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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그 화려한 글씨에 송민지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아팠다. 그 뒤, 송민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식사했다. 그녀는 이시아와 배민훈이 집안일과 결혼식 준비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걸 듣고만 있었다. 송민지는 이방인처럼 가만히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고 그 대화에 전혀 낄 수가 없었다. 식사가 끝나자 이시아가 화장실에 갔고 배민훈도 따라갔다. 큰 룸에는 송민지 혼자 남게 되었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졌다. 시간을 봤더니 벌써 여덟 시가 넘었다. 더 늦으면 마지막 버스를 놓치게 될 것이다. 송민지는 몇 분 동안 기다렸고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아 일어나 가방에서 배민훈이 준 카드를 꺼내 배민훈의 자리에 놓고 그 청첩장도 남겼다. 그리고 가방을 메고 떠나면서 웨이터에게 말했다. "저희 오빠가 돌아오면 저는 먼저 간다고 전달 좀 해주세요." 웨이터가 대답했다. "아가씨, 배 대표님과 이시아 씨는 옆방에서 얘기 중이니 조금 더 기다리는 게 어때요?" 송민지는 가방끈을 잡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는 내일 수업이 있거든요." 사실 조금 피곤했다. 계속 기다려도 재미도 없는 이시아와 배민훈의 다정한 모습을 봐야 한다. 그녀는 자신이 이시아를 따라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배민훈이 기분 나빠한다는 걸 느꼈다. 그렇게 송민지는 향미각에서 나와 한참 걸었다. 다행히 마지막 버스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송민지는 버스에서 내려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서 낡은 건물로 들어갔다. 복도의 감지등이 고장 나 송민지는 어두움을 뚫고 겨우 문을 열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그녀는 문을 잠그고 방으로 들어가서 가방을 내려놓고 욕실로 가서 샤워를 했다. 그리고 교복을 벗어 세제에 담가 놓았다. 10시가 지난 뒤에야 송민지는 영어 숙제를 마치고 교과서를 정리하다 말고 갑자기 가방에서 다른 사람의 노트를 발견했다. 가방에서 꺼내보니 새 노트였고 한 페이지를 넘겨보니 주익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그 이름을 부드럽게 만졌다. 그의 글씨체는 아주 깨끗했다. 송민지가 아는 남자 중에 배민훈을 제외하면 주익현의 글씨가 제일 이쁠 것이다. 한 페이지를 더 넘기니 주익현이 그녀에게 그려준 수학 물리 공식이 있었다. 지난번 주익현이 자신의 가방에 넣어둔 건데 송민지가 깜빡하고 돌려주지 못했다. 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누구일까? 여전히 노크 소리가 들리자 송민지는 나가서 문을 열었다. 배민훈이었다. 그가 왜 온 것일까? 송민지는 문을 열자마자 코를 찌르는 술 냄새를 맡았다. "오빠... 왜 온 거예요?" "오면 안 돼?" 송민지는 손을 꽉 쥐었다. "아니에요." 그녀는 배민훈이 안으로 들어오게 길을 비켜주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왜 아직도 안 자는 거야?" 배민훈이 들어오자 송민지는 곧바로 문을 잠갔다. 바람이 불자 그의 몸에서 담배와 술 냄새가 났고 금방 접대를 마친 것 같았다. 거기에 그의 은은한 체향이 더해져 아주 좋은 냄새가 났다. 하지만 송민지는 그의 뒷모습조차 똑바로 볼 수 없었다. '그가 술을 마신 걸까?' '이시아와 임신 준비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송민지는 고개를 숙인 채 그의 구두를 바라보며 가볍게 대답했다. "방금 숙제를 끝냈어요." 그녀는 처음으로 배민훈과 단둘이 있을 때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오빠, 해장국을 가져올게요." 지난번에 만든 해장국이 아직 냉장고에 남아있다. 송민지가 주방에서 나오니 거실에는 배민훈이 없었다. 해장국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보니 배민훈이 자신의 책상 앞에 서 있었고 노트를 든 채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이 많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배민훈은 화가 난 듯했다. 그가 차가운 어투로 물었다. "주익현이 누구야?" 갑작스러운 호통에 송민지는 깜짝 놀라 부들부들 떨더니 설명했다. "같은 반 친구예요. 단지 저한테 노트를 빌려준 거예요. 오빠... 오해하지 마요. 우리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에요." 그녀의 겁에 질린 듯한 모습에 배민훈은 차가운 눈빛을 거둔 채 부드럽게 미소 짓더니 노트를 내려놓고 어른 같은 모습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민지야... 오빠는 널 혼내는 게 아니야. 그냥 네가 아직 어리니까..." "오빠가 말했잖아. 넌 지금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고. 알겠지?" 그의 목소리는 아주 듣기 좋았다. 온화한 말투였지만 송민지는 여전히 그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의 말에 송민지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머리를 끄덕였다. "오빠, 알았어요. 오빠가 걱정할 일은 안 할 거예요." 지난번 주익현이 그녀에게 고백한 일 때문에 학교 전체가 소란스러워져 하마터면 부모님까지 부를 뻔했다. 송민지의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니 남아있는 가족이라곤 배민훈밖에 없다. 하여 입학할 때 배민훈의 연락처를 적었다. 송민지는 선생님이 보호자를 데려오라고 하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만약 주익현이 먼저 나서서 부탁하지 않았다면 배민훈이 학교에 간 뒤 그 사실을 알게 되면 그의 성격상 주익현을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난 공부에 집중할 거예요. 오빠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두려움에 아주 나긋나긋하게 맹세했다. 그때 배민훈은 그녀가 들고 있던 해장국을 테이블에 옮겨놓고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송민지는 몸이 잔뜩 굳은 채 자신의 손을 빼려고 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배민훈이 물었다. "약은 발랐어?" "발랐어요." 송민지는 얼른 자신의 손을 뺐다. "오빠, 시간이 늦었으니 돌아가요. 저... 피곤해요. 내일 수업도 있어요." 배민훈이 손을 거두었다. "아직도 오빠한테 화난 거야?" 송민지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그때 배민훈이 그녀에게 다가가자 송민지는 고개를 숙였고 두 사람의 거리가 아주 가까웠다. 배민훈이 추궁하는 듯한 어투로 물었다. "아니야? 그럼 왜 내가 들어온 이후로 넌 오빠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거야? 왜 피하고 있어?" "오빠를 만나 무서운 거야, 아니면... 오빠를 보고 싶지 않은 거야?" 송민지는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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