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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김건국은 아내가 더 화를 낼까 봐 주저하지 않고 바로 강이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여정은 잠시 감정을 추스르고 나서 말했다. “시연이가 이제 자기 일을 제대로 해보려고 하잖아요. 연기나 감독 쪽은 당신이 잘 아니까, 우리가 말이 좀 통할 때 조금 도와주면 좋겠어요.” “아휴,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시연이는 내 자랑스러운 제자잖아요. 그때 이준이 때문에 작품을 그만뒀을 땐 내가 제일 마음 아팠다니까요. 그 일로 내가 당신한테 한 소리 했던 거 기억 안 나요? 괜히 나서서 중매했다고 잔소리했던 거 말이에요.” 안여정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나도 너무 후회돼요.” 강이준은 전화를 받았을 때 장아라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장아라는 대상을 받은 기념으로 밥을 사달라며 먼저 제안한 터였다. 강이준은 이시연과의 이별 문제로 마음이 복잡했지만 장아라가 반쯤 애교 섞인 목소리로 부탁하자 깊이 생각하지 않고 승낙했다. ‘시연이가 아라만큼만 부드럽고 순종적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즈음 장아라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시연 언니가 오빠한테 연락한 거예요?” 강이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선생님이 갑자기 집으로 오라셔서 잠깐 다녀와야 해.” “김건국 선배님? 와, 정말 대단한 분이시잖아요. 저도 같이 뵈면 안 될까요?” 강이준은 처음엔 거절하려 했지만 장아라의 기대에 찬 얼굴을 보니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의 하얗고 고운 뺨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가자. 근데 도착하면 말조심해. 선생님은 괜히 관계 억지로 엮는 사람들 별로 안 좋아하셔.” 장아라는 입을 삐쭉 내밀고 그의 손을 툭 쳐내며 말했다. 목소리에는 기대가 가득했다. “저는 그냥 김건국 선배님을 한 번 만나 뵙고 싶어서요. 선배님이 연출하시는 작품에 제가 작은 배역이라도 들어갈 수 있다면 정말 만족할 것 같아요.” 강이준은 그녀의 기대 가득한 얼굴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선생님이 다시 작품을 연출하신다면 내가 최선을 다해 네가 배역을 얻을 수 있게 도와줄게.” 김건국의 집은 아담한 주택이었다. 앞에는 아늑한 정원이 있고 대문은 소박한 철제 울타리 문이었다. 집 안 거실에서 두 사람은 창문 너머로 대문 앞의 상황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강이준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고 김건국은 아내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여보, 이따가 말할 땐 너무 화내지 말고 잘 얘기해 봐요. 나는 아직도 둘이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시연이는 마음이 여리니까, 이준이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잘 달래준다면 관계를 회복할 수도 있을 거예요. 앞으로는 행동도 조심하고 거리를 지킬 건 지키면서...” 김건국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안여정이 탁자를 탁 내리쳤다. 김건국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아니, 무섭게 왜 또 이래요? 내가 분명히 화내지 말라고 했잖아요?” “내가 왜 화를 내겠어요. 우선 밖에 누가 와 있는지 보고 나서 얘기해요.” 안여정은 냉소를 흘리며 창밖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문을 열러 나가려던 김 집사를 불러 세웠다. “김 집사, 문 열어주지 마.” 안여정은 강이준이 차에서 내려 장아라의 차 문을 열어주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김건국도 창밖을 보니 두 사람이 대문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장아라는 고개를 살짝 들어 밝고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강이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딱 보기에도 한 쌍의 커플처럼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시연과 비교하자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김건국은 휴대폰을 꺼내 장아라의 이름을 검색한 뒤 프로필 사진을 찾았다. 그리고 대문 밖의 그녀와 비교하더니 결론을 내렸다. “장아라네요.” 그는 말을 마치며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는 저 아이와 아무 인연도 없는데, 왜 여기에 온 거지?” “왜 왔겠어요? 나이가 드니 머리가 둔해졌어요?” 안여정은 화가 치밀어 가슴이 답답해졌다. “당연히 그 좋은 오빠 따라와서 선생님과 인맥 좀 쌓아보겠다는 속셈이겠죠!” 김건국은 픽 웃으며 말했다. “여보, 시연이를 안쓰러워하는 건 좋은데, 너무 화내지 마요. 건강에 안 좋아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당신 말대로 할게요.” 밖에서는 강이준이 초인종을 두 번째로 눌렀다. “이준이한테 전화해서 우리가 잠깐 외출했다고 전해요. 그러니 대문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세요.” 안여정은 김 집사를 손짓하며 불렀다. “김 집사, 나가서 이준이한테 전해. 우리가 십 분 전에 나갔다고. 그러니까 대문 밖에서 기다리라고 해.” 김 집사는 망설이며 물었다. “사모님, 만약 들어오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죠?” “문 막고 들어오지 못하게 해. 내가 말한 대로 대문 밖에서 기다리라고 전해!” 김건국은 그녀의 의도를 눈치챘다. 강이준을 문 밖에 세워두는 건 이시연을 위한 작은 복수이자 그를 다잡기 위한 경고였다. 김 집사는 서둘러 대문으로 나가 강이준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강이준 씨, 죄송해요. 제가 바빠서 이제야 소리를 들었네요.” 그녀는 대문조차 열지 않았다. 그러자 강이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선생님과 사모님은 어디 계시나요?”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김건국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네, 선생님. 저는 집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천천히 오세요.” 전화를 끊자 장아라는 고개를 갸웃하며 해맑게 웃었다. “그럼 잠시 기다려요. 어차피 오늘 다른 일도 없잖아요.” 강이준은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나서 다시 김 집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김 집사님. 저희 먼저 들어가도 될까요?” 하지만 김 집사는 문을 열 기색조차 없이 공손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모님께서 대문 밖에서 기다리시라고 하셨어요. 금방 돌아오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강이준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대문 밖에서요?” 김건국과 안여정은 평소 강이준과 이시연을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해 왔다. 그들이 먼저 전화로 오라고 불러놓고는 갑자기 외출한 것도 모자라 집 안에도 들이지 않다니 강이준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김 집사에게 물었다. “선생님과 사모님께 무슨 일이 있는지 아세요? 어디로 가셨는지 알려주시면 제가 가서 도와드릴게요.” 김 집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선생님과 사모님께서 그냥 일이 있다고만 하셨어요.” 장아라는 곁에서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강이준을 달랬다. “오빠,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단순히 급한 일이 생기셔서 나가신 걸 수도 있잖아요.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셨으니 잠깐 기다려보죠. 날도 안 덥고 여기 경치도 괜찮은데요.” 그녀는 오늘 반묶음 머리에 허리 부분에 큰 리본이 달린 순백의 롱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은 마치 캠퍼스 드라마에서 막 빠져나온 대학생 같았다. 그녀는 데뷔 때부터 학원물에서 국민 첫사랑 이미지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배우였다. 강이준은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바람에 흩날린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살짝 미소 지었다. 둘의 다정한 모습은 창문 너머로 이들을 지켜보던 안여정의 분노를 폭발시키기 충분했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던질 뻔했다. 김건국이 황급히 그녀를 말리며 소리쳤다. “여보, 진정해요! 그거 귀한 도자기라고요.” 안여정은 냉소를 지으며 찻잔을 탁자 위에 세게 내려놓았다. “흥!” 강이준과 장아라는 대문 밖에서 무려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 강이준은 시간을 확인하며 점점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전화를 걸어 물어보려고 했지만 장아라가 제지했다. 그녀는 땀에 젖은 잔머리가 이마와 뺨에 달라붙어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요. 이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괜히 선생님께 실례가 될까 봐 걱정돼요. 나쁜 인상을 남기면 안 되잖아요.” 강이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마음속의 답답함과 짜증을 억누르려 애썼다. 대략 30분 정도 더 지났을 때 옆집 이웃이 집에서 나왔다. 이웃은 웃으며 물었다. “김 선생님 댁에 뵈러 오셨어요?” 강이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장아라가 짧게 대답했다. “네, 맞아요.” “아유, 가끔 건국 씨 부부를 보면 참 부러워요. 자녀는 없으셔도 은퇴 후 집에서 이렇게 지내시는데 학생들이 종종 찾아오잖아요. 오늘 아침에도 예쁜 아가씨가 다녀갔던데요.” 그 이웃은 꽤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시작하니 멈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나는 그렇게 예쁜 아가씨는 처음 봤어요. 건국 씨가 영화 감독이셨으니, 혹시 그분 영화에 출연했던 여주인공인가 싶더라고요.” 강이준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장아라는 그렇게 예쁜 아가씨는 처음 봤다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를 앞에 두고도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잠시 침묵하던 장아라는 조용히 이시연의 특징을 간략히 설명하며 물었다. “혹시 그분이 이런 모습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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