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하늘 땅이 빙글 돌더니 그녀는 소파 위로 넘어졌다.
남자의 따가운 시선은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하필이면 많고 많은 남자 중에서 김찬혁에게 꼬리를 치다니!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게 목적이야? 아니면 나의 체면을 깎으려고 한 짓이야? 그것도 아니면 소시연이 미워서 일부러 복수하려고 그랬어?”
온세라의 손목은 최서진에게 꽉 잡혀 움직일 수가 없었고, 당황한 채 그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최서진은 손가락으로 온세라의 눈가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맑고 아름다운 눈이지만 아쉽게도 나쁜 의도로 꽉 찼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더러워졌어. 온씨 가문의 딸이 어찌 깨끗할 수 있겠어?”
그의 말투에는 왠지 증오가 서려 있었다.
‘증오?’
온세라는 그의 증오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최서진에게서 벗어나려고 온세라는 안간힘을 다해 발버둥 쳤다.
[놔주세요... 날 놔줘요...]
그럴 수록 최서진은 힘을 더 줬고 온세라는 손목아 더 아팠다. 며칠 동안 최씨 가문에서 전전긍긍하였는데 이젠 오명까지 쓰게 되니 억울함이 차올랐다.
몸부림치는 동안 병원의 진단서가 그녀의 주머니에서 떨어졌다. 외할머니 것이었다.
최서진은 그것을 주워 보고는 표정이 굳어버렸다.
‘거짓말이 아니네...’
최서진은 눈물이 범벅이 된 온세라를 내려다보았다.
온세라가 자신의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소리 없이 눈물이 볼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며 최서진의 분노도 이렇게 이유없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봐주지만 앞으로 김찬혁과 지나치게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이면 너를 가두어 버릴 거야!”
마지막 한마디에 온세라는 흠칫하더니 몸을 떨었다.
최서진이 떠난 후에야 온세라는 진단서를 집어들고 결국 눈을 감고 소리내어 통곡했다. 외할머니가 아니었으면 이 최씨 가문을 떠나고 싶었고 영원히 최서진이라는 이 남자를 보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온세라는 퉁퉁 눈이 부은 채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저녁 이후로 온세라는 최서진과 마주치는 시간을 피하였고 어쩔 수 없이 마주칠 때마다 못 본 척하곤 했다.
심지어 오해를 피하려고 김찬혁이 떠난 후에야 내려왔다.
김찬혁의 실의에 빠진 모습을 지켜본 소시연은 화가 치밀었다. 소시연는 직설적으로 온세라에게 경고했다.
“네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던 내 아들한테 접근해서는 안 돼! 내 말 알아 들었어?”
소시연과 다투기 싫었던 온세라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떠나려 했다.
그러자 소시연이 차갑게 말했다.
“거기 서!”
온세라는 등진 채로 제자리에 서서 소시연의 훈계를 들었다.
“네가 감히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부린다면 너를 죽기보다 못하게 만들 거야.”
온세라는 몸을 돌려 소시연를 바라보면서 종이에 적으며 해석하였다.
[선생님과 우연히 마주쳤을 뿐 이모가 생각하는 목적은 없어요. 앞으로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것이고 멀리 피할 거예요.]
온세라가 각서를 쓴 후에야 소시연의 표정은 조금 누그러졌다.
“네가 한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약속을 어긴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온세라는 종이와 펜을 치우고 무기력하게 자리를 떴다.
온세라가 떠난 뒤 오미숙이 소시연에게 다가가 말했다.
“사모님, 저 여자 말을 믿을 수 없어요.”
“무슨 뜻이야?”
오미숙은 정색해서 말했다.
“대표님께서는 미라 씨를 좋아하니 조만간 온세라와 이혼할 거예요. 온세라는 이 점을 예상하고 찬혁 도련님에게 주의를 돌린 게 틀림없어요. 찬혁 도련님을 이용해 권세가 있는 가문에 빌붙기 위해 오늘 각서를 써서 사모님을 안정시켰을 뿐이에요.”
그 말을 들은 소시연은 얼굴색이 흐려졌다.
“그럼,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오미숙은 잠시 생각해본 후 입을 열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찬혁 도련님과 만나는 것을 막아야 하고, 다른 하나는 미라 씨가 가능한 한 빨리 온세라를 쫓아내야 해요. 이렇게 하면 온세라가 최씨 가문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없게 될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무슨 변수가 생길지...”
소시연은 이 말을 듣고 나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한참 후 그녀는 온미라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