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9장

순간 차 안의 분위기가 급격히 차가워지고, 몰려오는 한기에 성주원이 몸을 떨었다. ‘시아 아가씨에게 약혼자가 있었다니. 게다가 파혼할 생각이 없다고? 이건 우리 도련님을 갖고 노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도련님 괜찮으시겠지? 아니, 시아 아가씨 괜찮... 겠지?’ “나 갖고 논 거야?” 진우주가 어두운 눈빛으로 김시아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이마에 가득한 핏줄이 그가 정말로 화가 났다는 걸 보여줬으나, 김시아를 놀라게 하기라도 할까 봐 최대한 억제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런 진우주의 모습에 이미 벌벌 떨었을 거다. 그러나 김시아는 달랐다. 진우주가 절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아무렇지 않았다. “오빠도 약혼녀 있는 거 아니었어?” “알고 있었어?” 김시아의 말에 진우주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이어 백옥같은 기다린 손가락으로 김시아의 볼을 살포시 잡으며 애정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파혼 안 하다는 말로 일부러 오빠 애태운 거야?” 김시아가 입을 열어 아니라고 부정하려던 찰나에, 매혹적인 중저음이 또다시 들려왔다. “윗세대 때부터 정해진 혼사였어. 시아 널 만나기 전부터 파혼하기로 마음 먹었고, 널 만나고 나서 그 생각은 더 확고해졌어. 할머니 건강 상태 때문에 조금 늦어진 거뿐이야.” “상태 좋아지시는 대로 파혼하러 갈 거고.” 진우주의 진심 어린 고백을 듣고 있자니 김시아의 마음이 따뜻해졌고, 장난이 아닌 진심으로 자기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의지가 연약한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김시아가 붉은 입술을 올리며 눈썹을 들썩였다. “말했잖아. 난 파혼할 생각이 없다고.” 좀 전과 달리 진우주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고, 몸에서 더 짙은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약혼자가 그렇게 좋아?” “누군지 궁금하지 않...” “도련님, 시아 아가씨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성주원이 재빨리 김시아의 말을 가로질렀다. ‘시아 아가씨, 제발 그만 좀 해주세요. 우리 도련님 이러다 진짜로 미쳐버리는 수가 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