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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다시 눈을 뜨니 하얀 천장이 보였고 강렬한 소독약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자극했다. 약을 갈아주려고 카트를 밀고 들어왔던 간호사는 그녀가 깨어있는 모습에 순간 기쁜 표정으로 다가왔다. “사모님, 드디어 정신 차리셨네요!” “사모님께서 의식을 잃고 계신 동안 박 대표님과 승윤 도련님이 얼마나 애를 태우셨는데요. 밤낮없이 사모님 곁을 지키시며 권위 있는 의사들을 가득 모셔 와 사모님 상태를 살피게 했어요. 심지어 사모님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복안사로 가셨다니까요.” “복안사는 계단이 999개나 되는 사찰인데 두 분이 한 계단씩 무릎을 꿇고 올라가며 기도하셨대요. 실시간 검색어에도 오를 정도로 엄청 화제가 됐어요!” 간호사는 그녀에게 휴대폰을 건넸는데 영상 속에는 박시언과 박승윤 부자가 산 정상에 있는 사찰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무릎을 꿇으며 올라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복안사는 영험하기로 유명해 많은 이들이 이곳에 와서 이런 방식으로 기도를 올리곤 했지만 부자가 함께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올리는 것은 의례적인 일이라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이 장면을 촬영해 인터넷에 퍼뜨렸다. 영상을 보는 우예린은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이 정말 그녀를 사랑한다면 왜 교통사고가 나는 순간 그녀가 아닌 강지민을 보호했을까? 우예린이 깨어났다는 소식은 곧 부자의 귀에 들어갔고 두 사람은 자기 상처를 생각할 틈도 없이 밤새 차를 몰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병실 문을 열자마자, 두 사람은 허겁지겁 달려와 그녀를 꽉 껴안았다. 그녀는 다시 한번 한 남자의 감정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는데 이번에는 아들도 함께였다. 부자의 충혈된 눈과 떨리는 몸을 보면서도 그녀는 전혀 감동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무감각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차라리 그녀가 죽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그들이 바라던 대로 강지민과 단란한 가족을 이루었을 텐데... 왜 굳이 이런 연극을 하며 그녀 앞에서 애달파한단 말인가? 부자는 한참이나 눈물을 흘리며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지만 우예린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무덤덤한 표정과 싸늘한 미소에 부자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문득 사고 당시의 장면이 떠올랐는지 박시언이 서둘러 변명했다. “예린아, 그날 강지민을 껴안은 건 내가 착각해서 그랬어. 두 사람 옷차림이 너무 비슷했어.” “맞아, 엄마. 나도 다시는 지민 아줌마를 엄마로 착각하지 않을 테니 제발 나랑 아빠 용서해 줘.” 부자는 급히 손가락을 들어 맹세까지 했지만 우예린은 이런 상황이 그저 귀찮을 뿐이었다. 거짓말이 반복되다 보니 그들조차도 자신들의 거짓말을 믿어버린 것 같았다. 그녀는 더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날 그녀와 강지민이 입은 옷은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으며 게다가 차가 돌진하던 순간 그들은 분명히 ‘지민’이라고 외쳤었다. 박시언, 박승윤, 거짓말을 하려면 최소한 그럴듯하게 했어야지. 왜 이렇게 허술한 거야? 그녀는 한마디 말도 없이 눈물을 참으며 등을 돌렸지만 부자는 그저 그녀가 피곤해서 그렇거니 생각하며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 그 후로 며칠 동안 이들 부자는 죄책감 때문인지, 아니면 마음이 불편해서인지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고 강지민에게서 걸려 온 전화도 전부 받지 않았다. 그런 무관심이 계속되자 강지민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우예린을 상대로 계략을 꾸미기 시작했다. 얼마 후,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영상이 그녀의 휴대폰으로 전송되었는데 비록 그녀는 그들이 두 집 살림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현실을 직접 마주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첫 번째 사진. 박시언이 강지민을 품에 안고 창가에 서 있는 모습이었다. 창밖에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었고 강지민의 목덜미에는 키스 마크가 선명했다. 두 번째 사진. 박승윤이 강지민의 팔에 기대 깊이 잠든 모습이었다. 아이의 손은 강지민의 옷자락을 꼭 쥐고 있었다. 세 번째 사진. 박시언, 박승윤, 강지민이 레스토랑에서 함께 다정하게 찍은 사진인데 세 사람은 누가 봐도 한 가족처럼 친밀해 보였다. 네 번째 사진. 세 사람이 눈밭에서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드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가득했다. 마지막으로 전송된 영상은 생일 파티 현장이었다. 그곳에서 그녀의 남편과 아들은 강지민의 뺨에 입을 맞추고 있었는데 박시언은 ‘여보, 생일 축하해’라고 했고 박승윤은 ‘엄마, 생일 축하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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