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10년 전, 강이서는 쓰나미 사고로 모든 가족을 잃었다.
가족이 없는 강이서 옆에는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베라와 절대적으로 그녀를 신뢰하는 실험체들만이 있었다.
강이서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것은 가족과 같은 사랑이었다.
사육사를 바라보는 문어 인간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슬펐다. 무수히 많은 날카로운 가시가 심장에 박힌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이것은 이전에 겪었던 그 어떤 분열 공격보다도 더 고통스러웠다.
“이서.”
문어 인간은 부러진 사지를 끌며 그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른 후 모든 힘을 다해 그녀를 향해 기어갔다.
“정말 놀라워.”
스크린 뒤에서 집중적으로 관찰하던 연구원은 신비로움에 감탄하며 연신 찬사를 내뱉었다.
이전의 그 어떤 공격을 받았을 때보다도 더 빠른 문어 인간의 치유 속도와 강인한 생명력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더욱 경악한 것은 문어 인간이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냉혈 동물이 어떻게 감정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눈앞의 장면은 기이하면서도 마치 가장 냉혹한 전쟁 속에서도 감동적인 온정이 있는 것처럼 따뜻한 아름다움을 풍겼다. 그들은 유리판 너머로 죽음 선고를 받을 뻔했던 문어 인간을 바라보았다. 문어 인간은 부드러운 목소리에 기적처럼 깨어나 이전의 흉포하고 무서운 모습을 벗어버리고 한 번도 보지 못한 부드러움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유리판에 비친 그의 모습은 산산이 부서져 초라하고 더러웠다.
기쁜 마음으로 다가가던 문어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본 순간 본인의 추악한 모습에 깊은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몸은 부서져 있었고 머리는 진흙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온몸에 작은 상처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의 잘린 사지와 피로 가득 찬 주변은 매우 끈적했다.
사육사가 좋아하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군소 인간을 떠올린 문어 인간은 순간 열등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천천히 움직이던 몸을 다시 움츠린 뒤 초라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모습에 강이서는 더욱 슬퍼졌다.
“17번 실험체의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새로운 촉수도 수축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수축 가능하다고?”
“촉수를 움츠릴 수 있는 것 같아요.”
이것은 또 하나의 놀라운 발견이었다.
사육사는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문어 인간을 부르고 있었다.
“알피노, 무서워하지 마. 손을 내려놓고 이리 와.”
사육사의 부름은 문어 인간에게 있어 최고로 신성한 소리였다. 그는 그녀의 가장 충실한 신도였고 그녀의 부름에 영원히,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복종했다.
무서운 무기의 공격 속에서도 놀라운 능력과 위험성을 보여준 문어 인간은 미세한 고통을 느꼈는지 촉수를 떨고 있어 왠지 힘들어 보였다.
강이서의 부드러운 부름 속에서 죽기 직전까지 갔던 문어 인간은 손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아름답고 정교한 얼굴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약간 갈망하는 눈빛을 내뿜었다.
동작은 아주 느렸지만 강이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투명한 유리 너머로 그를 부드럽게 바라봤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스트레스를 받은 어린 동물을 달래는 것 같았다.
“괜찮아, 이제 다 끝났어. 이리 와.”
엉망진창인 주위환경 속에서 유독 창백한 문어 인간의 모습은 마치 진흙에 더럽혀진 아름다운 옥처럼 보였다. 길고 곧은 뼈대 위에 우아한 근육이 덮여 있는 문어 인간은 유리창 너머의 강이서를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비교적 온전한 상태가 된 문어 인간은 마치 그녀를 만지려는 것처럼 유리창에 온몸을 기대었다.
문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끈적한 몸으로 깊이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그림자에라도 붙어 있는 것이었다.
이런 불쌍한 모습은 문어 인간의 뒤에 펼쳐진 지옥 같은 광경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마치 추상화 같았다.
“마치 길들여진 애완견 같아.”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냉혈 동물이 어떻게 길들여질 수 있지? 감정이 없을 텐데... 안 그래?”
눈앞의 사실들은 자신 없게 자기 생각을 말했다.
실험체 사육사의 자료를 본 허진웅은 강이서의 이름을 본 순간 눈빛이 깊어졌다.
“강이서는 이전에 A 구역 최고의 사육사였습니다. 강이서의 손에서 이미 S 구역으로 승급한 고등 생물이 한 마리 있습니다. 바로 교수님이 아시는 해파리 변이체입니다.”
눈앞의 이 문어 인간은 강이서의 두 번째 실험체였고 그 해파리보다 더 완벽한 걸작이었다.
이 순간 모두들 실험 성공의 기쁨에 빠져 있었다. 이번 성공은 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고 실험체의 등급은 SS 등급에 도달했다.
사상 최초로 있는 일에 모두들 마치 기적을 목격한 것처럼 흥분했다.
격리 구역 밖에서 기다리던 베라는 LED 스크린의 테스트 데이터를 보고 너무 기뻐 오늘 밤 새로 오픈한 술집에 강이서를 데려가 대폭 술을 마시며 축하할 생각까지 했다.
잔뜩 흥분된 환호 속에서 오랫동안 강이서의 모습을 응시하던 허진웅은 눈에 빛이 살짝 스쳤다.
그러고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격리 판을 제거해.”
“네?”
연구원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허진웅이 입꼬리를 올리며 이상한 미소를 지었다.
“방어 판을 제거하고 무기로 저 여자를 공격해.”
허진웅은 사육사 강이서를 가리켰다.
...
강이서는 자신의 실험체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이 너무 아파 참을 수 없었다.
17번은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고 표정을 지을 줄 모르는 얼굴에는 피와 부서진 조직이 튀어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상처로 가득한 부러진 날개를 가진 천사가 더럽고 진흙탕에 빠진 것 같았다.
이렇게 심한 고통 속에서도 문어 인간의 짙푸른 눈에는 기쁨과 행복이 가득했다.
“이서.”
‘강이서를 따라갈 수 있을까? 강이서를 찾아갈 수 있을까?’
손을 든 순간 진흙으로 더러워진 손바닥을 본 문어 인간은 당황해하며 배를 닦아내더니 유리판에 조심스럽게 손을 대었다.
‘내 더러움을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
문어 인간은 불안했다.
“살아서...”
강이서에게 약속을 지켜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살아서 같이 갈게.”
강이서는 눈물을 닦으며 미소를 지었다.
“곧 나올 수 있을 거야. 축하해, 넌 이제 승급했어.”
싸늘한 얼굴에 수줍어하는 기색을 내비친 문어 인간은 고개를 숙여 유리창에 가까이 다가갔다.
“내 이름을 불러줘.”
문어 인간은 사육사가 그의 이름을 다시 한번 불러주길 원했다. 문어 인간의 촉수 끝이 아래로 처져 마치 수줍어하는 소녀 같았다.
강이서는 웃음을 참으며 문어 인간의 이름을 불렀다.
“알피노.”
“응...”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 문어 인간이 짙푸른 속눈썹을 가볍게 떠는 것을 보니 기쁨을 억누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상위자의 냉혈 함은 그녀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더 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본 그들은 무기를 무력한 인간에게 돌렸다.
유리가 순식간에 사라지자 위험을 느낀 문어 인간은 순간 당황했다. 촉수와 인간의 부드러운 손바닥이 닿자 본능적으로 손을 잡았지만 이내 눈빛이 어두워졌다.
재빨리 사육사를 품 안으로 끌어안은 문어 인간은 가장 취약한 인간형 상체로 그녀를 보호했다. 죽을 각오로 그녀를 품 안에 숨겨 겉에 조금도 드러내지 않게 했다.
옅은 푸른색 피가 강이서의 얼굴에 튀자 멍해진 강이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17번이 왜 나왔지? 왜 이렇게 많은 폭발음이 나는 거지?
굉음이 귀를 찢는 듯했고 그녀를 꽉 안고 있는 반인반수인 문어 인간은 고통스럽게 떨며 몸을 웅크려 그녀를 더욱 단단히 보호했다.
그러고는 촉수로 강이서의 귀를 막아 그 끔찍한 부서지는 소리를 차단했다.
“17번... 알피노?”
강이서를 안고 있는 문어 인간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분노했다.
그들이 그녀를 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