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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그러나 온은수는 이내 들고 있던 펜을 멈추었다. 누구의 핏줄인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아이인데다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아이가 아닌가? 이럴거면 차라리 없애는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득 데자뷰처럼 떠오르는 생각 하나, 지난 번 강제적으로 차수현의 아이를 떼려 했을때 그녀는 발악에 가까운 반항을 했고 급기야 온은수랑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눈에 뵈는게 없었었다. 그런 그녀가 아이를 잃게 된다면 과연 그 아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 세상을 다 잃은듯한 차수현의 절망어린 눈빛이 자꾸만 떠올라 온은수는 차마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한참을 머뭇거리는 온은수에게 의사는 서명을 재촉했고 온은수는 급기야 손에 들고 있던 펜을 집어 던졌다. “살릴 수 있는데까지 어떻게든 살려보십시오, 나머진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온은수는 자리를 떴고 곧바로 육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육무진은 의사 집안 아들이고 특히 그의 어머니는 한 때 국내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였다.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라 다급하게 자신의 엄마에게 부탁드릴 일이 있다는 온은수의 말을 듣고 육무진도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이내 차수현이 입원한 병원으로 사람을 보냈다. 육무진이 보낸 사람들이 병원에 도착하자 온은수는 육무진의 엄마가 직접 수술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밖에서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실문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온은수를 보며 육무진은 문득 호기심이 발동했다. “은수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저 안에 있는 여자가 영감님이 안배로 맞이한 네 아내 맞지? 너 그 여자한테 전혀 관심없다며? 그런데 그새 애가 생겼어? 쥐도 새도 모르게?”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육무진의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에 온은수의 낯 색은 급기야 새파랗게 질렸고 불끈 움켜쥔 주먹은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당장이라도 관절뼈가 살을 뚫고 나올 기세였다. 방금 전 행동은 그저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에 불과했다, 정신을 차리고 돌이켜보니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고 우습다는 생각이 드는 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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