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이날 박이서는 밤이 깊어서야 집에 돌아왔는데 마침 박도준이 대문 앞에 떡하니 서 있었다.
그는 음침한 표정으로 박이서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 했는데 박도준이 먼저 차가운 말투로 쏘아붙였다.
“넌 대체 왜 그렇게 윤아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윤아가 싫으면 싫다고 얘기해. 안무 연습할 때 굳이 애를 괴롭힐 필요는 없잖아.”
이미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이런 말들까지 듣고 있자니 마음이 심란해지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속상하고 서럽고 그리고 또 무기력한 그런 느낌에 눈물만 차올랐다.
강윤아가 그의 앞에서 없는 말까지 보태면서 불만을 토로했을 게 뻔했다.
박이서는 딱히 해명하지 않고 그를 에돌아서 방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 강윤아에 대한 요구도 훨씬 줄어들었다.
이에 강윤아는 더욱 의기양양해졌고 매일 안무실에 와서 출석 체크만 하고는 곧장 나가버렸다.
보다 못한 다른 무용수들이 그녀를 찾아가서 따져 물으려고 할 때 박이서가 연신 말렸다. 어차피 안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강제로 팀에서 방출되기에 강윤아 본인 인생은 본인이 알아서 책임지면 그만이라고 다른 무용수들에게 설명했다.
게다가 박이서는 이제 정말 강윤아를 가르칠 여유가 없다.
이번 일이 이쯤에서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박도준이 불쑥 찾아와 이번 안무의 메인 주역 자리를 강윤아에게 양보하라는 날벼락 같은 통보를 날렸다.
그녀는 처음에 미처 알아듣지도 못하고 멍하니 넋 놓고 있었다. 이때 박도준이 다시 한번 되물었고 그제야 박이서도 머리를 들고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
“지금 나더러 메인 자리를 강윤아한테 양보하란 말이야?”
그녀는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미세하게 떨렸다.
다만 박도준은 이상한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차갑게 쏘아붙였다.
“윤아가 네 새언니잖아. 게다가 고작 메인 자리일 뿐인데 뭐가 그렇게 중요해?”
‘고작 메인 자리가 뭐가 중요하냐고?’
박이서는 드디어 참지 못하고 분노를 터트렸다.
“야, 박도준! 5년 전에 내가 무용에 취미가 있는 걸 발견하고 가장 좋은 무용 선생님을 찾아준 건 너야.”
“4년 전에 내가 무용 대회에서 처음 수상했다고 축하해준다면서 밤잠을 설친 것도 너고.”
“3년 전에 내가 수석 자리에 오른 후 무용수들에게 따돌림당할 때 남들 시선은 신경 쓰지 말고 계속 꿈만 좇아가라고 격려해준 것도 너야.”
“그런데 지금 내가 1년이나 공들여서 짠 안무를 강윤아한테 넘기라고? 무용이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네가 어떻게 이런 말을 내뱉을 수 있어?”
그녀는 주먹을 꼭 쥐고 목이 메어 말끝을 흐렸다.
눈물범벅이 된 그녀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며 박도준은 심장에 극심한 타격을 입은 듯 숨이 턱 막혔다. 지난날 조명이 환하게 비친 안무실에서 한 여자아이가 넘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열심히 춤을 추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끝내 아무 말도 못 한 채 묵묵히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