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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우연

멀어져 가는 차량을 바라보던 박수혁의 표정이 매섭게 변했다. 이혼 뒤의 소은정은 마치 럭비공처럼 그 움직임을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의 앞에서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조심스러워하던 그녀가 이제는 달라졌다. 한편, 박예리는 이대로 소은정을 보낼 수 없다는 듯 그 뒤를 따라가려 했지만 박수혁의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제발 그만 좀 해!” “오빠, 지금 도대체 누구 편을 드는 거야? 내가 오늘 소은정 저 계집애한테 무슨 짓을 당했는지 알아? 이건 우리 박씨 가문을 무시하는 거라고! 3년 동안 먹여주고 재워주고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박예리, 우리 집에 있던 금고에 보관해 둔 액세서리는 내가 은정이를 위해 준비한 거야. 허락도 없이 가져간 건 분명 훔쳐 간 게 맞고. 그러게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박수혁이 동생을 꾸짖었다. 비록 직접 건네준 적은 없지만 법적으로든 그의 심적으로든 신혼집에 있던 모든 물건은 모두 두 사람의 공동소유였다. “오빠, 난 오빠 동생이야. 그딴 목걸이 하나 때문에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거야? 그리고 저런 촌닭이 그런 목걸이가 가당키나 해? 내가 필요해서 가져다 쓴 게 이런 꼴을 당할 만큼 심한 일이야?” 박예리가 불만스레 말했다. 소은정 따위가 그런 고가의 목걸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박수혁은 멋대로 구는 박예리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가 다시 입을 열려던 순간, 박예리는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다. “일단 CCTV부터 확인하자.” 그의 말에 박예리는 눈물이 맺힌 얼굴로 악을 썼다. “오빠,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 그 여자가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확인해 보자는 거야.” 박수혁은 동생을 노려보더니 레스토랑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CCTV 영상을 확인하면 모든 진실이 밝혀질 터, 박예리의 얼굴에 불안감이 스쳐지났다. “오빠, 내가 처음부터 쟤 마음에 안 든다고 했지. 두 사람 이혼하고 이제 한 달밖에 안 지났어. 그런데 벌써 다른 남자나 만나고 다니는 꼴 좀 봐. 어쩌면 이혼 전부터 만나던 사람일지도 몰라. 오빠 돈으로 밖에서는 저런 기생오라비 스폰이나 해주고 있었던 거라고.” 박예리는 어떻게든 박수혁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되는대로 떠들었다. 뭐라도 된 듯이 그녀를 혼내던 그 표정만 생각하면 이가 갈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박수혁의 신경을 더 건드릴 뿐이었다. “닥쳐!” 그는 이 말만을 남긴 채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소은호가 미리 연락해 둔 덕분에 레스토랑 측은 해당 부분의 CCTV 영상을 따로 준비해 둔 상태였다. 박수혁이 자신의 목적을 밝히자 매니저는 바로 영상을 재생했다. 1분, 2분... 영상이 재생될수록 박수혁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갔다. 옆에 서 있는 박예리는 불안한 표정으로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었다. 영상 속 박예리와 이민혜의 입에 담기도 어려운 모욕의 말들, 그리고 그런 말들이 익숙하다는 듯 태연한 소은정의 표정이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왜 저렇게 태연한 걸까? 설마 지금까지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살았던 거야? 그리고 소은정의 반격에 잔뜩 충격을 먹은 두 사람을 보며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설마 이렇게 반항하는 것도 처음인 거야? 복잡한 마음으로 한참 동안 영상을 확인하던 박수혁은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결국 영상을 꺼버린 박수혁은 아무 말도 없이 레스토랑을 나섰다. “오빠, 잠깐...” “박예리, 너 솔직히 말해. 너 이번이 처음 아니지?” 박수혁은 동생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물었다. 처음 보는 오빠의 무서운 모습에 박예리는 다급하게 변명했다. “아니야. 그냥 이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다른 남자랑 있는 걸 보니까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그런 거야.” 말도 안 되는 변명에 박수혁은 코웃음을 쳤다. 거짓말에 넘어 가주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이제 이 집안사람들에게 환멸이 날 지경이었다. “은정이한테 사과해!” “싫어! 내가 왜 그딴 애한테 사과를 해야 해? 차라리 나더러 죽으라고 해!” 박예리가 소리를 질렀다. 분명 그녀가 피해자인데 왜 소은정에게 사과를 하라고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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