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이다빈의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몸은 마치 한 마리의 용처럼 움직임이 부드럽고 중후했다.
매끄러운 옆 라인과 힘찬 손놀림이 앞에 뻗은 나뭇가지를 흔들며 부러뜨렸다.
그렇지만 남은 나뭇잎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쾅!
눈앞의 광경은 마치 천둥 번개처럼 한순간에 모든 사람의 뇌를 감전시키는 듯했다.
“와… 이게 어떻게…”
김 영감의 떡 벌어진 입은 점점 더 커졌다. 눈빛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괴물이라도 만난 듯 이다빈을 쳐다보았다.
“다들 잘 보셨나요?”
이다빈은 다시 똑바로 선 후 주수천을 보며 물었다.
주수천의 눈에 숭배하는 느낌이 흘러넘쳤다. 그는 이내 호칭을 바꿔 불렀다.
“젊은 대가님, 방금 두 번의 무술은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함께 어우러져 나무랄 데 없을 정도로 완벽했습니다. 무술계의 고수임이 틀림없어요.”
“쿨럭쿨럭!”
김 영감은 목을 가다듬더니 얼굴을 붉히며 걸어왔다.
“계집애… 아니, 대가님, 이 늙은이가 방금 했던 듣기 싫은 말들은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이다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씩 웃었다.
“저는 대가가 아닙니다. 그저 몇 년간 무술을 했을 뿐입니다.”
“대가님, 방금 그 두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실 수 있을까요?”
“저도 배우고 싶습니다. 그 활 쏘기 수법은 아무리 해도 안 되더라고요. 저를 좀 가르쳐 주실 수 있을까요?”
어르신들은 이내 이다빈을 둘러쌌다. 늙어빠진 얼굴이었지만 저마다 어린아이같이 갈망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어디선가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가는 무슨 대가. 대충 무술을 한두 번 한 것으로 여기서 우쭐대며 어르신들을 속이고 있네.”
이 말에 이다빈은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쳐다봤다.
열여덟, 아홉 살로 보이는 청순하게 생긴 여자아이는 키는 별로 크지 않았다. 하지만 뒤에 2미터 정도 되는 건장한 남자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연희야, 젊은 대가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주수천이 어두운 얼굴로 야단쳤다.
“할아버지, 뭘 모르셔서 그래요. 저 여자는 사기꾼이에요. 모든 게 다 속임수라고요. 일부러 자기를 숭배하게 해서 할아버지에게 사기 치고 돈을 뜯어내려는 거예요!”
주연희는 도착하자마자 이다빈과 주수천 사이에 서서 적대적인 시선으로 이다빈을 바라봤다.
“오해야. 대가는 거짓말쟁이가 아니야. 방금 네가 못 봐서 그래. 우리에게 보여준 스텝과 자세는 정말 완벽했어. 내가 10년 동안 무술을 했지만 젊은 대가님 앞에서는 정말 부끄러울 정도였어!”
주수천은 진심으로 탄복했다.
“할아버지! 정말 너무 쉽게 속으시네요. 이 여자는 딱 봐도 상습범인 것 같아요. 아마 어릴 때부터 그 두 수법만 익혔을 거예요. 일부러 할아버지들 앞에서 대가 행세를 하기 위해서요. 그래야 할아버지에게서 돈을 뜯어낼 수 있으니까!”
“설… 설마?”
주수천은 미간을 약간 찡그렸다.
왕 영감은 허벅지를 치더니 분개하며 말했다.
“그래, 나도 진작 짐작하고 있었어! 이렇게 젊은 애가 어떻게 무술을 그렇게 잘할 수 있겠어! 연희의 말을 듣고 나니 이제야 알 것 같군! 그래 사기꾼이었어!”
다른 할아버지들도 귓속말을 주고받더니 이다빈을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야, 이 사기꾼, 썩 꺼져! 안 그러면 경찰에 신고하겠어!”
주연희가 손을 허리춤에 잡고 이다빈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사실 이다빈은 그들과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자기를 사기꾼으로 몰아붙이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렸고 새파랗게 젊은 애가 자기더러 꺼지라고 하니…
“내가 사기꾼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는데? 내가 돈을 받는 것을 본 적이라도 있어?”
“조금 전까지는 없었지만 내가 몇 분만 더 늦게 왔더라면 돈을 받았을 거 아니야?”
이다빈은 눈살을 찌푸렸다.
“너도 내가 돈을 받지 않았다는 거 인정하네? 그러면 범죄가 성립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증거로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거야? 신고하면? 경찰이 믿을 것 같아?”
“나는…”
이다빈이 말을 청산유수처럼 잘할 줄 몰랐던 주연희는 한참 동안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하지만 이다빈은 주연희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너는 근거도 없이 나를 모욕하고 내 명예를 훼손했어. 나야말로 너를 고소할 권리가 있지.”
“뭐? 네가 나를 고소한다고?”
주연희는 귀를 의심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날뛰는 사기꾼을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네가 사기꾼이 아니라는 말이지? 그렇다면 나의 경호원과 한 번 붙어 봐. 세 수만 견뎌내면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게”
“그래, 하지만 네가 지면 반드시 사과해야 할 거야. 아주 정중히!”
이다빈은 사사건건 따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괴롭히는 것은 참을 수 없다.
“그래, 약속할게! 하지만 내 경호원과 싸워서 세 수를 견디지 못하면 너도 사과해야 할 거야. 그리고 할아버지들에게도 한 분씩 사과해야 할 거고! 네가 사기 치고 사과하는 모습을 라이브방송으로 내보낼 거고 인터넷에 올려서 앞으로 두 번 다시 남을 속일 수 없게 할 거야!”
이다빈이 노인을 속이는 파렴치한 악당이라고 주연희는 굳게 믿고 있었다.
이때 주수천이 나서며 말렸다.
“그만해, 이 일은 그냥 놔둬. 사람은 그냥 보내줘.”
“할아버지! 어떻게 그냥 보낼 수 있어요? 어쩌면 할아버지의 신분을 미리 조사하고 접근했을지도 몰라요. 할아버지가 한국화의 대가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돈을 갈취하기 위해 여기에 왔을지도 몰라요.”
한국화 대가?
성이 주씨?
이다빈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할아버지가 유명한 산수화 대가라는 게 뒤늦게 생각났다.
이다빈은 할머니가 이 산수화 대가를 아주 많이 좋아했던 것이 생각났다. 할아버지도 주 어르신의 열렬한 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됐어, 할아버지 말도 안 듣겠다는 거야? 그냥 보내줘.”
주수천도 더 이상 이 일 때문에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할아버지, 저 여자…”
“나도 학교 갈 시간이야. 어떻게 할 거야? 붙을 거야? 말 거야?”
이다빈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할아버지와 손녀의 대화를 중단시켰다.
주연희는 더욱 어이가 없었다. 사기꾼이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시치미를 떼고 있으니 말이다.
“장준표, 한 번 붙어봐. 절대 양보하지 말고.”
사실 주연희는 이다빈이 여자인 것을 봐서 장준표에게 조심해서 싸우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네가 자초한 거야!’
“네, 아가씨.”
장준표는 목을 양옆으로 굽히며 스트레칭을 했다. 뼈에서 ‘우두둑’ 하는 소리도 났다.
팔과 손가락의 관절을 움직이자 마찬가지로 ‘우득’하는 소리가 났다.
오만하고 흉악한 장준표의 이미지까지 겹쳐 그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뒷걸음질 칠 것이다.
하지만 맞은편에 선 이다빈은 그저 눈썹만 찡그렸고 차가운 눈빛과 짜증 섞인 말투로 일관했다.
“급하다니까? 움직이려면 빨리해.”
“몸 안 풀어?”
장준표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쪽을 상대하는 데는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다빈의 이 말은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이년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충격받은 장준표는 이다빈의 머리만 한 주먹을 휘두르며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