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온세라는 깜짝 놀랐다. ‘누구일까?’ 온세라는 초조해서 종이에 적었다. “원장님, 실례지만 누가 돈을 냈는지 얘기해 줄래요? 고맙다고 인사라도 드려야겠어요.” 김찬혁이 계속 비밀로 해달고 당부한 것을 생각하며 원장은 미소지은 얼굴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세라 씨, 미안해요. 상대방이 병원에서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하니 양해해 주세요.” 온세라는 매우 실망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돌아가는 내내 이 일을 생각했다. 아는 사람 중에는 그녀를 도와 이렇게 많은 치료비를 내줄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왜 도와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큰 은혜를 그녀는 반드시 갚아야 했다. ‘괜찮아, 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어떻게든 은인을 찾을 거야.’ 곧 차는 최씨 저택에 도착했고 날도 점차 어두워졌다. 온세라가 도착하자 뒤이어 김찬혁도 집에 돌아왔고 두 사람은 우연히 또 거실에서 만났다. “세라 씨, 같이 집에 가려고 병원을 다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아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가셨더라고요.” 김찬혁은 웃으면서 온세라에게 인사했다. 하얗고 예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왠지 기분이 좋아져 종일 수술을 하고 난 피로도 가시는 것 같았다. 온세라는 미안한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 고마워요. 저 일이 있어서 먼저 갔어요.] 김찬혁은 손을 내저었다. 웃을 때 가지런한 이빨이 보였고 두 눈도 별빛처럼 반짝였다. “별말씀을요. 같은 방향이라 그런 거니 신경 쓰지 마세요. 앞으로 병원에 가게 되면 제 차를 타시면 돼요.” 온세라는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김찬혁이 아주 좋은 사람이고 또 최씨 가문에서 유일하게 그녀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일 거로 생각했다. 김찬혁은 소시연의 아들이지만 이 두 모자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소시연의 차가움보다 김찬혁의 친화력은 자기도 모르게 가까이 하고 싶었다. [원장님께서 외할머니는 다음 주 월요일에 수술한다고 하셨어요. 선생님께서 집도하세요?] 김찬혁은 그녀가 메모지에 적은 글을 보고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수술하고 나면 외할머니께서는 완전히 나으실 거예요.” 온세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나서야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위층으로 올라간 온세라는 방에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있는 최서진을 발견했다. 손에 든 담뱃갑과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더니 능숙한 동작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하얀 연기 사이로 남자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이며 방 안의 분위기가 기이하게 느껴졌다. 온세라는 그런 최서진을 바라보며 깜짝 놀랐다. ‘지난번에 부엌에서도 우연히 마주쳤는데 이번에도 우연일까?’ ‘하지만 만약 우연이라면 왜 하필이면 내 방에 나타난 거지?’ 최서진은 소파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김찬혁과 종일 밖에 나가서 놀았고 또 아래층에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어. 온세라, 연약한 외모와 달리 야망이 큰가 봐, 김찬혁에 접근하려 하다니!” 온세라는 안색이 변하더니 얼른 종이와 펜을 꺼내어 설명했다. [김찬혁 선생님은 외할머니의 수술 담당 의사예요. 우린 외할머니의 일을 토론했을 뿐 당신이 생각한 그런 것이 아니에요.] 종이를 들고 대수롭지 않게 위에 적힌 글을 한번 훑어보던 최서진은 아예 찢어버렸다. 최서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눈빛도 따라서 어두워졌다. “내가 눈이 먼 줄 알아?” 온세라는 최씨 가문에 온 후로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래층에서 김찬혁을 보고 웃는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김찬혁이 그녀를 보는 눈빛도 좋아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일이 없다는 것을 아무도 믿지 못할 것이다! “내게서 이득을 보지 못하니 이젠 찬혁에게 접근하려고? 찬혁이가 벙어리를 진심으로 좋아할 것 같아?” 온세라의 얼굴은 갑자기 하얗게 질렸다. ‘김찬혁과는 아무런 사이가 아닌데 왜 오해하는 거지?’ ‘이렇게 나를 모욕하면 재미있을까?’ 온세라는 변명할 생각조차 없었다. ‘생각하기 나름이야.’ 그녀는 쌀쌀한 표정을 지으며 싸우지 않으려고 지나가려 했다. 그때 최서진이 갑자기 손목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