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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하정우는 김도하의 살기를 띤 눈빛을 느끼고 더 이상 이 자리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서현 누나, 저도 이만 갈게요.” 인사를 마치고 하정우는 이서현에게 손을 흔들고 안윤아를 따라 레스토랑을 떠났다. 넓은 레스토랑 안에는 이제 이서현과 김도하 둘만 남았다. 집이나 본가가 아닌 곳에서 김도하와 단둘이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서현은 과거에는 이런 날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몰랐다. 김도하와 보통 연인처럼 함께 밥을 먹고 산책하는 날을 꿈꾸곤 했다. 하지만 지금 두 사람 사이에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어색함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할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이 아니었다면 김도하와 겸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김도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차는 바로 아래에 있으니 같이 내려가자.” 이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마치 경계를 나타내듯, 혹은 김도하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듯, 그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지금까지 이런 상황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김도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과 이서현의 긴장된 관계를 떠올리며,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고 천천히 이서현의 뒤를 따라갔다. ... 김도하가 오늘 몰고 온 차는 검은색 포르쉐였다. 이서현은 차 앞에 다가가 무의식적으로 뒷좌석 문을 열고 타려 했다. 김도하는 그 모습을 보고 참을 수 없었다. “이서현, 왜 앞자리에 앉지 않는 거야?” 이서현은 잠시 멈칫하며 손을 멈췄다. “저... 결벽증 있어요. 남이 앉았던 자리는 싫어요.” 이서현은 잠시 생각하다 덧붙였다. “특히 임태연이 앉았던 자리는 더더욱 싫고요.” 김도하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변명했다. “태연이가 조수석에 탔던 적은 없어. 믿기지 않으면 직접 확인해 봐. 앞자리에 앉은 흔적이 있는지.” 이서현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게 말이 돼요?” 김도하는 눈을 살짝 떨구며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이 이서현의 손을 잡고 조수석 문을 열었다. “직접 봐, 아무도 앉은 적 없다니까.” 김도하의 손은 크고 따뜻했다. 이서현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한 박자 느리게 뛰었다. 당황한 이서현은 서둘러 김도하의 손을 뿌리치고는 조수석에 앉으며 말했다. “알았어요. 앞에 타면 되잖아요?” 그제야 김도하는 만족스럽게 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돌아와 차에 올라탔다. 차 안에는 여전히 익숙한 우드 향이 퍼져 있었다. 이서현은 창문을 내리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듯 말했다. “출발해요.” 김도하는 눈빛이 깊어지며 차를 천천히 출발시키면서 이서현의 행동을 나직이 비난했다. “이서현, 너 많이 변한 것 같아.” 예전에는 이서현이 그의 차에만 타면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는데, 오늘은 너무도 조용했다. 심지어 등을 돌려 그와의 대화를 완전히 차단하려는 듯 보였다. 창밖 풍경이 빠르게 뒤로 흘러가는 동안, 이서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사람은 원래 변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김도하는 눈빛이 여러 번 흔들렸지만, 끝내 그 질문을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스스로 민망해질까 두려워서였다. 말없이 차는 이씨 가문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김도하는 차 안에서의 적막이 이렇게 답답하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이씨 가문 앞에 도착했다. 이서현은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건물을 보며 목이 메는 것을 느꼈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김도하와 결혼한 지난 3년 동안, 매년 한 번씩 반드시 본가에 방문해야 하는 일정 외에는 거의 와보지 못했다. 그녀는 대부분 시간을 핸즈 별장에서 보냈다. 그래서인지 동생이 괴롭힘을 당했다는 일도 전혀 알지 못했다. 이서현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속의 죄책감과 후회를 억누르며 아무렇지 않은 척 차에서 내렸다. 김도하는 차를 주차하고 그녀를 따라 걸었다. ... 이현의 건강이 좋지 않은 한편 이정남은 회사 일로 늘 바쁜 탓에 이씨 가문에는 전담 집사와 하인들이 있었다. 이서현이 문 앞에 도착하자, 검은색 정장을 입은 중년 남자가 기뻐하며 말했다. “아가씨, 어쩐 일로 오셨어요? 어서 들어가세요. 사모님과 어르신이 아시면 정말 기뻐하실 겁니다.” 남자는 손짓하며 이서현에게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고, 이서현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김도하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서현은 웃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민 집사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보고 싶었어요.” 이서현은 갑자기 민 집사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안겼다. 이서현이 태어나기 전부터 민 집사님은 이정남의 곁에서 집안일을 도맡아 왔다. 그에게는 평생 아이가 없었기에, 이서현이 태어난 이후로는 그녀를 친딸처럼 아껴 주었다. 이서현도 그를 가족처럼 여겼다. 민 집사님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하면서도 이서현을 꼭 안아주며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아가씨, 이렇게 컸는데 아직도 어릴 때처럼 애교를 부리니 이 늙은 몸으로는 버티기 어렵네요.” 그렇게 말했지만, 얼굴에는 책망이 아닌 따뜻한 미소가 가득했다. 김도하는 이렇게 생기 있고 활기찬 이서현을 바라보며 목이 메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원래 이서현에게도 이런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었나?’ 3년 동안 그는 이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서현은 민 집사님을 한참 동안 안고 있다가 아쉽게 손을 놓으며 말했다. “민 집사님, 우리 빨리 들어가요.” “그래요. 아가씨, 우리 빨리...” 민 집사님은 말을 마치다가 그제야 옆에 서 있는 김도하를 발견했다. 그는 당황한 듯 웃으며 말했다. “김 대표님, 오늘은 웬일로 함께 오셨습니까?” 알다시피, 이서현이 본가에 돌아오는 날은 항상 혼자였고, 이서현과 김도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다들 알고 있었다. 오늘 김도하가 함께 온 것은 그야말로 의외였다. 민 집사님은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 “김 대표님, 안으로 들어오세요.” 김도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이서현과 나란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 민 집사님이 이서현과 김도하를 데리고 거실로 들어서며 큰 소리로 외쳤다. “사모님, 작은 도련님과 아가씨가 돌아왔습니다!” 민 집사님의 목소리에 정미숙과 이현은 동시에 각자의 방문을 열고 이서현을 맞이했다. “서현아, 어떻게 온 거야?” 정미숙이 가장 먼저 반응하며 이서현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그냥 가족들이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는 어디 계세요? 왜 안 보이시죠?” 그 말을 들은 정미숙은 설명했다. “회사 일로 바빠서 아직 안 돌아오셨어. 내가 조금 있다가 전화해서 오늘은 일찍 들어오시라고 할게. 다 같이 식사나 하자.” 이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현에게 다가가 말했다. “현아, 요즘 어떻게 지내?” 이현은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김도하를 쳐다보며 말했다. “누나, 저 사람은 왜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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