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눈물이 한 방울 한 방울 휴대폰 위로 떨어졌고 그제야 우예린은 눈물이 그녀의 얼굴을 가득 적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분명 곧 떠날 텐데, 분명 스스로에게 슬퍼하지 말자고 굳게 다짐했는데... 하지만 그녀의 감정을 도발하는 장면들을 보는 순간 가슴은 칼로 찌르는 듯 아프고 숨이 막혀왔다.
다들 박시언과 박승윤 부자가 그녀를 지극히 아낀다고 알고 있지만 그녀 또한 그들에게 진심을 다했었다.
박시언은 재산은 많아도 마음은 늘 외로운 사람이었고 그런 그의 옆에 매일 같이 있어 준 사람이 바로 우예린이었다. 그녀는 그의 생일을 함께했고 비 오는 날 우산을 건넸으며 밤이 되면 그가 집에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가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뒤돌아보면 늘 그녀가 그의 뒤에 있어 주었다.
박승윤은 말할 것도 없었다.
10개월을 품고 생사를 오갈 만큼 어렵게 낳은 아이였다.
그녀는 박승윤이 성장하는 매 순간을 함께했고 사람이 되는 법을 가르쳤으며 그렇게 그녀는 이 두 부자에게 모든 사랑을 퍼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진심은 그들의 진심을 바꾸지 못했고 그녀에게 돌아온 건 결국 배신 뿐이었다.
우예린은 더는 사진과 영상을 볼 수 없어 휴대폰을 꺼버렸다.
그녀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강지민은 마음이 조급해졌는지 곧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더는 비굴함과 공손함은 없고 오직 자랑과 조롱만이 가득했다.
“사모님, 사진은 다 보셨겠죠? 지난 1년 동안 대표님과 도련님이 저와 함께한 시간은 사모님과 함께 보낸 시간보다 훨씬 많아요. 두 사람이 아직도 사모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세요? 만약 여전히 사모님을 사랑한다면 제 존재의 의미는 대체 뭐였을까요? 눈치가 있으면 빨리 대표님과 이혼하세요.”
그러게, 두 사람이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다면 오늘날의 강지민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예린은 아무 말 없이 통화 녹음을 마친 뒤 전화를 끊어버렸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박시언은 침대에 누워 눈가가 빨갛게 충혈된 그녀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다급히 침대로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자세히 살폈다.
“예린아, 왜 울었어? 무슨 일 있었어?”
우예리는 잠시 그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한 침대에서 잠을 잤던 사람이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니...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별거 아니야. 그냥 사진 몇 장과 영상을 보고 갑자기 감동해서 그래.”
박시언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고 그녀의 콧등을 어루만졌다.
“대체 어떤 사진과 영상인데 그렇게 감동받은 거야?”
그러자 우예린은 휴대폰을 들어 그에게 건네며 물었다.
“볼래?”
“그래.”
박시언이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을 건네받으려는데 갑자기 그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그는 휴대폰을 힐끔 보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예린아, 회사에 일이 좀 생겨서 나...”
우예린은 그의 휴대폰 화면에 뜬 ‘지민’이라는 이름을 보지 못한 척하며 조용히 휴대폰을 거두며 말했다.
“괜찮으니까 가봐. 나도 자야겠다.”
우예린이 퇴원하는 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산들바람이 솔솔 불어와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춤추듯 내려앉았는데 그 그림자들은 한 폭의 화려한 그림처럼 눈이 부셨다.
박승윤은 우예린의 손을 잡고 깡충깡충 계단을 뛰어내리며 말했다.
“엄마, 드디어 퇴원이야! 엄마가 아픈 동안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그래서 나 요즘 수업도 제대로 못 들었어.”
차에 타자마자 박시언은 급히 담요를 꺼내 그녀의 다리 위에 덮어주며 말했다.
“예린아, 오늘 바람이 꽤 부니까 따뜻하게 굴어.”
박승윤도 아빠를 따라 그녀의 등 뒤에 쿠션을 놓아주며 말했다.
차 안에서 그녀는 내내 기운이 없어 보였고 그런 모습에 부자는 말없이 조용히 있었다.
그러다 박승윤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박시언의 소매를 살짝 당기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우리 오늘 복안사에 가서 소원 빌었던 거 예참하러 가는 날 아니야?”
그 말에 박시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으로 날짜를 확인하고 대답했다.
“맞다, 오늘이네.”
“그럼 엄마 먼저 집에 데려다주고...”
“나도 같이 가.”
눈을 감고 자는 척하던 우예린은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두 사람의 대화를 끊었다.
부자는 동시에 외쳤다.
“안 돼!”
박승윤은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엄마, 엄마 이제 막 회복하고 있잖아. 복안사는 높은 산에 있어서 엄마가 올라가기에 너무 힘들 거야. 나랑 아빠가 다녀올게.”
어린 박승윤은 아직도 엄마가 교통사고로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박시언도 마찬가지로 단호하게 반대했다.
“승윤이 말이 맞아. 아직 제대로 회복도 못 했는데 어떻게 먼 길을 가려고 그래?”
하지만 우예린은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날 위해 빈 소원이라며? 그렇다면 내가 직접 가야 진짜 의미가 있는 거 아니야?”
그녀의 완강한 태도에 부자는 어쩔 수 없이 그녀와 함께 복안사로 향했다.
복안사는 번화가와 꽤 멀리 떨어진 깊은 산속에 있었는데 사방은 상당히 고요해 멀리서부터 은은한 불경 소리와 아득한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법당 안에는 거대한 금빛 불상이 우뚝 서 있었는데 불상은 마치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이곳을 찾은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향 연기 속에서 우예린은 정성스럽게 방석에 무릎을 꿇은 채 부처님께 소원을 빌었다.
[부처님,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번 생은 물론, 다음 생, 그다음 생까지도 저와 박시언, 그리고 박승윤 부자가 다시는 만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그녀 옆에서 그들 부자도 그녀와 똑같이 방석에 무릎을 꿇고 그들 가족이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며 소원을 빌었다.
기도를 마친 세 사람은 옆으로 자리를 옮겨 점괘를 뽑았다.
주지 스님은 먼저 이들 부자의 점괘를 보고 고개를 젓더니 아무 말 없이 ‘나무아미타불’이라며 불경만 읊었다.
그 후 우예린의 점괘를 본 주지 스님은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신도께서 빌었던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