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엄마, 아빠, 드디어 김시아 그 재수탱이를 우리 집에서 쫓아낸 거예요? 데리러 온다는 사람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예요? 설마 번복하는 거 아니에요?”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기쁨에 찬 목소리를 들으며 김시아는 담담한 표정을 짓고 걸어 내려갔다.
그녀가 내려오는 것을 본 김찬우의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조금 난처한 기색이 떠올랐다.
“됐어, 다들 그만해.”
“사실인데 왜 말을 못 하게 해요?”
김민아는 달갑지 않은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예전에 할머니가 붙잡아 두지 않았더라면 저런 재수탱이는 벌써 쫓겨났을 거예요.”
장애린도 마찬가지로 싫은 기색을 떠올리며 김시아를 바라보았다.
“김시아, 넌 원래 할머니가 주워온 애야. 우리 가족은 아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널 키웠으니 키워준 은혜는 있어. 하지만 너에게 이 은혜를 갚으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대신 나중에 우리를 다시는 찾지 마. 앞으로 우리는 아무 관계도 아니야.”
비록 시골이지만 비교적 부유한 집안이었고 마을에서는 부잣집이라 불릴 정도로 잘살고 있었다.
그들은 김시아의 친부모 집이 가난해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고 들었고, 집안에 아들이 다섯 명이나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김시아의 친부모 일가족이 귀신처럼 따라다닐까 봐 걱정했다.
“원하는 대로 해요.”
김시아는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예쁜 두 눈을 치켜뜨고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후회한다고?’
장애린은 마치 우스갯소리를 들은 것처럼 얼굴에 떠오른 경멸의 빛이 더욱 짙어졌다.
“당연히 후회하지 않을 거야. 넌 빨리 그 가난한 친부모의 집으로 돌아가면 돼. 가지 않겠다고 억지 부리지 말고.”
김민아도 크게 웃어대더니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악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김시아, 너 돌아가자마자 너의 그 가난한 친부모가 널 시골 노총각에게 팔아먹을걸. 시골에 있는 노총각들은 다 늙고 못생겼대. 나중에 우리에게 와서 울면서 구걸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녀는 진작부터 김시아가 눈에 거슬렸다. 분명 똑같이 시골에서 자랐는데 김시아만 예쁜 두 눈에 뽀얀 피부를 갖고 있었고 햇빛에 타지도 않는 듯했다.
김민아는 그런 김시아가 보기만 해도 질투가 났다.
“민아야, 그만해.”
장애린은 김시아를 차갑게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빨리 꺼져, 앞으로 우리는 너와 아무런 관계도 없으니 염치없이 우리 집에 달라붙지 마!”
김시아는 차가운 눈빛을 짓고 소파 위의 배낭을 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갔다.
그때 그녀의 이어폰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보스, 모시러 간 차가 마을 앞 멀지 않은 비탈길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김시아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알았어.”
이어폰에서 강진의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찬우 그 일가족 정말 나쁜 놈이에요. 감히 보스를 이렇게 쫓아내다니. 그들이 지금 잘살고 있는 게 다 보스 덕분이잖아요.”
김찬우 일가족은 모두 무능한 사람인데 김시아가 없었다면 지난 몇 년 동안 이렇게 잘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김시아는 예쁜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겼다.
‘이 모든 것은 할머니를 위한 것이야. 할머니가 날 데려다 키우셨으니까.’
할머니는 그녀를 친손녀처럼 아껴주셨고, 이 집에서 그녀에게 가장 잘해주는 분이셨다. 하지만 이제 할머니가 안 계시니 더는 남아 있을 필요도 없다.
“보스, 제가 대신 살짝 손봐줄게요!”
강진이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이 끝나자 ‘쾅'하는 굉음이 김시아의 뒤에서 들려오더니 김씨 가문의 예쁜 한옥집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장애린와 김민아는 머리를 다쳐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마을 구석.
검은색 페라리가 진흙 속에 깊이 빠져 꼼짝도 못 하고 있었고, 유 집사는 초조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리세요.”
김시아가 길쭉한 손가락으로 차창을 톡톡 두드리자 유 집사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예쁘고 밝은 얼굴과 마주쳤다.
김시아의 이목구비는 만화를 찢고 나온듯했는데 물결치는 듯한 두 눈이 특히 사람을 매료시켜 정말 인형처럼 예뻤다.
그리고 그녀의 미간에는 그녀의 부모님 모습도 조금씩 엿보였다...
유 집사의 눈에 놀라움의 빛이 스쳐 지나갔고, 순간 자신이 맞이할 사람이 바로 눈앞의 이 여자라는 것을 확신했다.
유 집사가 황급히 차에서 내리자 김시아가 곧장 운전석에 오르더니 창백한 두 손으로 핸들을 조종해 유 집사가 30분 동안 진흙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차를 쉽게 꺼냈다.
“아가씨, 정말 대단해요!”
유 집사가 경탄하며 입을 열었다. 유 집사 역시 운전 경력이 많은 베테랑 운전기사이지만 진흙 속에 깊이 빠진 차를 빼낼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어린 그녀가 이렇게 홀가분하게 차를 빼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가요.”
김시아는 가방을 메고 뒷좌석에 타더니 길고 곧은 두 다리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앉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영화에서 나오는 보스 같았다.
“하지만 아가씨, 대표님과 사모님께서 이 선물들을 양부모님께 드리라고 분부했습니다. 그분들에게 아가씨를 키워준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
김시아는 예쁜 두 눈을 치켜뜨고 그를 바라보다가 덤덤하게 물었다.
“내 말에 따를 거예요? 아니면 그 사람들 말에 따를 거예요?”
집사는 눈앞의 여자는 분명 나이가 어린데 온몸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사람을 압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 말에 따라야죠!”
유 집사가 마른 침을 삼키며 말했다.
“아가씨, 그럼 이제 제가 아가씨를 모시고 경성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경성?’
김시아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차 번호가 굉장했던 것이 떠올렸다. 경성에서 이런 일련번호는 돈만으로는 구할 수 없고, 어느 정도 세력이 있어야 했다.
장애린 모녀는 친부모가 가난뱅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지만, 사실은 장애린의 말과는 다르다는 것이 확실했다.
“네.”
김시아의 쓸쓸한 모습에 유 집사는 자기도 모르게 그녀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아가씨, 대표님과 사모님도 원래 친히 데리러 오려고 했지만 사모님의 지병이 재발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대표님은 사모님을 돌봐 드려야 했고 도련님들은 모두 집에 계시지지 않아서 저에게 아가씨를 모셔오라고 했어요.”
“그동안 사모님이 아가씨를 그렇게 애타게 찾으셨는데 드디어 찾았네요...”
김시아는 조용히 그의 수다를 듣고 있었고, 유 집사는 마음속으로 그녀를 더욱 불쌍히 여겼다.
아가씨는 정말 너무 얌전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대표님과 사모님이 직접 보면 틀림없이 좋아하리라 생각했다.
...
김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김씨 가문의 개인 별장은 경성에서 가장 번화한 부자 동네에 있었는데 차가 별장 입구에 천천히 멈추더니 유 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도착했습니다.”
“네.”
김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문 앞을 바라보았다. 문 위에 멋진 글씨체로 ‘김’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녀는 이 글씨가 유명한 서예가 오현수의 작품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의 글씨는 천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팔렸다.
김시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무심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우리 집이 꽤 부자네.”
“물론이죠, 아가씨의 아버지는 경성에서 가장 잘나가는 부자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