 웃겼다. 이것은 3년 치 전화 요금이 한 십만원정도 되는 구형 휴대폰이 아닌가? 고작 이런 핸드폰이나 사용하고 있으면서 어디서 감히 아르마니를 입고 잘난 척 하기는? 정신이 나간 건가? 아니면 데릴사위가 되고 나서 멍청해진 건가? 이 순간 하현은 다른 사람의 반응에 결코 신경쓰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이내 수화기 너머로 장모 희정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하현, 어디 갔어? 오늘은 왜 아직 화장실 청소 안 했어?" 제길! 하현은 잊고 있었다! 그는 무안하기도 했지만 동기 모임에 나오지 말 걸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역시 데릴사위네. 동기 모임 나왔다고 전화로 혼나기까지 하잖아!" "돌아와서 화장실 청소하라고 장모님한테 혼나는 중인가 보네." "에잇! 남자한테 이런 걸 시키다니, 나라면 쪽팔려서 벽에 머리를 박고 죽었을지도 몰라. 난 돈버는 능력이 못돼도 데릴사위는 죽어도 안했을거야!" "가난한 남자는 아무 말할 자격이 없다더니, 정말 의외네." 같은 반 친구들이 의견이 분분한 모습을 보고 다윤도 한숨을 조용히 내쉬었다. 하현이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걸 보는 다윤의 마음도 안타까웠다. 마침 다윤이 사는 동네에서 최근 경비들을 모집하는 중인데 하현에게 그 일자리라도 추천해볼까 하고 생각했다. 할일 없는 하현이 신발 한 컬레를 살 돈도 없을까 걱정되는 마음에서 였다. "됐어. 그냥 여기서 꺼지는게 답인거 같아. 우리 동창회는 너 같은 쓰레기는 환영하지 않아!" 석진은 역겹다는 듯이 하현을 째려보았다. 그리고 웃으면서 겨울한테 다가갔다. "나의 여신님, 찌잘한 누군가 때문에 기분을 망치지지는 마. 이 레스토랑은 내 사촌형의 친한 친구가 운영하는 곳이거든." "사촌형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너도 아는 사람일 거야. 그 형 지금 너희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 이름은 강이준. 여기서 이준 형 이름만 대면 뭐든 할수 있어, 이 호텔에서 제일 좋은 와인을 들고 오라고 불러야겠어. 우리 마음껏 즐기자구!" 겨울이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석진이 서비스 벨을 눌렀다. 웨이터가 오자 석진은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서비스에요? 왜 이렇게 느려요? 얼른 가서 이 호텔에서 제일 좋은 와인 두 병 가지고 오세요!" 웨이터는 잠시 멍해있다 난색을 지으며 말했다. "손님, 저희 호텔에서 제일 좋은 와인은 가격이 조금 쎄요. 아무래도…" 탁! 석진이 허리춤에 있던 아우디 차 키를 테이블 위로 던졌다. "우리가 주문금액을 감당 못 할 것 같아 보여요? 강이준이 내 사촌이에요. 누군지 알아요? 그쪽 대표님 친구예요! 얼른 가서 와인을 가져오지 그래요?" 이 말을 마치고 석진은 겨울의 얼굴을 가만히 훔쳐보았다. 여신님의 조금 놀란 표정이 보였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척 잘난척을 계속했다. 석진은 오늘 제대로 인심 썼다. 여신님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고 석진은 확신했다. 석진이 이준의 사촌일줄은 하현은 생각지 못했다. 그 둘의 성격이 모두 하나같이 재수없다는 점에 하현은 흥미를 느꼈다. 그는 석진이 어떻게 나올지 매우 궁금했다. 얼마 안지나 웨이터는 곧 와인 두 병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친절하게 말했다. "손님, 와인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닥치고 열어요!" 석진은 피식 웃고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늘 안 취하면 집에 못 갈 줄 알아. 자, 너희를 위한 건배야!" 석진은 와인잔을 들고 아직도 자리에 앉아있는 하현을 쳐다보았다. 석진은 미간을 찡그렸다. "하현, 우리 같은 과 친구는 맞지만... 눈치도 없니? 여기는 널 환영하지 않아. 그래도 뻔뻔하게 여기서 비빌래? 왜 우리랑 술이라도 마시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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