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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연준호가 통화할 때 집주인 아줌마도 안이서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이서 씨, 나 방금 손주 재우느라고 휴대폰 무음으로 해놔서 조카 전화를 이제야 받았는데 지금 혹시 어디에요? 걔가 커피숍에서 반 시간이나 기다렸다는데 길에서 혹시 무슨 일 생기셨나요?” 순간 안이서의 머리가 띵해지고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윙윙거렸다. 집주인 아줌마 우경미의 조카가 커피숍에서 그녀를 반 시간이나 기다린다면 지금 혼인신고를 마친 이 남자는 대체 누구냐고?! 어쩐지 아까부터 이상하다 하더라니 안이서는 그제야 생각났다. 전에 우경미는 그녀에게 조카가 은 씨 성이라고 했다. 연 씨가 아니라 은 씨였던 것이다... 그녀는 놀란 눈길로 연준호를 쳐다봤다. 안이서가 기억하는 우경미의 조카는 대기업 직원이고 위풍당당한 기세를 뽐내는 그런 남자였다. 그래서 연준호를 처음 봤을 때 외형적으로 우경미가 말한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져서 더 고민 않고 그쪽 테이블로 간 것이다. 부랴부랴 초고속 결혼을 마쳤는데 상대가 엇갈릴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아... 아줌마...” 안이서는 휴대폰을 쥐고 차마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 이 상황을 누구인들 믿어줄까? “이서 씨, 혹시 부담스러워서 그래요?” 우경미는 그녀가 말하지 못할 고민이 있다는 걸 바로 알아채고 환하게 웃으며 위로해주었다. “여자 입장이라 조금 쑥스럽고 부담스러울 수 있죠. 이해해요. 간단한 만남일 뿐이니 잘 성사되지 못해도 서로 친구 사귀고 좋죠 뭐. 너무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이서 씨 상황은 이미 걔한테 잘 얘기해놨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요...” 안이서는 말하다가 고개를 돌리고 연준호를 쳐다봤는데 마침 그도 안이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줌마, 정말 죄송한데 조카분한테는 제가 갑자기 일이 좀 생겨서 못 갈 것 같다고 전해주세요. 나중에 아줌마 찾아뵙고 다 설명해 드릴게요.” 그녀는 황급히 전화를 끊고는 쥐구멍이라도 기어들어 갈 심정으로 연준호를 쳐다보며 말을 더듬거렸다. “저기... 준호 씨, 제가 사람을 헷갈린 것 같아요. 아까는 왜... 아무 얘기 안 하셨어요?” 실은 연준호도 할아버지가 조건이 대등한 수많은 재벌 집 딸들을 소개했다가 실패로 돌아가서 이번엔 작전을 바꾸신 줄 알았지 이런 오해를 빚을 줄은 미처 예상치도 못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오해라 할지언정 두 사람 모두 목적에 달성했으면 된 거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한 연준호는 차분하게 말했다. “적어도 우리 목적은 일치했어요. 정 개의치 않으면 지금 후회해도 늦지 않았어요.” 그는 되레 안이서의 감정을 고려해주었다. 한편 안이서의 목적도 선뜻 결혼을 원하는 상대를 찾아 혼인신고를 마치는 것이기에 이젠 진짜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다. 안 그러면 아빠와 계모가 또다시 해코지할 테니까. 두 사람이 한창 대화할 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언니 안채아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지금 어디야? 아빠가 이씨 가문에서 예물 값을 받으셨대. 고향 마을에서 결혼식장이고 뭐고 다 준비해놨다면서 너 돌아오기만 기다린대.” 안채아는 전화로 초조하게 말하며 곧 눈물을 터트릴 것 같았다. 안채아와 안이서 자매는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그동안 언니 안채아가 쭉 엄마처럼 동생을 키워왔다. 이 전화만 아니었어도 안이서는 연준호와의 이혼을 진심으로 고려했을 것이다. 어찌 됐든 그녀의 원래 소개팅 상대는 집주인 아줌마의 조카였으니까. 하지만 아빠 안재원이 그녀의 동의도 안 거치고 예물 값을 덥석 받고는 오늘 밤에 당장 고향으로 돌아가서 결혼하라고 다그친다. 안이서는 이 세상에 친언니 안채아 말고 그 누구에게도 신세 진 적이 없다. 흡혈귀 같은 이 한 통속 식구들을 이번엔 절대 호락호락하게 봐주지 않을 것이다. “언니, 걱정 마. 나 이미 결혼했어. 그 인간들 더는 나 협박 못 해.” 안이서가 전화상으로 언니한테 일의 자초지종을 대충 알려주며 언니의 마음을 잘 다독여준 후에야 통화를 마쳤다. 연준호도 옆에서 대개 들으면서 안이서의 상황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이래서 방금 본인 상황이 까다롭다고 재차 강조했던 거군요. 퇴로가 없는 것 같은데 이래도 계속 이혼을 강행할 건가요?” 연준호는 사업가로서 현재 두 사람의 관계를 놓고 볼 때 감정은 중요치 않고 오직 서로의 이익이 우선순위였다. “난 정확한 선택을 한 거예요. 하늘이 꼭 알아봐 줄 거예요.” 안이서는 경건한 눈빛으로 말했다. 초고속 결혼 상대가 엇갈리긴 했지만 눈앞의 이 남자는 아주 대범해 보였고 굳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꽤 단호하시네요.” 연준호는 제 분수를 알고 시세 판단이 잘 되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왕 확정된 일이라면 모양새도 충분히 내줘야 하는 법이다. 두 사람은 서로 카톡과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연준호가 정장 바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며 분부했다. “편하게 말 놓을게. 이건 우리 집 열쇠야. 용인 하우스 알지? 빠른 시일 내로 짐 싸서 들어와.” “네...” 안이서는 집 열쇠를 건네받으며 속으로 이 또한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곧 월세를 내야 할 시점이라 돈을 절약할 수 있고 또한 더 이상 아빠와 계모가 다짜고짜 찾아오는 일이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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