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3장 해탈
나는 의식이 점점 흐릿해지는 걸 느꼈고 이렇게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에는 엄마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엄마도 없이 혼자 남게 되었다. 그러다 배진욱과 사랑싸움하면서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그 뒤로 강유정과 소성진도 함께하게 되었지만 정신적 지주가 없어 살든 죽든 별반 다를 거 없었다.
소성진이 내 귓가에 속삭이는 말을 듣고 나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너무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이라 내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사를 지내주지 않겠다는 말은 믿기지 않았다. 두 사람이 지내주지 않아도 내겐 오연희가 있다. 아버지 제사를 지내주며 내 제사도 같이 지내줄 거란 믿음이 있었다.
안민혁의 얼굴이 떠오르자 내 입꼬리가 더 세게 올라갔다. 얼핏 보아도 미신 따위는 믿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라 내 제사를 지내줄 리는 더더욱 없었다.
“환자의 혈압이 점점 내려가고 있습니다. 삶의 의지가 너무 없어요...”
이 목소리는 소성진이 데리고 있는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당황했는지 옆에 놓은 약병까지 쓰러트렸지만 나는 너무 피곤해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힘이 없었다.
그때 안민혁의 목소리가 귀에 전해졌다.
“약 가져왔어요. 얼른 투여해요.”
나는 무슨 약이든 이제 더는 쓰고 싶지 않다고, 이대로가 좋다고 말하고 싶었다. 살아도 좋지만 죽어도 딱히 미련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갑자기 누군가 따듯하게 내 손을 감쌌다.
“강희주, 죽기만 해봐.”
안민혁의 목소리는 강압적이었지만 어딘가 웃겼다.
‘죽기만 하지 않으면, 내가 뭘 더 할 수 있는데?’
하지만 나는 안민혁을 비웃을 힘도 없었고 그렇게 의식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정신을 다시 차려보니 온몸이 쑤시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익숙한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가득 메워서야 나는 병원에 다시 돌아왔다는 걸 느꼈다. 눈을 뜨자마자 무균복을 입은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란 나는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눈동자로 그가 누군지 알아보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오빠가 왜 여기 있어?”
특수 제작한 무균복인지 안민혁처럼 큰 키도 거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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