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안이서는 미소를 지으며 할아버지에게 설명했다.
“저희 둘이 같이 운영하고 있어요.”
할아버지는 백지효를 한 번 쓱 보더니 두 사람 다 좋은 아가씨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안이서가 자기 혼자 사장이라고 허영심을 내비추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가게에 뭐가 맛있어? 하나 먹어볼까.”
할아버지의 음식을 기다리는 듯한 표정을 보고 안이서는 약간 난감해졌다.
“아침 메뉴는 다 팔렸고 지금은 소시지랑 밀크티만 있는데 괜찮으세요?”
안이서는 할아버지가 이런 음식을 드셔도 될지 몰라 먼저 물어봤다.
‘매너도 있고 배려심도 깊은 아가씨네.’
순간 할아버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 그걸로 줘.”
“네, 잠시만요.”
안이서는 소시지를 꼬치에 꽂아 준비하면서 일부러 매운 양념은 넣지 않았다. 백지효도 카운터에서 따뜻한 밀크티를 만들어 함께 내왔다.
“아저씨, 이건 저희 가게 시그니처 밀크티예요. 오늘 비가 와서 좀 춥죠? 따뜻하게 준비해 드렸어요.”
할아버지는 밀크티와 소시지를 받아 한 입씩 맛보았다.
‘맛이 아주 좋네!’
밀크티는 적당히 달콤하고 소시지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우며 육즙이 풍부했다.
“맛이 아주 좋네. 하나 더 포장해 줘. 얼마지?”
할아버지는 음식을 다 먹은 후 물었다.
“시그니처 밀크티는 1600원이고 소시지는 800원이에요. 두 세트니까 총 4800원이에요.”
백지효가 계산서를 뽑아 건넸다.
세련된 차림의 할아버지는 역시나 스마트폰으로 결제를 할 줄 알았고 결제 후 가게에 있는 털실로 만든 소품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건 어디서 들여오는 거야?”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이때 안이서가 옆에서 대답했다.
‘정말 손재주가 좋네.’
아까 이 털실 작품들을 자세히 본 할아버지는 바로 손재주가 자신의 돌아간 와이프보다 더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기 한복 입은 인형들 팔 수 있어?”
할아버지가 카운터 위에 놓인 빨간 한복을 입은 털실로 만든 인형들을 가리켰다. 손바닥만 한 인형은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네, 당연하죠.”
안이서는 조심스럽게 인형들을 포장해 드리며 돈을 받고 할아버지를 배웅했다.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러워요, 할아버지. 조심히 가세요.”
안이서는 할아버지가 가게 입구에 있는 계단을 내려갈 때 그를 부축하며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우산을 펼치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안이서의 가게를 떠났다.
멀리서 검은색 롤스로이스 한 대가 나무 그늘에 주차돼 있었다. 운전기사가 할아버지가 오자마자 급히 내려와 우산을 받아 들고 그를 차 안으로 모셨다.
차에 탄 후 운전기사는 백미러로 할아버지를 한 번 보고 물었다.
“어르신, 집으로 가시겠습니까?”
“아니, 회사로 가자.”
방금 안이서의 가게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은 덕분에 할아버지의 기분이 아주 좋아져 골칫덩어리 손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도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연성 그룹의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를 마친 후 할아버지는 대표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사전 통보가 없던 방문이라 할아버지가 도착하자 비서팀과 허연우 모두 당황한 얼굴로 맞이했다.
“아이고, 회장님!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허준은 연민철을 보고 깜짝 놀랐다.
‘비도 오는데 회장님은 왜 집에서 쉬지 않고 여길 온 거지?’
“그냥 한가해서 좀 돌아다니다가 왔어. 준호는 어디 있지?”
연민철은 방금 안이서 가게에서 보였던 온화한 모습은 사라지고, 무거운 기세로 연준호의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며 물었다.
“대표님께서 화상 미팅 중이십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허연우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연민철은 이미 연준호의 사무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사무실 문이 열리자마자 연민철은 코를 찌르는 향수 냄새에 질식할 뻔했다.
사무실 안을 보는 순간 연민철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지만, 연준호의 체면을 깎을 수 없어 참았다.
연준호는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 바로 연민철의 기분을 알아채고는 책상 맞은편에 앉아 있던 마케팅팀의 부팀장에게 지시했다.
“나가보세요.”
“네, 대표님.”
젊고 아름다운 부팀장은 연민철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그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는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황급히 떠났다.
문이 닫히자 연민철은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후 소파에 앉으며 안이서 가게에서 산 물건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할아버지, 어떻게 오셨어요?”
연준호도 소파에 앉았지만, 연민철이 뭘 올려두었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연준호의 질문에 연민철은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년 여름에 증손자 안는 일은 얼마나 진행됐는지 물어보려고 특별히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