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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언제부턴가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장대비가 쏟아졌다. 학생들이 짐을 챙겨서 뿔뿔이 흩어질 때 공원 호숫가 근처에서 착잡한 비명이 들려왔다. “사람 살려요! 여기 누가 물에 빠졌어요!” “수연이야! 누구 좀 와봐요! 수연이가 빠졌다고요!” “사람 살려요!” 불현듯 들이닥친 구조 요청에 모두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강원우가 재빨리 강 옆으로 달려갔는데 짙은 어둠 속에 거센 파도가 일렁이고 희미하게나마 누군가가 손을 흔들며 허우적대는 걸 발견했다. 그 손마저 이제 곧 강물에 뒤덮일 것 같았다. 위험하고 아찔한 이 순간, 강원우는 더 고민할 새도 없이 재빨리 옷을 벗고 강물에 뛰어들었다. “원우, 너 미쳤어? 여기 강물이야!” 배진호가 큰소리로 외쳤다. 거센 파도가 일렁이는데 강물에 뛰어드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거나 다름없다. 다만 강원우는 그의 외침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속에 뛰어들어 한 마리 물고기처럼 간수연이 사라진 방향을 따라 헤엄쳐갔다. 장대비가 더욱 거세게 쏟아졌고 수면에 파도가 더 세차게 일었다. 이제 좀처럼 방향을 가늠할 수 없지만 강원우는 어렸을 때 강변에서 커왔던 경험을 되새기며 열심히 헤엄쳤다. 또한 그는 요즘 체력이 대폭 상승하여 가뿐히 속도를 올렸다. 간수연이 사라진 방향을 빤히 쳐다보니 마침내 손을 흔드는 그녀를 발견했다. 어둠이 드리워진 밤이지만 강원우의 눈에는 그 손이 너무 잘 보였다. 그는 재빨리 그 손을 향해 헤엄쳤다. 그 시각 간수연은 강물을 너무 많이 삼켰고 의식을 거의 잃어가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온실 안의 화초로 자라온 그녀는 부모님의 엄한 교육하에 수영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강 옆의 쓰레기를 주우려다가 거센 파도에 그만 휘말려버린 것이다. 주위가 어두컴컴해지고 이대로 저승길에 오르나 싶었다. 바로 이때 강원우가 그녀의 손목을 확 잡고 막강한 힘으로 수면 위에 끌어올렸다. 익숙한 목소리가 어렴풋이 귓가에 울렸다. “내가 구해줄 테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이 손 꼭 잡아.” 간수연은 상대의 얼굴이 잘 안 보이지만 목소리만은 또렷하게 들렸다. 상대의 이름을 부르려고 할 때 강물이 또다시 들이닥쳐서 하마터면 깊숙이 가라앉을 뻔했다. 강원우는 그녀를 꽉 붙잡고 애써 평형을 유지하며 가장 체력을 아끼는 자세로 배영했다. 그의 진중한 목소리가 또다시 귓가에 울렸다. “움직이지 말고 내 몸에 손을 걸치고 있어. 우리 이대로만 헤엄쳐가면 오아시스가 나올 거야.” 간수연은 매우 잘 협조했다. 더는 몸부림치지도 않고 강원우의 몸 위에 손을 올린 채 나란히 평형을 유지하면서 헤엄쳐갔다. 강원우는 마치 가라앉을 줄 모르는 나무판 같았고 간수연은 그의 몸 위에 엎드린 채 가슴팍에 머리를 기대고 쿵쾅대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수면은 여전히 파도가 출렁거렸지만 간수연은 어디서 난 용기인지 더는 무섭지가 않았다. 그렇게 한참 헤엄쳤더니 빗물이 잦아들고 수면 위도 잔잔해졌다. “저기 봐봐, 오아시스야!” 강원우가 의식을 잃어가는 그녀를 황급히 깨웠다. 머리를 들어보니 기적처럼 강물 한가운데 파릇파릇하고 생기가 넘치는 오아시스가 떡하니 나타났다.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났다는 걸 깨닫게 되자 간수연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한편 강원우는 한 손으로 그녀를 받쳐주고 다른 손으로 열심히 헤엄쳤다. 두 사람은 마침내 언덕 위에 올라왔다. 강원우는 숨을 헐떡거렸고 간수연은 모랫바닥에 축 늘어졌다. “걸을 수 있겠어?” 그가 관심 조로 물었다. 간수연은 좀전의 충격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서 머리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강원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녀의 나른한 몸을 덥석 안아 올리고 모래사장 중심 구역으로 걸어갔다. 이제 막 내려놓으려고 할 때 문득 그녀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너무 추워...” 강원우는 본인의 체온으로 조금이라도 그녀를 녹여주려고 꼭 끌어안았다. 간수연은 살짝 미안했지만 그의 품에 안기니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서 얼굴에 홍조기를 띠었다. 이제 두려웠던 마음도 서서히 가라앉고 마침내 쏟아져 내리던 장대비가 멈췄다. 별이 반짝이는 밤, 그녀는 강원우의 품에 너무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 “원우야, 이제 그만 놓아줄래?” “그래.” 나직이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강원우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살며시 놓아주었다. 간수연은 이미 그의 품을 떠났지만 은은한 체취가 여전히 온몸을 감싸 안았고 새삼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강원우는 별안간 라이터를 한 개 꺼냈다. 강물에 그토록 잠겨있었지만 여전히 불이 달리는 라이터였다. 그는 오아시스를 한참 헤매다가 비교적 건조한 나무 막대기를 찾아와 불을 지폈다. 이어서 상의를 벗더니 간수연에게 건넸다. “서로 옷 바꿔 입자!” 간수연은 두 볼이 빨개졌다. 남녀가 단둘이 한 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난감할 따름인데 옷까지 바꿔입자니 이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까? 강원우도 방금 실언을 한 것 같아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네가 추울까 봐...” 간수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두컴컴하고 구석진 곳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은 후 다시 모닥불 옆으로 나왔다. 고등학생인 그녀는 보수적으로 옷을 입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날씬한 몸매가 돋보이고 모닥불에 비친 새하얀 피부가 가슴을 설레게 했다. 강원우는 자꾸만 훔쳐보다가 추태를 부리는 것 같아 머리를 홱 돌렸다. “아직도 추워?” 이 남자는 절대 흑심을 품고 그녀를 이리로 데려온 게 아니다. 간수연도 이 점을 너무 잘 알기에 빨개진 얼굴로 나지막이 대답했다. “이제 괜찮아. 고마워.” 둘 사이에 잠깐 침묵이 흘렀다. 각자 열심히 옷을 말렸으니까. 장대비의 세례를 당하고 별빛이 쏟아지는 이 밤에 싱그러운 풀 내음을 맡으며 오아시스에 있으니 심신 안정을 되찾는 것만 같았다. “원우야,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 간수연이 먼저 적막을 깨트렸다. 그녀는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했다. 방금 물에 빠졌을 때 용감하게 헤엄쳐오던 강원우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한편 강원우는 감격 어린 그녀의 눈빛을 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그 누구라도 똑같이 구해줬을 거야.” 다만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날 구해준 건 바로 너야. 이 은혜에 반드시 보답해야 해!” 강원우가 대뜸 그녀의 말을 잘랐다. “정말 괜찮다니까. 굳이 보답하고 싶다면...” 간수연은 궁금한 표정으로 두 눈을 깜빡였다. “싶다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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