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예전의 나는 아무리 상처를 받아도 기꺼이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하여 그는 진작에 습관이 된 것이다.
그 역시 그렇게 믿고 있다.
캐리어를 끌고 떠나려는데 송민하의 여리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왔어?”
그녀는 단숨에 주하준에게 달려와 그의 팔짱을 끼더니 바짝 붙어 아양을 떨었다.
“알레르기는 좀 어때?”
주하준은 그녀의 앞머리를 정돈해 주며 꼼꼼히 살펴보았다.
“나 많이 좋아졌어.”
송민하는 고개를 들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빠, 여정이 언니한테 화내지 마.”
그녀는 주하준의 팔을 꼭 끌어안은 채 몸을 흔들며 말했다.
“사실 내 잘못도 있긴 해. 내가 체질이 약하지만 않았어도 아빠가 나랑 언니 방 바꾸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을 텐데... 괜히 그 일로 언니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어서 이런 상황이 생긴 거야.”
“그게 왜 네 잘못이야? 속 좁은 사람의 잘못인 거지.”
주하준은 나를 힐끔 쳐다보며 일부러 송민하를 더 품으로 끌어당겼다.
“들어가자. 얼굴 나은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바람 맞으면 안 돼.”
“응!”
나는 껌처럼 찰싹 들어붙은 채 떠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도 내 마음은 잔잔한 호수처럼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
엄마의 기일이 지났지만 아빠는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 주하준의 생일이 다가왔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일찌감치 그의 생일 선물을 준비했을 것이다.
또 최고급 호텔을 예약해 생일 파티를 완벽하게 꾸몄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는 그의 생일을 챙겨줄 생각도 없었다.
오후 5시, 나는 공항으로 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몇 통 들어왔는데 아빠도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너 왜 아직도 안 와? 네 새엄마랑 민하도 다 도착했어.]
[여정아, 마음 좀 넓게 가져. 하준이는 곧 우리와 가족이 될 사람이야.]
[네가 안 오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너희 자매가 틀어졌다고 생각할 거 아니야!]
나는 너무 우스워서 웃음이 다 나왔다.
아빠의 말에 나는 한 마디 답장도 하지 않고 바로 차단해 버렸다.
탑승 준비를 하려는 순간, 또 한 통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왜 아직도 안 와? 다들 너만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러고는 그의 모든 연락처를 차단해 버리고 탑승구로 들어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