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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장

‘이럴 줄 알았어. 아까 유료용품에 관해서 묻는 것도 알면서 일부러 묻는 거라고 여겼겠지!’ 정라엘은 두 손으로 이불 모서리를 꼭 잡고 그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 남자를 볼 면목이 없으니까. 한편 강기준은 귀여운 그녀의 모습에 입꼬리를 씩 올렸다. 옆방의 소음은 계속됐고 데시벨이 점점 더 높아졌다. ‘대체 자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강기준은 참다못해 주먹으로 벽을 두어 번 내리쳤다. 쾅쾅하는 소리와 함께 옆방의 소리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그제야 강기준도 눈을 감았지만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젊고 혈기왕성한 이 몸이 지금 또 이런 환경에 처해있으니 도통 진정이 되지 않았다. 또한 정라엘이 바로 옆에 누워있으니 문득 그날 밤 서원 별장 침실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녀를 벽에 밀어붙였던 그 일이... 이때 옆방에서 또다시 신음이 울려 퍼졌다. 강기준은 짜증이 밀려와서 침대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제 막 옆방으로 찾아가려던 참인데 정라엘이 그의 옷소매를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뒤돌아보자 그녀가 머리를 빼꼼히 내밀고 발그스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방금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써서 빨개진 모양인데 두 눈은 또 머루알처럼 빛나고 있으니 한 입 꼭 깨물고픈 충동이 생겨났다. 정라엘은 그를 잡아당기고 불안한 말투로 물었다. “어디 가게?” 지금쯤 그는 충분히 화난 상태였다. 이제 곧 옆방에 찾아가 한바탕 난리 칠 것도 너무 잘 아는 그녀였다. 오늘 동굴에서 그녀는 이 남자가 싸우는 걸 처음 봤다. 이토록 고고한 남자도 화날 땐 섬뜩하리만큼 무섭게 돌변했다. 그녀는 강기준이 싸우는 걸 원치 않았다. ‘오늘 왠지 기준 씨가 기분이 별로인 것 같네? 나 때문인가? 나 때문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해서?’ 방금 그녀도 이 남자가 왜 자신을 구해주러 달려왔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아직 명의상 아내이니 방임할 수 없어서 그런 듯싶었다. 어쨌거나 강기준은 아주 훌륭한 사람이니까. 한편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의 모습을 본 강기준은 목이 타들어 갈 것만 같아서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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