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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장

옅은 빛이 병실 안을 비추고 이시연의 피부는 빛에 반사되어 투명해 보였다. 시끄러운 핸드폰 벨 소리가 병실의 고요함을 깨뜨렸으나 이시연은 들리지도 않는지 가만히 누워 있었다. 시선은 여전히 창밖의 소나무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마치 그 나무는 평범한 소나무가 아니라 이 상황을 도피시켜 줄 동아줄인 것처럼 보였다. 강이준이 목을 가다듬더니 이렇게 말했다. “시연아, 나가서 전화 좀 받고 올게. 금방 다시 돌아올게.” 강이준은 이시연의 대답을 기다렸으나 돌아오는 건 대답 대신 두 번째로 걸려 온 전화였다. 강이준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장아라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 연속으로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올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병실 밖으로 몸을 돌렸다. 문손잡이에 손을 올리는데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준아, 다시 여기 오지 마.” 강이준이 그 자리에 뚝 멈춰 섰다. 그리고 잠긴 목을 가다듬으며 겨우 말을 뱉었다. “시연이 네가 지금 홧김이라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내가 급한 일만 처리하고 금방 다시 돌아올게.” 그리고 빠르게 병실 밖으로 나갔다. 강이준이 급하게 복도를 걸어가는 데 익숙한 몸짓이 스쳐 지나갔다. 정장 차림의 그 사람은 큰 보폭으로 걸었고 시선이 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너무 빠르게 지나쳐 옆선만 겨우 확인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육서진과 닮아 있었다. 그런데 육서진의 키가 이렇게 컸던가? 스무 살을 넘긴 사람도 키가 크던가? 더구나 육서진의 분위기가 기억 속보다 훨씬 강해져 강이준은 기분이 착잡해졌다. 육서진은 이시연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이시연을 만나러 가는 것 같았다. ‘매일 다른 사람의 애인을 감싸고 돌다니. 정말 무슨 악취미가 있는 거야!’ 강이준은 생각할수록 짜증이 치솟아 육서진을 막아서려 했다. 그런데 전화 상대편에서 장아라가 드물게 큰 소리로 우는 게 들렸다. 그러자 강이준의 관심사는 장아라를 향해 돌아가고 여러모로 신경이 곤두세워진 강이준의 말투는 전보다 쌀쌀맞았다.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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