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강이서는 관리 센터에서 권한 카드를 업그레이드하고 돌아오는 길에 감염 구역을 지나게 되었다.
투명한 유리 벽을 통해 밖을 보고 있던 기이한 생물체가 강이서를 발견하고는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실험에서 실패한 생물체의 몸통 절반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중 대다수가 실험 기지의 연구원이었고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해서 실험에 참여했었다.
실험 기지에 실험체로 쓰일 범죄자들이 도착했다. 부르짖는 소리가 A 구역에 울려 퍼지자 깜짝 놀란 군소 인간이 온몸을 덜덜 떨었고 강이서의 옷깃을 붙잡았다.
강이서는 군소 인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아. 내가 너의 곁에 있잖아.”
영롱한 빨간색의 눈동자를 가진 군소 인간은 강이서의 손바닥에 얼굴을 갖다 댔고 한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서...”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동정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사랑을 갈구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계속 쓰다듬어줘. 나를 두고 가지 마...”
마음이 약해진 강이서는 쭈그려 앉아서 겁에 질린 군소 인간을 다독여주었다.
범죄자들은 실험 기지에 도착하자마자 사지가 찢어지는 분열 실험실로 들어갔다. 조금도 견딜 수 없을 만큼 강도가 높은 실험이어서 스스로 혀를 깨물고 죽으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 실험을 시작으로 점점 더 강한 고통을 주는 실험이 남아있었다.
이것은 범죄자를 처벌하는 새로운 방법이었고 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를 한다는 명분 아래에 진행되고 있었다.
군소 인간은 어항 밖으로 가녀린 팔을 뻗어서 강이서의 무릎을 감싸안았다. 군소 인간이 움직일 때마다 흘러나온 물에 바지가 젖었다.
강이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가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 좋은 사람도 있었구나. 착하고 마음이 약한 그 사람이 나의 사육사라니... 정말 행복해.’
강이서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11번, 아직도 무서워?”
“무서워.”
군소 인간은 강이서의 손에 머리를 갖다 대면서 칭얼거렸고 강이서의 손길이 느껴질 때마다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혔다.
쑥스러워서 하지 못한 말은 도로 삼켰고 무고한 표정을 지었다,
그 옆에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는 문어 인간이 서 있었다. 유리 벽을 통해서 강이서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군소 인간과 달리 공격성이 강했기에 어항 밖으로 나와서 사육사와 교감할 수 없었다.
문어 인간의 다른 이름은 17번이었다. 반인 반문어의 형태를 나타내는 연체 생물이었고 강이서가 책임지고 있는 두 번째 실험체였다.
문어 인간은 강이서 앞에서 지어본 적 없는 표정으로 군소 인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베라는 강이서의 친화력이 좋다면서 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험체와 사육사가 깊이 교감하는 일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구역의 실험체는 바닷속에서 살던 냉혈 동물이었다.
감정이 없고 무리를 지어 다니지 않는 외로운 생물이었다. 위험천만한 냉혈 동물들은 이곳에 잡혀 와서 잔인한 실험의 희생양이 되었다.
하지만 강이서가 책임지고 있는 실험체들은 순종적이었고 강이서를 잘 따랐기에 전설 같은 존재로 불렸다.
피부와 혈액으로 치유할 수 있는 군소 인간, 차가워 보이지만 조각낸 것처럼 뚜렷한 이목구비를 자랑하는 문어 인간 그리고 4번 변이체 반투명 해파리였다.
실험체는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렸다. 이름으로 부르면 감정이 생기기 때문에 연구원과 사육사한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줄 수도 있었다.
강이서는 규정을 어기고 처음 맡은 생물에게 이름을 지어준 적이 있었다. 그 실험체는 분열 실험에 실패하고 나서 죽었고 강이서는 며칠 동안 울기만 했다.
그 뒤로 번호로 실험체를 불렀다.
“이만 가볼게. 내일 다시 만나.”
강이서가 손을 흔들자 군소 인간이 빨개진 두 눈으로 바라보면서 울먹였다.
“가, 가는 거야? 나랑 같이 있어 주면 안 돼?”
군소 인간은 어렵게 말을 이어가면서 팔을 뻗었지만 강이서를 붙잡지 못했다. 17번은 차가운 유리 벽에 기대서 조용히 강이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군소 인간은 작별할 때마다 어린이집 대문 앞에서 부모님과 떨어지기 싫어서 우는 아이처럼 굴었다.
실험체들은 강이서가 집이 아닌 이곳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길 바랐다. 강이서는 안타까웠지만 이런 상황이 번복될수록 점점 적응되었다.
문을 열면 넓은 해저 터널이 한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반투명 해파리가 흐느적거리면서 강이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푸딩처럼 부드러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강이서가 있는 쪽으로 헤엄쳤다. 그러고는 유리를 사이에 두고 온몸으로 애정을 표현했다.
인간은 아름다운 생물의 겉모습만 보고 현혹되었다. 무해한 것 같지만 이 해파리와 살짝 스치기만 해도 즉사할 것이다.
4번 해파리는 이 세상에서 독성이 제일 강한 해파리였다.
강이서가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4번, 잘 자. 내일 또 만나.”
해파리는 촉수로 부드럽게 유리를 두드리면서 대답했다.
아파트로 돌아간 강이서는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았다. 거친 파도가 육지의 변두리를 갉아먹고 있었고 어두운 하늘에서 끊임없이 비가 내렸다.
실험 기지의 호텔식 아파트는 278층까지 있었다. 백 년 전에는 사람들이 놀랄만한 높이였고 강이서가 지내는 162층이 세계 기록에 남을 숫자였다.
그러나 육지 면적이 90퍼센트나 줄어든 지금은 이보다 더 높은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사람들은 인종이거나 국적을 가리지 않고 육지 쪽에 모여서 살았다.
얼마 남지 않은 이 육지가 인류의 마지막 바벨탑이 될 것이다.
바벨탑은 성경에서 홍수가 육지를 침범할 때, 인류가 힘을 합쳐서 천국으로 가려고 만든 것이었다.
이곳은 몇십 년 전부터 변했고 바닷물이 계속 차오르면서 인류의 영토가 줄어들었다. 바다의 면적이 전체의 90퍼센트를 차지하게 되었다.
알 수 없는 폭우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무시한 채 계속 쏟아졌다. 얼음이 녹고 설원의 기온이 높아지면서 전염병이 돌았고 생물들은 기이한 형태로 변했다.
인류가 본 적 없는 미지의 생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굴하지 않는 인류는 바벨탑 생물 실험 기지를 건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