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시아야, 우리 시아...”
김시아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름다운 중년 여성이 달려와 그녀를 꼭 껴안았다. 안색이 창백한 그녀는 허약해 보였는데 그리움으로 가득 찬 두 눈으로 감격하며 입을 열었다.
“드디어 우리 시아가 돌아왔어.”
그녀의 뒤를 따라 나온 김준수도 김시아를 보고 눈시울을 붉히며 부드럽게 불렀다.
“시아야, 난 아빠야. 집에 돌아온 걸 환영해.”
김시아는 마음속으로 뜨거운 기운이 퍼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아야, 우리 딸, 드디어 내 곁으로 돌아왔구나.”
심수정은 감격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
그녀의 감정이 격앙된 것을 본 김준수는 급히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여보, 당신 이렇게 흥분하면 안 돼. 몸이 견디지 못할 거야. 게다가 딸이 돌아온 것은 좋은 일이니 기뻐해야지 울면 어떻게 해.”
심수정의 이런 모습을 보며 김시아는 빨간 입술을 깨물고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엄마, 슬퍼하지 말아요. 나 이렇게 왔잖아요.”
김시아의 말에 심수정은 김준수의 손을 뿌리치더니 김시아의 팔을 껴안고 기대감에 가득 찬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시아야, 다시 한번 엄마라고 불러줄래?”
갑자기 버림받은 김준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는 오랫동안 기다리던 딸이 돌아오자 아내 마음속에서의 지위가 뚝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김시아는 가늘고 긴 속눈썹을 가늘게 떨면서 부드럽게 불렀다.
“엄마.”
“우리 착한 딸.”
심수정의 창백한 얼굴에 생기가 돌더니 아름답고 담담한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시아야, 엄마가 방을 마련했어. 엄마랑 같이 가서 네 마음에 드는 지 봐봐.”
말을 마친 그녀는 김시아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별장으로 들어갔고, 순간 무시당한 김준수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김준수는 자신도 딸 앞에서 자주 얼쩡거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딸의 마음에 아내만 있게 할 수 없으니 말이다.
별장 안의 장식은 더욱 호화롭고 으리으리했는데 들어가니 하인들이 일제히 한 줄로 서서 공손하게 인사했다.
“아가씨,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그때 심수정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아야, 너에겐 오빠가 다섯 명 있어. 지금 잠시 집에 없지만 최대한 빨리 돌아오라고 했으니 곧 만날 수 있을 거야.”
김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요.”
“시아야, 여기가 바로 엄마가 특별히 널 위해 꾸민 방이야. 맘에 들어?”
심수정은 그녀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고는 조용히 딸을 바라보았다.
분홍빛으로 장식된 방안을 바라보며 김시아는 마른 침을 삼키다가 기대에 찬 심수정의 눈빛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시아가 좋아할 줄 알았어!”
심수정의 얼굴에 웃음꽃이 더욱 활짝 피었다. 마음속에는 딸과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오늘 종일 피곤했을 것 같아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시아야, 오늘은 늦었으니 가서 쉬어. 무슨 일이 있으면 내일 이야기하자.”
“그래요.”
“시아야, 잘 자.”
심수정과 김준수는 아쉬운 듯 방을 나섰다.
김시아는 이들의 열정과 사랑이 어색했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방금 심수정과 팔짱을 끼고 있는 틈을 타서 그녀의 맥박을 살펴보았는데 심수정의 몸은 매우 허약했다. 오래된 병인 것 같았는데 앞으로 자신이 엄마를 잘 보살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스!”
이어폰에서 강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스가 원하는 것이 나타났어요. 그 사람들 지금 야정각에 있어요!”
“알았어.”
김시아는 예쁜 두 눈에 싸늘한 빛을 띠며 명령했다.
“준비해. 물건을 빼앗아 올 거야.”
“알았어요, 보스. 야정각에서 기다릴게요.”
“그래.”
...
야정각.
경성 최대의 유흥업소로 소비가 높기로 유명한 곳인데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은 부자거나 권세가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문 앞에 위풍당당하게 주차했다.
“우주 도련님, 할머니께서 방금 또 전화하셨어요. 김씨 가문의 잃어버린 딸을 되찾았다고 언제 직접 김씨 가문을 방문하라고 하세요. 어쨌거나 약혼녀이니 언젠가는 만나야 한다고 말이에요.”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 소녀가 올해 겨우 열여덟일 텐데?”
차창을 반쯤 열고 차갑고 귀한 남자가 나른하게 앉아서 시큰둥하게 말했다. 뼈마디가 선명한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고 있는 모습이 하나의 예술품처럼 느껴질 정도로 멋있었고 차갑고 금욕적인 미간에 사악함이 엿보였다.
“다들 내가 짐승인 줄 알아?”
성주원이 황급히 대답했다.
“... 도련님, 이건 어르신의 뜻이고 저는 단지 대신 전할 뿐이에요.”
“헐.”
진우주는 손에 든 담배를 비벼끄더니 잘생긴 얼굴이 더 차갑게 변했다. 주위의 공기마저 따라서 차가워진 것 같아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등골 오싹해질 정도였다.
“준비해. 며칠 후에 김씨 가문에 가서 파혼해야겠어. 내가 짐승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어린 애랑 결혼해.”
“파혼요?”
성주원이 깜짝 놀라 말했다.
“도련님, 진씨 집안과 김씨 집안의 혼약은 윗대에서 정한 것이에요. 도련님이 파혼하러 갔다가 어르신이 알게 된다면 반드시 화를 낼 거예요...”
“그럼 알려주지 마.”
성주원의 얼굴에 난처한 빛이 떠올랐다.
“하지만 도련님...”
더는 그의 말을 들을 인내심이 없었던 진우주는 차가운 눈빛으로 성주원을 훑으며 말끝을 길게 늘어뜨렸다.
“뭐?”
‘뭐?’한 마디로 성주원은 등골이 오싹해서 순순히 입을 다물고 감히 한마디도 더 할 수 없었다.
그때 차 한 대가 ‘끼익’ 소리를 내며 그들 차 옆을 지나쳐 다른 쪽에 멈춰 섰다.
김시아가 멋지게 내리더니 나른하게 차에 기대어 누군가를 기다렸는데 빛나 보이는 하얀 긴 다리를 아무렇게나 꼬고 있으니 그녀의 놀라운 얼굴과 조화를 이루어 금세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진우주는 무심코 눈길을 돌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김시아의 옆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길고 곧은 다리까지 시선을 늘어뜨린 그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매우 희고 가는 다리였다...
“도련님... 도련님?”
성주원이 연신 부르며 도련님이 왜 갑자기 멍하니 있을까 의아해할 때, 진우주가 고개를 돌려 예리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귀찮은 듯 대답했다.
“무슨 일이야?”
성주원은 그의 눈빛에 깜짝 놀라 속으로 억울해하다가 이내 공손히 입을 열었다.
“어르신 전화 왔어요...”
진우주의 싸늘한 눈빛에 보기 드문 부드러움이 떠오르더니 미간을 누르며 대답했다.
“네가 받아서 아무렇게나 둘러대.”
할머니가 전화한 건 분명 김씨 가문과의 혼사와 관련이 있을 것이고, 그는 짐승이 될 생각이 없었다.
성주원은 감히 그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진우주가 다시 창밖을 내다봤을 때 그 소녀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눈을 살짝 찌푸린 그의 눈빛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엿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