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김도하가 핸즈 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였다.
대체 누가 임태연과 함께 병원에 다녀온 일을 그의 어머니에게 알렸는지 모를 일이었다.
원래부터 어머니는 이서현을 좋아했기에, 그 사실을 알자마자 즉시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이서현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김도하는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짜증스럽게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불이 꺼진 집으로 걸어갔다.
‘이상하네?’
지금까지 아무리 늦게 귀가해도 이서현은 항상 현관 스위치는 켜두어 집이 대낮처럼 밝았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두컴컴했다.
김도하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어둠 속에서 문을 열고 기억을 더듬어 벽에 있는 스위치를 켰다.
순간, 집 안이 환해졌다.
김도하는 무심하게 2층으로 올라가 이서현의 방문 앞에 섰다.
그는 힘차게 문을 두드렸다.
“이서현! 문 열어.”
한참을 두드렸지만 방 안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김도하는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서현은 원래 잠귀가 밝아서 작은 소리에도 금방 깨어날 사람이었다.
‘이 상황은...’
김도하는 입술을 꽉 깨물며 곧바로 몇 발짝 뒤로 물러난 후 발을 들어 문을 세게 걷어찼다.
‘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김도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빠르게 방 안으로 들어가 서둘러 불을 켰다.
“이서현!”
그의 목소리가 한참 동안 방 안에서 울렸지만, 결국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이서현이 그동안 머물렀던 흔적마저도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김도하는 미간을 찡그리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젠장, 이서현 또 무슨 짓을 벌인 거지?’
그는 짜증스럽게 방을 훑어보며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하얀 서류을 봉투를 발견했다. 그는 몸을 숙여 서류를 집어 들고 천천히 펼쳤다.
‘협의이혼 서류’라는 커다란 글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김도하는 흥미롭다는 듯 피식 웃음을 지으며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그는 이서현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김도하는 협의이혼 서류를 읽으면 읽을수록 화가 났다. 그의 입가에 번졌던 미소는 차가워졌고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특히 이혼 사유 부분을 읽는 순간, 김도하의 깊은 눈동자에는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당장 이서현을 찾아가 그 이유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고 싶었다.
이혼 사유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남편이 아내의 정상적인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며, 치료할 의사도 없으므로 부부간의 감정이 파탄에 이르렀다.]
김도하는 냉소를 터트리며 손에 든 서류를 세게 구겨 찢었다.
그는 구겨진 종이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는 이서현의 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차가운 얼굴로 전화를 걸었다.
“뚜... 뚜... 뚜...”
전화기의 신호음이 텅 빈 방 안에 계속 울려 퍼졌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낯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이 늦은 시간에 무슨 급한 일로 전화를 주신 거죠?”
낯선 여자의 목소리를 들은 김도하는 불쾌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서현 씨 바꿔요.”
그러자 여자는 그의 정체를 알아차린 듯 비웃으며 말했다.
“어머! 이게 누구야! 바로 그 개 같은 서현이 전남편 아니야. 이렇게 늦은 시간에 왜 전화했어요? 병원에서 여자 친구나 돌보지 않고 왜 우리 서현이를 찾는 거죠?”
그 말에 김도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한참 뒤에야 차가운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이봐요. 서현이와 얘기하고 싶으니까, 상관 말고 바꿔줘요.”
상대는 코웃음을 쳤고 몇 분 후에야 이서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하 씨, 무슨 일이에요?”
이서현의 목소리는 유난히 차가웠고, 그가 평소에 듣던 다정한 목소리와는 전혀 달랐다.
김도하는 이를 악물고 최대한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집에 있는 그 이혼 서류는 뭐야?”
이서현은 냉소를 머금은 채 차갑게 대답했다.
“이혼 서류를 봤으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텐데요?”
김도하는 처음엔 이서현이 단순히 짜증을 내며 이혼을 요구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서현의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듣자, 그는 콧방귀를 끼며 더 이상 분노를 억누르지 않고 비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서현,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조건을 내거는 건데? 내 재산 30%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 봤어?”
김도하의 그 말은 이서현의 마음을 깊이 찔렀다.
그러나 이서현은 지지 않고 강하게 맞섰다.
“내가 요구한 만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 이상의 일은 김 대표님께서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이서현은 일부러 ‘김 대표님’이라는 호칭을 강조했다.
김도하는 이서현의 목소리가 더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거슬렸다.
그는 주먹을 꽉 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서현, 직접 설명해 봐. 이혼 사유에 적힌 이유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설마... 내가 평소에 너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이서현은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김 대표님, 정말 자신감 넘치시네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우시다면 제가 좀 더 구체적으로 적어줄까요?”
이 말을 끝으로, 이서현은 전화를 끊었고 김도하에게 반박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김도하는 전화를 끊기자, 이마에 핏줄이 선명하게 튀어나왔다.
그는 옆에 있던 이혼 합의서를 갈기갈기 찢으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서현, 이혼은 절대 안 돼. 난 절대 동의하지 않을 거야!”
...
이서현은 전화를 끊고 나서도 멍하니 소파에 앉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김도하와 결혼한 지난 3년 동안, 그녀는 마치 감정이 없는 로봇처럼 김씨 가문에서 김도하의 다정하고 상냥한 아내 역할을 해 왔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원래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떠올리고 있었다.
이서현의 우울한 기색을 눈치챈 안윤아는 손에 들고 있던 감자칩을 그녀의 입에 넣어주며 말했다.
“서현아, 그 개 같은 남자는 잊어. 정말 쓰레기야. 게다가 성격도 더럽네? 네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이제야 알겠어. 그래도 곧 그 지옥에서 벗어나니까 정말 잘됐어. 네가 친구로서 다시 행복해질 거로 생각하니 정말 기뻐. 기념으로 축하 파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안윤아는 처음부터 이서현과 김도하의 관계를 반대해 왔다. 김도하가 서현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김도하가 임태연과 바람을 피운 것을 보고 그녀는 예상이 맞았다는 걸 알았다.
‘지금이라도 서현이가 깨닫고 그 쓰레기와 이혼하려 하니, 축하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