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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깊은 밤, 노은정은 좀처럼 잠에 들 수 없었다. 그녀가 머리를 베개에 푹 파묻고 있는데 커다란 손이 옆구리에 슬며시 다가와서 닿았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숨결에 노은정은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어 다가오는 그의 입술을 피했다. 강윤빈은 평소라면 절대 없을 그녀의 거절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결혼하고 3년 동안 항상 먼저 품에 안겨오던 여자였다. 그런데 오늘 어쩌다가 흥이 돋아 먼저 다가갔는데 거절을 당하니 기분이 살짝 상하기도 했다. “기분이 안 좋아?” “오늘 그날이야.” 노은정은 대충 핑계를 둘러댔고 강윤빈도 별다른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에 이불을 당겨다가 그녀의 몸에 덮어주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강윤빈은 오전에 사인한 계약서가 떠올라 그녀에게 물었다. “부동산 계약서 어디 있어? 이상한 부분 없는지 내가 한번 확인할게.” 노은정은 가슴이 철렁해서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꼭 봐야겠어?” 강윤빈은 바짝 긴장한 그녀의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의 침묵 후에 노은정은 서재로 가서 계약서를 가져왔다. 서류를 그에게 건네던 순간, 갑자기 전화벨소리가 들려왔다. 강윤빈은 일어나서 전화를 받았다. “윤빈 오빠! 고지욱 그 자식이 술 잔뜩 마시고 와서 밖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어! 오빠, 빨리 와줘! 나 무서워!” 망나니 기질이 다분한 유세정의 전남편을 떠올리자 강윤빈은 안색이 돌변해서 벌떡 일어나 외투를 챙겼다. 급하게 나가는 그의 등 뒤에 대고 노은정이 물었다. “그 이번에 이혼한다던 동생한테 무슨 일 생긴 거야?” 강윤빈은 그렇다고 대답하려다가 괜히 오해를 사기 싫어서 상황을 심각하게 부풀려서 설명했다. “응. 전남편이 술 마시고 칼 들고 밖에서 난동을 부린다네. 생명이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빨리 가봐야겠어.” 노은정은 더 이상 만류하지 않고 조심하라는 당부만 한 뒤, 그를 배웅했다. 강윤빈이 떠난 후, 날이 밝을 때까지 노은정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들었던 그녀는 며칠 전 몰래 추가한 유세정의 SNS에 영상이 하나 올라온 것을 확인했다. 영상 속에서 붉은 해가 서서히 떠오르며 금빛으로 대지를 물들이고 있었다. 주변에서 탄성이 터져나오는 가운데, 화면이 바뀌더니 강윤빈의 뒷모습이 언뜻 스치고 지나갔다. “어두운 어제는 끝났어. 모든 건 새롭게 시작할 거야.” 영상의 맨 하단에 적힌 글을 보고 노은정은 가슴이 조여오는 것만 같았다. 유세정은 불행한 결혼생활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으로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강윤빈 같이 업계의 엘리트로 불리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았는데 실패할 리 없었다. 하물며, 그 의뢰인이 그가 오래도록 좋아했던 여자였으니 그는 모든 것을 제쳐두고 이 소송에 몰두했을 것이다. 유세정이 솔로로 복귀했으니 아마 얼마 못가 강윤빈은 참지 못하고 자신에게 이혼을 얘기할 것 같았다. 노은정은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상상이 갔다. 그녀의 입가에 처연한 미소가 서서히 피어올랐다. 어차피 이혼은 예정된 결말이라면 그녀가 먼저 나서서 시간을 앞당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버림받는 것보다 먼저 떠나는 것이 적어도 최소한의 체면은 지킬 수 있었다. 노은정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예전에 샀던 커플룩들을 전부 끄집어내서 종이박스에 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집으로 돌아온 강윤빈은 그녀가 혼자 무거운 박스를 들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다급히 달려왔다. “무슨 버릴 게 이렇게 많아?” 노은정은 그의 시선을 회피하며 담담히 답했다. “평소에 잘 안 쓰는 것들 정리했어. 어차피 자리만 차지하니까.” 강윤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뻗어 그녀에게서 박스를 건네받았다.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노은정의 눈빛은 무심하리만치 고요했다. 만약 이때 그가 상자를 열어보았다면 그녀가 버리려는 것이 평소에 그녀가 목숨처럼 아꼈던 물건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의 명석한 두뇌로 분명 그녀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고 그랬다면 어쩌면 이 이야기의 결말이 바뀔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윤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상자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뒤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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