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화
푸르스름한 어둠이 깔린 저녁, 흔히들 귀신이 찾아드는 시간이라 불리는 이때, 윤지현은 지금의 긴장되고 기괴한 상황과 맞물려 옆에 있는 남자가 전혀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그의 몸속에 뭔가 악랄한 존재가 숨어든 것 같았다.
“우리... 지금 어디 가는지 물어봐도 될까?”
심은우는 무심히 말했다.
“나도 몰라.”
윤지현은 말을 잃었고 침묵이 5분쯤 흐른 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 사이에 죽을 만큼 큰 원한 같은 건 없잖아. 네가 실수를 한 거지, 전 세계 남자들이 다 저지르는 흔한 잘못이었고 난 그냥 좀 고지식한 여자였던 거고. 우리도 한때는 좋은 시절이 있었지만 그 시간이 다 지나서 자연스럽게 헤어진 것뿐이야. 난 이제 널 원망하지 않아. 그러니까 너도 나 원망하지 마.”
심은우가 그녀를 힐끗 바라보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너, 생각보다 겁이 많네.”
그 순간 윤지현은 더욱 긴장한 채 안전벨트를 꽉 쥐었다.
이혼을 고집한 그녀에게 화가 난 걸까? 아니면 아까 그와 구서희의 음성 녹음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한 게 그를 자극한 걸까?
윤지현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하지만 경찰이 아니라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조도현이었다. 그는 지금껏 늘 그녀를 구해줬던, 마치 뭐든 가능한 남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가 왜 매번 자신을 도와줘야 한단 말인가?
“지금 누구 생각해?”
그녀가 딴생각에 잠긴 걸 본 심은우의 눈에 불길한 불꽃이 일었다. 여자의 직감만큼이나 남자에게도 예리한 직감이란 게 있었다.
윤지현은 차분히 그를 돌아보며 일부러 자연스레 둘러댔다.
“기름 언제 떨어질까 생각 중이었어. 계속 이렇게 달리면 차가 서버릴 텐데 그럼 어떻게 돌아가지 싶어서.”
일상적인 얘기로 그의 주의를 돌리고 싶었지만 그 말에 심은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윤지현은 조용히 가방 속에 손을 넣었다. 심은우에게 뺏긴 휴대폰은 새것이었고 정말 중요한 자료는 예전에 쓰던 휴대폰에 들어 있어서 지금 빼앗겨도 별문제가 없었다.
윤지현의 주머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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