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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결혼도 못 할거야

다음날. 8시가 되어서야 원아는 외출을 했다. 다행인 건 회사가 지하철로 20분 거리인 곳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럴 때면 원아는 회사랑 가까운 곳에 저렴한 월셋집을 구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 생각됐다. 단지에서 나온 그녀는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살짝 가렸다. 어젯밤에 잠을 못 자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자 눈에 피로가 몰려왔다. 햇빛이 비치자 눈이 부셔서 더욱 불편했다. 어젯밤 원아는 곰곰이 생각하고 분석했다. 대표님은 왜 계속 나에게 선물을 보내는 걸까? 처음에는 집에 와서 주사도 놓아주고 영양식도 준비해 주었다. 정말 두 아이를 대신 돌봐준 것에 대한 그의 단순한 답례일 뿐일까? 공수해 온 생화도 단지 환자에 대한 단순한 우호적인 위문일까? 하지만 그 남자는 전혀 우호적으로 생기지 않았다. 어제 정성스럽게 포장된 선물상자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에 그녀에게 아낌없이 베풀던 아량이든 어제의 선물이든 전부 원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문소남이 어떤 사람이고 내가 어떤 사람인데! 문소남은 상류층의 도도한 T 그룹의 대표다. 일반인과 차원이 다르다. 상업 바닥에서 그는 한 손으로 하늘도 가릴 수 있는 인물이다. 그가 일반이었다고 해도 아마 남자들 사이에서 돋보였을 것이다. 그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몸을 갖고 있었으며 얼굴도 잘생겼다. 모든 여자의 이상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진 게 없다. 굳이 찾아보자면 두 가지가 있긴 하다. 하나는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이고 둘째는 그녀가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문소남의 이런 행동들은 원아로 하여금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상상을 하는 게 너무 김칫국을 마시는 짓인 거 같았다. 여자를 원한다면… 문소남의 주위에 넘치는 게 여자일 것이다. 보잘것없는 날 찾을 리가 없다. 이건 너무 비현실적이니까. …… 단지 밖. 원아는 평소처럼 길을 건너면서 주위를 살펴보고 있다. 그때 노란색 조끼를 입고 있는 청소 할아버지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바로 상자를 하나를 꺼냈다. 그는 잇따라 상자 하나 더 꺼냈다. 하나는 파란색이었고 다른 하나는 흰색이었다. 어젯밤에 훈아가 안고 있던 상자였다, 할아버지는 쪼그려 앉더니 상자를 열었다. 이때 단지 안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여자 두 명이 걸어 나왔다. “할아버지, 이거 할아버지가 주운 거예요?” 그중 25, 26살로 보이는 여자가 재빨리 다가가더니 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괜한 물건들을 주웠다고 생각했다. 이 옷들은 집사람이 입지 못하는 옷이었다. 그때 차 한 대가 원아의 곁을 지나갔다. 원아가 다시 쓰레기통 쪽으로 바라봤을 때 두 여자는 이미 할아버지와 얘기가 끝난 상태였다. 그들은 할아버지가 주운 물건을 사려고 했다. “4만 원이에요. 잘 챙기세요.” 돈을 준 후, 두 여자는 서로 바라보더니 할아버지 손에 들고 있는 상자를 뺏으려 했다. “잠시만요.” 원아는 걸어가 상자를 보더니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옷과 상자 다 제가 살게요. 200만 원 어떠세요?” 두 여자는 불친절한 눈빛으로 원아를 째려보았다. 어디서 오지랖 넓은 사람이 나타나서는! 원아는 불쾌한 시선을 받은 게 억울하지 않았다. 그녀들이 다가온 목적도 애초부터 우호적이지는 않았으니까. 문소남의 선물을 거절했기 때문에 이 물건들은 그녀의 물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물건들은 할아버지의 소유였다 Ralph Lauren의 옷은 직장을 다니는 여자들이 입을 수 있는 가장 비싼 옷이었고 여배우들도 그 옷을 자주 입었다. Tiffany의 다이아 브로치도 결코 저렴하지는 않았다. 다 합쳐서 못 해도 3,000만 원이 넘는 물건들을 고작 4만 원으로 이득을 보려고? 욕심이 너무 큰 게 아닌가…? “200만 원…?” 원아가 제시한 금액이 할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원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할아버지, 저희는 300만 원 드릴게요!” 먼저 돈을 준 여자는 또 한 번 원아를 째려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숙여 은행 카드를 찾더니 현금 인출하려고 했다. 할아버지는 아마 카카오페이도 모를 거 같다. “400만 원.” 원아는 믿기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짓는 할아버지의 눈을 보면서 말했다. “400만 원 드릴게요.” 할아버지는 ‘늙고 아는 게 없다고 나를 속이려고 건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짝퉁 아니야?” 여자는 은행 카드를 내밀고 있는 친구에게 말했다. ”사기꾼일 수 있잖아. 둘이서 짜고 우리의 돈을 뺏으려 하는 걸 수도 있어. 생각해 봐 동네 쓰레기통에서 명품 줍는 일이 흔하지는 않잖아.” 은행 카드를 꺼낸 여자는 곰곰이 생각 하더니 사기당 할 가봐 두려웠는지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네. 흥분해서 사기당할 뻔했어. 짝퉁일 게 뻔해!” 여자는 카드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들은 콧방귀를 뀌더니 자리를 떠나버렸다. 할아버지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누구보고 사기꾼이래! 줄줄이 나타난 당신들이 사기꾼이지! 너네 이 늙은이 돈 뜯어낼 작정이지!” …… 20분 뒤 원아는 할아버지 데리고 명품 가게로 들어왔다. 그녀는 영수증과 브로치를 건넸고 아주 쉽게 돈을 받게 되었다. 모든 일의 자초지종은 원아만이 알고 있다.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는 그저 큰돈을 갑자기 얻게 된 게 조금 얼떨떨했다. “저, 저기 이건….” “할아버지, 저는 사기꾼이 아니에요. 할아버지가 주운 물건은 할아버지 것이에요.” 어젯밤에 받지 않은 물건은 오늘도 내일도 똑같이 받지 않을 것이다. 명품은 아직 새 상품이고 영수증이 있는 한 되팔 걱정은 없었다. “살다 살다 돈벼락 맞는 날이 오다니!” 할아버지는 돈이 담긴 쇼핑백을 들며 울먹거렸다. 그는 두려우면서도 기쁜 말투로 말했다. “이게 제5년 치의 약값이에요! 나중에 다시 돌려달라고 찾아오는 사람은 없겠죠?” 원아는 없다고 그에게 대답했다. 그리고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의 다리를 바라봤다. …… 10시 반이 되어야 원아는 회사에 도착했다. 그녀는 오는 길에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눴다. 할아버지는 자식이 없었고 집사람이랑 서로 의존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 청소 미화원으로 일하게 된 그해에 운전 못 하는 젊은 남자한테 치여 다리를 다치게 되었다. 운전자는 도망쳤고 아직도 그 운전자는 찾지 못하고 있었다. 다리 수술비, 치료비와 그 후의 약값은 전부 할아버지 혼자 부담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죽을 생각도 했었지만 혼자 남을 집사람을 생각해서 계속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원아는 갑자기 문소남이 조금 고마워졌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몇천만 원이 사라진 것에 연연치 않는다. 하지만 이 돈은 힘든 삶을 살고 있는 할아버지의 삶을 바꿀 수 있었다. 문소남은 의도치 않게 남을 돕게 되었다. 지각을 한 원아는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회사에 들어오자 썰렁함이 느껴졌다. 연장 근무하는 사람 몇 명 말고는 사람이 없다. 원아는 그제서야 오늘이 토요일인 걸 눈치챘다…… …… 토요일 아침부터 부자는 한창 대치하고 있다 문소남은 검은색 레인지로버에 앉아 있었다. 검은색 셔츠를 입은 남자의 안색은 오늘따라 더 무서워 보였다. 그는 차 밖에 서 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 같이 안 갈 거야?” “안 가, 아빠는 나를 실망시켰어!” 문훈아는 통통한 손으로 가방을 꼭 끌어안았다. 훈아는 토라진 얼굴로 차 안에 있는 아빠를 보며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아빠 칭찬하고 사람들의 호감도를 좀 올려주려고 했는데, 뭐부터 칭찬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왜 그런지 알아? 왜냐하면 아빠는 장점이 하나도 없으니까! 성격도 더럽고 자상하지도 않고! 단점은 말하라면 많이 말할 수 있어!” 문소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는 아들에게 걱정거리가 생겼다고 느꼈다. 하지만 아이는 말 한마디를 더 보탰다. “계속 이러면 아빠 결혼도 못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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