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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비굴

지금쯤 아마 박예리는 아주 비참한 꼴일 테니 대충 수습을 하기 전까지는 나오지 못할 것이다. 박수혁은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 “우리 가족들이 너한테 그렇게 못 되게 굴었다는 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뭐?” 소은정이 나름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나한테 말 안 했냐고?” 사랑 없는 결혼이었지만 만약 그녀가 솔직하게 말했다면 분명 그가 직접 나서서 막았을 것이다. 분명. 박수혁은 그녀의 그 어떤 표정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뚫어져라 소은정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차피 다 지난 일이야. 우린 이제 이혼한 사이라고. 좋은 일도 아닌데 괜히 다시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고.” 소은정이 웃었다. 말하면 뭐가 달라졌을까? 아마 몰래 고자질을 했다며 더 비참하게 그녀를 모욕했을 테지. “그래, 네 말대로 어차피 우린 이혼했고 지난 일이야. 그러니까 이제 말해줘도 상관없잖아?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던 건지? 정말 그것 때문에 갑자기 이혼을 제안한 건지 말이야.” 흥분 때문인지 초조함 때문인지 박수혁의 심장이 거세게 쿵쾅거렸다. “갑자기?” 소은정이 입꼬리를 올리더니 중얼거렸다.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소은정은 가식적인 미소를 지우고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박수혁, 결혼 생활 3년 동안 우리가 사적으로 만났던 적이 있었어? 아니, 그럴 기회라도 있었어?” 주위 사람들도 눈이 달려있으니 박수혁이 소은정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을 테고 그랬기 때문에 더 잔인하게 그녀를 무시하고 멸시할 수 있었다. 가족, 친구, 운영하는 기업의 직원들까지, 그녀에 대한 냉대와 무시는 전부 박수혁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날 때마다 직원을 대하 듯 적당히 친절하면서도 딱딱한 태도, 게다가 그녀를 찾는 명분은 항상 서민영 그 여자 때문이었다. 이제 그녀는 서민영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소은정은 오랜만에 과거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신혼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박수혁이 왜 그녀에게 이토록 차가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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