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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장 수지에게 빚진 것

수지의 말이 끝나자 전화기 너머에서 추설희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는 이미 마음을 정리하고 연회를 열어 모두에게 자신의 친딸을 소개할 생각을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자신의 신분을 떠벌리지 말아 달라고 하는 수지의 말은 남씨 가문에 화려하게 돌아갈 마음이 크지 않다는 뜻이었다. 추설희는 잠시 생각하다가 눈가가 붉어진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수지야, 네 말 들어줄게.” “미안하다. 엄마 아빠가 20년이나 자리를 비워서, 너무 늦게 알게 돼서, 너무 늦게 찾아와서 널 오랜 시간 고생하게 한 걸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추설희는 하동국과 김은경이 주지 못했던 것들을 두 배로 보상하겠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다. 사랑은 늘 부족함을 느끼게 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들이 수지에게 빚진 것은 너무나도 많았다. 수지는 침묵했다. 이제 그녀는 20살이 되었고 더는 부모의 사랑을 갈망할 나이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수지는 자신이 받은 사랑이 부족하다고도 느끼지 않았다. 하동국과 김은경이 주지 못한 사랑은 유정숙이 채워줬으니 말이다. 하동국과 김은경을 미워하느냐고 물으면 그렇지도 않았다. 하윤아조차도 미워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자신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무리한 짓을 한다면 수지는 절대로 그들의 횡포를 참아주지 않을 예정이었다. “수지야.” 수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추설희가 다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지금 데리러 갈게. 집으로 돌아와. 응?” “아니요. 제가 직접 갈게요.” “집 주소는 알고 있니?” “알아요.” 수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 박서진은 남지아를 데려다주며 수지와 함께 그 집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남씨 가문의 친딸은 수지였고 남지아는 뒤바뀐 아이였다. 운명은 참으로 혹독하게 그녀를 대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지는 하씨 가문으로부터 가짜 딸이라며 20년간 진짜 딸의 호화로운 삶을 가로채 갔다고 비난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또 가짜 딸에서 20년간의 풍요로운 삶은 빼앗긴 진짜 딸이 되었다. 성수 남씨 가문은 전국 최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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