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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30분 뒤 경성 과학연구원에 도착했다. 김시아가 길고 곧은 두 다리를 뻗어 차에서 내렸을 땐 과학연구소 입구에 이미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가 그녀를 보자마자 구원자를 만난 것처럼 바로 앞으로 달려갔다. “시아야, 드디어 왔구나. 드디어 왔어.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김시아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일단 들어가 봐요.” “그래, 시아야, 같이 가자.” 쫓겨나기는커녕 공손히 모셔가는 김시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성주원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대표님, 저 사람은 과학연구원의 장현석 원사님이세요. 과학연구원의 덕망이 높은 분이신데 신분과 지위가 낮지 않아요.” 이렇게 대단한 분이 한 소녀에게 공손한 태도를 보인다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진우주는 잘생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낮은 소리로 가볍게 웃었다. 그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것 같았다. 성주원은 걱정된 마음에 다시 입을 열었다. “대표님, 제가 가서 그녀의 신원을 확인해 볼까요?” 진우주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니야.” 그녀의 성격으로 몰래 조사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앞으로 다시는 그를 상대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그녀가 그에게 말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험실. 김시아는 이미 실험복으로 갈아입었는데 얼굴에 마스크도 쓰고 예쁜 눈만 내놓은 채 장현석을 따라 실험실로 들어갔다. “시아야, 칩이 지금 많이 손상되어서 고칠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 실험대 위에 있는 고장 난 칩을 바라보던 김시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한테 맡기고 다들 나가 계세요.” “그래, 알았어. 모두 나가. 시아 방해하지 말고.” 칩을 복구하기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장현석은 어떠한 방해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실험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은 순순히 실험실을 떠나 실험실 밖을 지키며 숨을 죽이고 김시아의 작업을 지켜보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김시아를 향한 눈빛에 숭배의 빛이 점점 더 짙어졌다. 실험실에 들어선 지 두 시간쯤 지났을 때야 김시아는 몸에 걸친 실험복을 벗고 하얀 손가락으로 미간을 문지르며 나왔다. “시아야, 정말 수고했어.” 장현석은 곧바로 우유에 빨대를 쫓아 건넸다. 김시아는 우유를 받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예전처럼 시큰둥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칩의 손상된 부분을 이미 복구했으니 연구 계속해도 돼요.” “잘됐다. 잘됐어.” 이 말을 들은 장현석은 가슴을 내리 쓸며 그녀를 향해 활짝 웃었다. “시아야, 우리 연구소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래서 말인데 시아야, 너 혹시...” “싫어요.” 김시아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채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녀는 지금 제자를 받을 계획이 없을 정도로 매우 바쁘다. “시아야, 일단 그렇게 성급히 거절하지 마...” 장현석은 곧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김시아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시큰둥하게 한마디 하며 주의를 돌렸다. “할아버지, 전화벨이 울리잖아요.” “아이고 참!” 그가 영상통화를 받는 틈을 타 김시아는 서둘러 도망쳤고 장현석이 이를 눈치챘을 땐 이미 멀리 떠난 뒤였다. “이런, 저 계집애를 또 놓쳤어!” 장현석은 유감스럽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영상 속 남자에게 말했다. “방금 저 아이가 바로 내가 자주 언급하는 그 대단한 소녀야.” 영상 속의 김민욱은 방금 무심코 보았던 옆모습을 떠올리며 어딘가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속으로 더 놀랐다. 방금 그 소녀는 나이가 어려 보였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뛰어나다니 말이다. “민욱아, 곧 귀국한다고 했지?” 그의 물음에 김민욱은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선생님,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여동생이 돌아왔으니 집에 다녀와야겠어요.” “가족을 되찾은 것은 좋은 일이야.” 장현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잘 됐어. 빨리 경성으로 돌아가. 내가 두 사람 소개해 줄게.” “네, 선생님.” ... “여기야.” 김시아가 과학연구원을 나서자마자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남자가 가로등 아래에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섹시하고 잘생긴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어 매우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김시아는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실험실에서 두 시간을 머물렀는데 뜻밖에도 아직도 이곳을 기다리고 있다니... 진우주는 그녀의 손에 든 우유를 힐끗 보고는 묵묵히 머릿속에 기억한 뒤 바로 그녀를 향해 입꼬리를 올리고 웃기 시작했다. “이제 네가 약속을 지키고 밥을 살 차례야.” 마침 배가 고팠던 김시아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래.” ‘대표님은 저녁을 드셨는데...’ 성주원은 의아함에 눈살을 찌푸렸다가 곧 뭔가 알아차렸다. 이건 분명 대표님이 이 소녀에게 관심이 있다는 뜻이라는 걸 말이다. 성연각까지 가는 길은 막힘이 없었다. 이 레스토랑은 고급 맞춤형 레스토랑으로 예약이 매우 어려웠다. 그녀가 시끄러운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진우주는 특별히 가장 조용한 룸을 마련하라고 당부했다. 그녀가 선호하는 맛을 물어본 후, 진우주는 무작정 큰 테이블 한가득 음식을 주문했는데 전부 김시아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진우주는 함께 먹었지만 많이 먹지 못하고 그녀가 먹는 것을 지켜 보며 반찬을 집어주었다. 마침 문 앞을 지나가던 심아준이 우연히 이 모습을 보고는 순간 흥미를 느끼며 눈썹을 치켜세우고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우주 형, 이 아가씨는 누구야?” 심아준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냉혹하고 잔인한 우주 형이 그렇게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 처음 보았다. 게다가 직접 식사까지 함께 해 주다니, 자신조차 이런 대접을 받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런 심아준을 본 진우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갑게 흘겨보며 꺼지라는 눈빛을 지었다. ‘이제 내가 거추장스럽다는 거지?’ 심아준은 속으로 우울해하며 고개를 저었다. ‘우주 형도 여자 앞에선 별수 없네. 그렇다면 절대 가지 않고 여기서 버텨야지.’ 골려주기로 마음먹은 심아준을 보며 진우주는 웃는 듯 말 듯 입꼬리를 씩 올렸다. ‘아주 좋아. 이따가 이 거추장스러운 것을 아프리카로 보내 버려야지!’ 심아준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곧 재수없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이 들던 순간 탁자 위의 휴대전화가 갑자기 울렸다. 할머니의 번호를 본 진우주는 차가운 눈동자에 어이없는 빛이 떠올랐다. 전화를 받지 않아도 할머니가 왜 찾는지 알 것 같았다. 곧 진우주의 부드러운 눈빛이 김시아의 얼굴에 떨어지더니 다정한 어투로 한마디 했다. “전화 좀 받고 올 테니까 천천히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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