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강원우의 얼굴에는 순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모습에 간수연은 순간 멍해졌다.
간수연은 강원우가 더한 대가를 요구하거나 드라마 같은 헌신적인 조건을 내걸 것이라고 예상했었지 단순하게 밥 한 끼를 사달라고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감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
“흥! 내 목숨이 고작 밥 한 끼 값이란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강원우는 순간 당황했다.
그의 다급한 모습에 간수연은 푸흣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웃음은 마치 백화가 만개한 듯했고 별빛 아래서 그녀의 미소는 찬란했다.
“장난이야. 그냥 너한테 보답하고 싶었을 뿐이야.”
강원우는 순간 멈칫했다.
예전의 간수연은 늘 지적이면서도 우아했고 때로는 차갑고 범접할 수 없는 여신 같았지만 지금은 가벼운 농담 한마디로 마치 여신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강원우의 시선을 의식한 간수연은 조금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원우야, 어쨌든 고마워. 밥도 사주고 싶지만 나 내일 오전에 명주에 가야 해.”
명주시는 국내의 유명한 도시 중 하나로 수도와 나란히 언급될 만큼 중요한 도시였다.
하지만 강원우가 살고 있는 강진시와는 수천 리나 떨어져 있어 이번에 헤어지면 언제다시 만날 지 장담할 수 없었다.
강원우는 놀라며 물었다.
“명주시에 왜 가는데?”
간수연의 얼굴에 약간의 쓸쓸함이 떠올랐다.
“명주대학교에 지원하려고. 그리고 우리 부모님도 명주로 이사 가.”
명주대학교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명문대 중 하나였다.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이곳에서는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배출되었고 국내 톱5에 속하는 학교였다. 명주대학교에 합격하려면 그야말로 뛰어난 인재여야 했다.
그런데 간수연의 태도를 보니 그녀는 합격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듯했다.
강원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중에 인연이 닿으면 다시 사 줘. 어쩌면 나도 명주에서 공부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정말?”
간수연은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전화번호 좀 줄래? 나중에 명주에 가면 번호를 바꿀 거라서 그때 연락할게.”
강원우는 흔쾌히 번호를 간수연에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강원우도 명주로 가면 번호를 바꿀 예정이었고 두 사람이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인연에 달린 일이었다.
간수연은 신중한 표정으로 번호를 외우며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꼭 명주에 와야 해, 약속해.”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눈빛에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눈빛이 마치 밤하늘의 별빛처럼 빛나 보였다.
간수연은 순간 지금의 강원우는 이전보다 훨씬 더 자신감에 차 있고 그 행동 하나하나에서 묘한 매력이 발산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의 마음이 묘하게 흔들렸다.
“오늘 지민이가 너를 거절했는데 실망했어?”
간수연이 갑자기 물었다.
“아니. 예상했던 일이야. 고백한다는 건 거절당할 가능성도 각오하는 거지.”
강원우는 담담하게 답했다.
간수연은 조심스레 강원우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얼굴에는 낙담한 기색 없이 오직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무한한 희망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간수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강원우가 거절당한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집안 환경과 학업 성적을 제외한다면 강원우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허지민의 선택도 이해할 수 있었다.
미래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했고 고등학생 시절의 인연은 원래 지속되기 어려운 데다가 두 사람의 가정 환경도 차이가 컸다.
이제는 신분과 지위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은 다른 계층 간의 연애는 슬픈 결말을 맞이하고는 했다.
게다가 허지민은 이미 유명한 교수인 주기현의 제자였고 강원우는 아직 대학 입학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허지민은 빛나는 미래로 걸어갈 것이었고 강원우는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다고 해도 특별한 기적이 없는 한 허지민과 동등한 곳까지 도달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강원우가 고백했을 때 이미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간수연의 마음이 조금 우울해졌다.
“원우야, 네가 부른 시간 정말 좋았어.”
간수연은 강원우가 부른 노래로 화제를 돌렸다.
그녀는 이전부터 그 노래를 좋아했다.
강원우는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나도 이 노래 정말 좋아해.”
간수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강원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노래, 정말 네가 부른 거 아니야?”
그녀의 기대 가득한 눈빛을 보고 강원우는 잠시 망설였지만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야.”
간수연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스쳤다.
‘정말 원우가 부른 것이거나 직접 작곡한 곡이었다면 정말 대단한 일일 텐데... 아쉽네.’
아쉬운 마음을 안고 한참을 보내니 두 사람의 옷은 드디어 말라 있었다.
어색한 기류를 피하려 옷을 입고 나니 강가에 배들의 불빛이 반짝였고 멀리서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강원우는 주의 깊게 배들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배에 앉은 사람들은 친구들이었고 그들은 강을 따라 배를 저으며 두 사람을 찾고 있었다.
강원우와 간수연은 불 가에 서서 손을 흔들며 크게 외쳤다.
“여기야! 우린 무사해!”
배가 서서히 다가오니 그제야 배에 있는 사람들이 또렷이 보였다.
맨 앞에는 배진호와 고경표가 서 있었는데 강원우와 간수연이 무사히 안가에 서 있는 모습을 보자 친구들은 기쁨에 차서 환호성을 질렀고 심지어 몇몇 여자 친구들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친구들은 배에서 뛰어내려 두 사람을 포옹하며 계속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간수연은 강원우를 바라보며 얼굴을 붉혔다.
“원우가 나를 구해줬어.”
순간 주변에서 다시 한번 놀라움의 탄성이 터져 나왔고 강원우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존경이 가득했다.
대박이라는 감탄사와 함께 그를 향한 찬사가 끊이지 않았다.
배진호는 강원우의 가슴을 한 대 툭 치며 놀란 듯 외쳤다.
“강원우, 너 진짜 대박이다. 완전 우리 영웅인데?”
강원우가 간수연을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강물로 뛰어들었던 장면이 모두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처음엔 강원우마저 물에 빠져 위험할 거로 생각했지만 정말 간수연을 무사히 구해내니 그 짜릿함은 말로 이을 수 없었다.
‘정말 멋있잖아?’
간수연은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끊임없는 걱정과 위로를 받았다.
다행히 위험한 상황이 무사히 넘어가자 친구들의 마음속에 있던 공포도 기쁨으로 바뀌었다.
해가 점점 저물어 가고 있었고 위험한 일이 있고 나니 더 이상 놀 기분도 들지 않았던 탓에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고 모임은 조용히 막을 내렸다.
이제 곧 수능 성적이 발표되면 모두가 각자의 길을 가게 될 터였다.
수능이 끝난 지금 수험생들에게는 완전한 자유의 여름방학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수능 성적 발표까지는 아직 한 달 정도 남아 있었고 그 한 달 동안 강원우와 배진호, 그리고 고경표는 마음껏 이 방학을 즐겼다.
세 사람은 함께 강가에 가서 물고기를 잡기도 하고 PC방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가끔 당구를 치러 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