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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웃음거리

대학 졸업 후, 나는 능력 없는 남자친구를 차고 재벌 2세와 해외에 갔다. 2년 후, 재벌 2세에게 차여서 귀국했을 때 전남자친구는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갖은 수를 써서 나와 결혼했다. 사람들은 그를 바람피운 여자친구도 용서하는 희대의 순애보라고 했다. 그러나 결혼한 뒤 본색을 드러낸 그는 매일 같이 여자를 바꿔가며 내 속을 뒤집었다. 그러고는 왜 신경 쓰지 않냐고, 왜 질투하지 않냐고 다그쳤다. 그가 무슨 짓을 벌이든 난 덤덤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왜냐? 나는 시한부니까. ... 결혼 3주년 기념일, 배진욱은 유시은과 함께 바닷가에서 불꽃놀이를 했다. 나는 소파에 몸을 웅크린 채 재차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기계음이 또다시 들려온 순간 나는 완전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병원에 있었다. 의사는 나를 바라보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이는 것 같았다. 반대로 나는 세상 무덤덤하게 물었다. “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 의사는 형식적인 말로 받아 쳤다. “수술받고 정기적으로 항암치료 받으시면 얼마든지 건강해지실 수 있어요.”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봤다. “이미 두 번째예요. 또 재발한 거 맞죠?” 가슴팍은 아직도 아팠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최근 신약이 개발되었어요. 암세포를 억제하는 데 훌륭한 효과가 있지만... 주사 한 번에 1000만 원이에요. 수술이 끝난 다음 반년 정도 계속 주사하시면...” 의사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의사도 내 형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재연 그룹의 사모님이다. 하지만 지위와 통장 잔고는 전혀 상관없었다. 돈이 있었다면 병이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끌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며 옷매무시를 정리했다. “일단 수술 일정부터 잡죠.” 수술비 몇백만 원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목걸이를 매만지고 있자니,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집에 돌아간 다음 나는 일단 이웃 아줌마 이은정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은정은 잔뜩 속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니에요. 감사는 마루한테 해야겠어요. 마루가 짖지 않았다면 아무도 아가씨가 쓰러진 줄 몰랐을 거예요. 구급차가 빨리 와서 천만다행이네요. 아무리 젊어도 건강은 꼭 챙겨야 해요.” 마루는 내가 입양한 리트리버다. 배진욱은 나와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내연녀를 신혼집에 들였다. 내가 집에 있을 때도 야릇한 소리는 끊기지 않았다. 아니, 일부러 나한테 들려주려는 것처럼 쩌렁쩌렁 울렸다. 이를 배진욱은 복수라고 불렀다. “내가 그렇게 비는데도 기어코 떠나더니. 꼴 좋다, 강희주.” 그날 우리는 크게 싸웠다. 나는 넋이 나간 채 집에서 나왔다가 마루를 만나게 되었다. 병든 마루는 동물병원 앞에 버려져 있었다. 의사는 뭐라고 투덜대며 덩치 큰 마루를 안으로 옮겼다. 마루의 절망적인 눈빛과 마주친 순간 나는 심장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 나와 똑같이 병든 영혼이다. 죽고 싶지만 죽지 못하고, 살고 싶어도 살 수 없었다. 우리는 마찬가지로 버림받았다. 나는 금목걸이를 병원에 주며 마루를 꼭 좀 치료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마루가 나를 구해줬다. 꼬리를 붕붕 흔들며 다가온 마루는 내 다리에 얼굴을 비비적댔다. 꽤 신나 보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애써 울음을 참이며 마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줌마, 저... 당분간 입원해야 할 것 같은데 마루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은정이 키우던 골든 리트리버가 얼마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래서 나는 이은정이 내 부탁을 들어주리라는 자신이 있었다. 역시나 이은정은 흔쾌히 허락했다. 입원해서 치료 잘 받으라고 덕담도 해줬다. 마루가 이은정을 따라 떠나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시름이 놓였다. 적어도 내가 죽은 다음 마루가 갈 곳은 있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한 다음 더 큰 위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몇백만 원의 수술비도 마련하기 어려웠다. 배진욱의 씀씀이는 나름 괜찮았다. 옷, 가방, 주얼리 전부 최고급으로 사줬기 때문이다. 공적으로 나는 모자람 없이 지내는 재연 그룹의 사모님이다. 그러나 사적으로는 연회에 필요한 드레스조차 허락받고 입는 처지였다. 드레스를 입어야 할 때는 배진욱의 비서가 원격 조종으로 문을 열어줬다. 배진욱은 재연에 힘을 더한 적 없는 사람은 당연히 누릴 자격도 없다고 했다. 이제야 핸드폰을 확인하니, 회사의 어느 단톡방에서 어제 배진욱과 유시은의 관계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진심 아닐까요? 전에는 한 달만 만나고 헤어졌던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요! 이번에는 3개월이나 만났어요!] [어제 두 사람 바닷가에서 불꽃놀이 했대요. 정말 로맨틱하지 않아요? 시은 씨 다이아몬드 목걸이도 굉장했어요. 우리 사무실 오늘 조명 필요 없을 듯요.] [근데 어제 대표님 결혼기념일 아니었어요? 제가 결혼식에 참석했거든요. 기념일 맞는 거 같은데...] 나는 피식 웃었다. 생판 남도 기억하는 결혼기념일을 배진욱은 기억하지 못했다. 어제 나는 배진욱과 진지하게 얘기를 나눠볼 생각이었다. 어머니의 물건을 돌려받고 이쯤에서 헤어지려고 했다. 식탁 위 싸늘하게 식은 음식을 바라보다가 나는 몸을 돌려서 나갔다. 나는 이제 남편 따위 필요 없었다. 내가 필요한 건 오직 돈 뿐이다. 재연 그룹에 도착해 보니, 유시은은 동료들에게 둘러싸인 채 아부를 받고 있었다. “우리 대표님 시은 씨한테 너무 자상하다. 이렇게 큰 다이아몬드면 몇백만 원 하는 거 아니에요?” “이거 딱 보니 명품 브랜드 같은데요? 명품이면 적어도 몇천만 원은 해요.” 유시은은 득의양양해서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그래요? 제가 예쁜 것 같다고 하니까 대표님이 바로 사줘서 얼마 하는지도 몰랐네요. 비싼 건 싫다고 했는데, 저렴한 건 저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사무실 앞에 서서 그녀를 바라봤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닌가? 나는 몇백만 원의 수술비도 마련하지 못해서 곧 죽을 처지에 놓였는데, 배진호는 통 크게 몇천만 원이나 하는 목걸이를 내연녀에게 선물했다. 유시은은 나와 만난 적 없었다. 내가 빤히 바라보고 있던 것을 발견한 그녀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쪽 어느 부서에서 왔어요? 우리 회사 규정 몰라요?” 나를 알아본 동료는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렸다. “시은 씨, 저분 우리 사모님이에요. 강희주 씨요.” 당황한 것도 잠시 유시은은 금세 더 득의양양해서 목청을 높였다. “아하, 전에 학교 퀸카로 유명했다던 그 강희주? 그 사람이 왜 이렇게 됐대요? 퀸카는 무슨, 그냥 웃음거리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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