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세준아, 이게 바로 네가 말한... 비싸지 않다는 팔찌야?”
질문을 받은 변세준은 가볍게 기침을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정말 비싼 거 아니야.”
사실 변세준도 마음속으로 의문이 들었다. 무대 위의 그 팔찌는 그가 가져온 것과 똑같이 생겼지만... 절대 진품일 리가 없었다.
팔찌는 3년 전 해외에서 우연히 얻은 것으로 단지 소장품일 뿐이었고 가격은 높아야 2억 원을 넘지 않았다.
그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런 곳에서 물 쓰듯 낭비하며 바보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는 방금 자신의 상세한 정보를 등록해 사람들에게 자신이 돌아왔음을 알렸는데 왜 갑자기 익명으로 처리되었는지였다.
팔찌의 진위를 떠나 변세준은 누군가가 자신의 신분으로 속인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돈을 썼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니, 그는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세준아, 넌 해외에 다녀온 후로 더욱 조용해졌네. 어떻게 100억짜리 팔찌를 이름도 남기지 않고 기부할 수 있어? 혹시 직원이 실수했을 수도 있으니 불러와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신우빈의 말은 그에게 힌트를 주었다. 솔직히 신우빈이 이렇게 말한 것도 나름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00억을 주고 팔찌를 사고 싶지 않았다.
이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았는데 마침 주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변세준을 쳐다보았다.
“역시 변씨 가문의 사람이네요... 어쩐지 이렇게 손이 크다고 했어요.”
“듣기론 변씨 가문과 양씨 가문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고 하던데 아마 미리 통보하고 형식적으로 진행했나 봐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동안 신우빈은 직원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게 하며 변세준을 다시 소개하라고 했다.
모든 사람 앞에서 직원은 여러 번 확인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여러 차례 확인한 결과 이 팔찌는 진품이 맞습니다. 하지만 변세준 씨도 똑같은 팔찌를 기부했는데 아직 경매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이 나오자 변세준을 포함한 모두가 멍해졌다.
직원의 뜻은 너무나 명확했다. 두 사람이 같은 물건을 기부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만약 무대 위의 팔찌가 진품이라면 변세준이 기부한 것은 가짜라는 뜻이다.
갑자기 뒤바뀐 상황에 변세준은 난감해졌다. 비록 가짜를 경매에 내놓는 경우도 흔하지만 이런 일은 절대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강주 명문가의 상속자인 그에게 오늘 일이 알려지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변세준 씨는 신분이 높으신 분이니 가짜를 내놓을 수 없어요. 아마도 직원이 실수한 모양이니 이 두 물건을 일단 치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손윤서도 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핑계를 대어 대충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 제안을 듣고 직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 부분에 대해 저는 이 경매품의 주인에게 문의해야 합니다. 이 팔찌의 가치가 너무 높아 제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직원은 진태웅이 들을 수 있도록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고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서로 아는 사이라 일부러 숨길 필요가 없어요.”
“그럼요.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일인데 왜 숨기려 하겠어요? 우리도 누가 기부했는지 알 수 있게 당당하게 인정하시죠.”
“이런 물건을 내놓을 수 있는 분은 아마도 몇몇 명문가일 뿐이에요. 혹시 양씨 가문에서 기부한 게 아닐까요?”
“또 다른 가능성이 있어요. 이 팔찌의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고 했는데 그러면...”
그 사람의 말은 끝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표정이 살짝 변했다.
직원들도 걱정이 되었다. 만약 이 팔찌가 정말 도난당한 물건이라면 주최 측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용히 기부만 하고 이름을 알리지 않으려고 했던 진태웅은 의론 소리를 듣고 어쩔 수 없이 웃으며 말했다.
“이 팔찌는 제가 기부했어요.”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의 귀에 생생하게 들려왔다. 여러 시선이 일제히 구석으로 향했는데 그곳엔 소박한 옷차림을 한 청년이 앉아 있었다.
“진태웅 씨?”
“어떻게 이럴 수가?”
“이게 무슨 물건인지 알기나 해요? 이게 어떤 자리인지 보지도 않고 어찌 함부로 소리 지르는 거예요!”
반응이 제일 과장된 사람은 손윤서와 신우빈이였다.
두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는데 현장에서 아마 그들보다 진태웅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온몸을 뒤져도 몇만 원도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백억이 되는 소장품을 가지고 있다는 건 천방지축 같은 소리였다.
“이 사람은 누구시죠? 강주에 언제 이런 부자가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도 호기심에 찬 표정이었다.
진태웅은 그들의 의심에 찬 목소리와 시선을 무시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믿든 말든 이 팔찌는 제 것이에요.”
“퉤!”
“정말 뻔뻔하네요. 태웅 씨처럼 무능한 사람이 어찌 이렇게 비싼 팔찌를 소유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 팔찌가 태웅 씨 거라는 증거라도 있어요?”
신우빈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
손윤서도 얼굴을 찡그리고 복잡한 눈빛으로 진태웅을 바라보았다.
“여기는 태웅 씨가 장난칠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이런 방식으로 주목받으려는 거면 너무 우스워요.”
여전히 독선적으로 말하는 손윤서를 보며 진태웅은 우스워 코웃음을 쳤다.
모두가 진태웅을 의심하고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한 직원이 급히 다가와 설명했다.
“여러분, 오해하셨습니다. 무대 위의 팔찌는 이분이 직접 제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절대 실수가 없었습니다.”
공식적인 해명에 현장은 조용해졌다.
모두 이 일이 여기서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자선 파티인 것만큼 기부할 마음만 있으면 진품이든 가짜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우빈은 진태웅이 득의양양해 하는 것을 볼 수 없었고 또 이 쓰레기에게 이렇게 많은 돈이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아, 알겠어요!”
신우빈은 갑자기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라 큰 소리로 말했다.
“아마 태웅 씨가 사전에 소식을 알고 변세준 씨와 똑같은 팔찌를 준비해 바꿔치기했을 거예요. 변세준 씨는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이런 명성에 신경 쓰지 않으니 마침 태웅 씨가 그 틈을 타서 이런 작간을 벌인 게 틀림없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신우빈은 이 설명만이 현실에 부합된다고 생각했다.
그의 추측에 초점은 다시 변세준에게로 향했다. 변씨 가문이 강주에서의 지위를 생각하면 변세준이 이런 일에서 속임수를 쓸 리 없었다.
하지만 변세준은 그가 가져온 팔찌가 가짜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이 일을 조용히 넘기고 싶었지만 신우빈의 한마디 말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신과 가문의 체면이 걸린 문제인 것만큼 무대 위의 이 팔찌는 자신의 것이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우연일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가져온 팔찌는 해외의 한 재벌의 손에서 얻은 거예요. 감정 결과 이건 유일한 진품임을 확인했었죠.”
여러 상황을 겪어 본 변세준은 표정에 변함없이 자신감 넘친 목소리로 말했다.
변세준이 이렇게 당당하게 인정할 줄 몰랐던 진태웅은 비아냥거리는 웃음을 지었지만 신우빈은 그가 켕기는 게 있어 어색하게 웃었다고 이해했다.
“난 원래 태웅 씨가 완전히 쓸모없는 쓰레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도둑질까지 하네요.”
손윤서는 가엾은 눈빛으로 진태웅을 바라봤다.
“3년 동안 시치미를 떼느라 참 힘들었겠네요. 이것이야말로 태웅 씨의 진짜 모습이죠?”
진태웅에게 설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손윤서는 마음속으로 이 일에 결론 지었고 심지어 이 비열한 모습이야말로 그의 참모습이라고 여겼다.
“그만하시죠. 진태웅 씨는 이런 사람이 아니에요!”
멀리서 화가 잔뜩 난 차가운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