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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심은우의 눈빛은 어두웠고 윤지현의 눈빛은 적막했다. 주차장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윤지현을 본 여자는 심은우와 거리를 유지하기는커녕 오히려 대담하게 그의 목을 팔로 감싸면서 그의 귓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윤지현은 그 광경이 눈에 거슬렸다. 시선을 거둔 윤지현은 차를 타고 자리를 떴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그들 쪽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1층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윤지현은 드레스룸의 유리 서랍장 앞에 서서 목걸이를 빼고 있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크고 단단한 몸이 부딪쳐옴과 동시에 남자의 향기가 후각을 자극했다. 심은우는 두 손으로 서랍장을 짚으면서 몸을 살짝 숙여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화났어?” 윤지현은 그를 바라보지 않고 느긋하게 목걸이를 내려놓은 뒤 덤덤히 말했다. “사람 한 명 잡아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니까 알아서 피하는 게 좋을 거야.” 심은우는 잠깐 침묵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구씨 가문에서 우리랑 같이 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어 해. 그동안 난 구씨 가문의 장남 구형준 씨와 계속 접촉하고 있었어. 구서희는 구형준 씨 여동생이야.” “그쪽에서 구서희 씨랑 만나주지 않으면 세민 그룹이랑 협력하지 않을 거래?” “... 윤지현. 난 지금 너한테 설명하고 있는 거야. 이상하게 몰아가지 마.” “난 설명할 필요 없다고 느끼는데.” 윤지현이 드디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차가우면서도 맑은 그녀의 눈동자는 심은우의 영혼을 꿰뚫어 볼 듯했다. “나한테 질려서 다른 여자랑 살고 싶은 거라면 그냥 편하게 얘기해. 내가 알아서 물러나 줄 테니까.” 심은우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뭐라고?” 윤지현은 한숨을 쉬었다. “이혼해 준다고.” 윤지현은 심은우를 밀어냈다. 그녀가 자리를 뜨려는데 심은우가 힘을 주어 그녀를 끌어당겼다. 심은우는 윤지현의 얼굴을 잡고 경고했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윤지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생각만 한 게 아니라 행동에도 옮겼다. 윤지현은 심은우를 버렸다. 심은우는 돌아온 뒤 밤늦게까지 집에 있다가 전화 한 통에 다시 불려 나갔다. 윤지현은 전화 너머로 칭얼대는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윤지현의 친구이자 그녀가 선임한 이혼 변호사가 캡처한 이미지를 보냈다. 그것은 심은우의 내연녀가 올린 게시물이었다. 둘이 새벽쯤 산에 올라가서 손 하트를 만든 사진 아래, 일출의 따뜻함 속에서 서로의 심장 박동을 느꼈다는 글도 있었다. 윤지현은 그중 크기가 큰 손이 심은우의 손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녀는 자리에 앉은 채로 오랫동안 컵을 쥐고 있었다. 컵을 내려놓을 때 딸깍 소리가 났다. 마음 한구석이 또 한 번 무너져 내렸다. 그 이후로 심은우는 며칠 내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두 사람은 회사 미팅할 때만 잠깐 보았다. 심은우는 중앙에 앉아 있었고 윤지현은 다른 회사 임원들처럼 양쪽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윤지현은 심은우의 사무실로 찾아가지 않았다. 그녀는 여유가 있을 때면 집을 알아보면서 그동안 심은우가 선물로 줬던 것들을 처리했다. 1주년 선물, 생일 선물, 화이트데이 선물, 결혼 선물... 심지어 결혼반지까지 팔았다. 심은우도 버릴 생각인데 예전에 그에게서 받았던 쓰레기들을 남겨둘 필요는 없었다. ... 저녁때쯤 마누의 사장 안소연이 윤지현에게 같이 클럽에 가자고 했다. 곧 있으면 11시였기에 윤지현은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혼 후 세민 그룹을 떠나 창업하려면 인맥이 꼭 필요했기에 갈 수밖에 없었다. 클럽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안소연이 보였다. “소연 언니, 제가 알아서 올라가면 되는데 왜 내려오셨어요?” 안소연은 살갑게 윤지현의 팔에 팔짱을 끼고 그녀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네가 길을 잃을까 봐 걱정돼서 내려왔지. 여기 처음 오지?” 안소연의 말대로 이곳은 처음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고 안소연은 윤지현을 아주 큰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는 병풍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병풍이 룸을 반으로 나누었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윤지현은 병풍 너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러나 안소연은 그녀를 그쪽으로 데려가지 않고 여자 한 명만 있는 쪽에 앉혔다. 윤지현은 그 여자가 조금 눈에 익었다. 심은우 친구들 중 한 명의 여자 친구인 듯했다. 상대도 윤지현을 알아본 듯했다. 윤지현을 본 여자는 표정이 조금 부자연스러웠지만 애써 그녀를 향해 웃어 보였다. 윤지현은 겉옷을 벗은 뒤 자리에 앉았고 안소연은 또 밖으로 나갔다. 윤지현은 상대방이 건넨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 병풍 너머 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심지어 그들은 윤지현을 언급했다. “은우는 이젠 우리 파티에 지현 씨를 데려오지 않네.” “당연하지. 구서희 씨는 젊고 귀엽잖아. 은우는 어딜 가든 구서희 씨를 데리고 다니더라. 얼마나 아끼던지.” “은우 취향이 드디어 바뀐 건가?” “지현 씨가 아무리 예뻐도 8년 동안 만났으니 질렸겠지.” “지현 씨도 참 바보 같지. 은우랑 오랫동안 만났는데 결국엔 장난감 취급당한 거잖아. 은우가 버리면 우리가 예뻐해 줄까? 내가 그동안 그 가녀린 허리를 보면서 얼마나 애달파 했었는데.” ... 윤지현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싸늘하게 식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윤지현은 그중 두 명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두 사람은 심은우의 친구로 평소 그녀를 만나면 늘 그녀를 형수님이라고 불렀었다. 윤지현과 함께 앉아 있던 여자는 멋쩍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감히 윤지현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다. 윤지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는 윤지현이 황급히 도망치려는 건 줄 알았다. 그러나 윤지현은 목을 가다듬은 뒤 음료수를 들고 맞은편으로 걸어가서 털털한 모습으로 병풍에 기댄 뒤 덤덤하게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여러분,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은우도 저랑 만날 때는 젊고 정력 넘치는 총각이었다고요. 오히려 제가 8년 동안 은우랑 만나면서 단물을 다 빨아먹었죠.” 룸 안이 순식간에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소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경악한 얼굴로 윤지현을 바라보았다. 윤지현이 그 말을 할 때 마침 두 명의 훤칠한 남자가 룸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윤지현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뒤를 바라본 뒤 완전히 절망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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