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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그녀의 말은 폭탄처럼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장수미와 장아진은 다급히 이선화에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이선화는 숨길 수 없다는 걸 알고서 집사를 향해 말했다. “그걸 가져오도록 해.” 식탁 앞에서 오직 김소정만이 덤덤하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녀는 정지헌의 결혼에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잠시 뒤, 집사가 서류를 들고 왔다. “도련님, 이걸 보시죠.” 정지헌은 그걸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헛웃음을 치면서 이선화에게 말했다. “제가 신지수랑 결혼하는 게 아무리 탐탁지 않으셔도 이런 장난을 치시면 안 되죠.” 이선화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난 아니야. 믿기지 않으면 네가 찾아봐.” “찾아보긴요? 전 구청에 간 적이 없는데 제가 누구랑 결혼을...” 잠깐. 구청? 정지헌은 싸늘한 눈빛으로 김소정을 보더니 서둘러 집사의 손에서 서류를 빼앗았다. 확인해 보니 그와 김소정의 이름과 정보가 적혀 있었다. 정지헌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김소정!” 김소정은 그의 고함을 듣고 깜짝 놀라서 손을 떨었고 그 바람에 젓가락이 식탁 위로 떨어졌다. “왜, 왜요?” 김소정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음침한 표정의 정지헌을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정지헌은 과격하게 그녀를 끌고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이거 네가 꾸민 짓이지?” 정지헌은 그녀의 얼굴에 서류를 던지면서 씩씩대며 테이블을 걷어찼다. 김소정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류를 주워서 보았고 그 순간 깜짝 놀랐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난 정지헌 씨 삼촌이랑 혼인신고 했어요. 난...” “어디서 연기를 해?” 정지헌은 그녀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분노 가득한 눈빛은 마치 그녀를 산 채로 찢어발길 듯했다. 김소정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를 달랬다. “화내지 말아요. 이혼하면 되잖아요.” “장난해?” 정지헌은 김소정의 멱살을 잡으면서 그녀를 노려보며 비아냥댔다. “치밀하게 계획해서 나랑 결혼한 걸 텐데 네가 어떻게 이혼하겠어?” “이혼하죠! 해요! 꼭 하자고요!” 김소정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애초부터 정씨 일가에 시집올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정지헌도 그녀를 싫어했다. 이 이해할 수 없었던 결혼 생활을 끝낼 수만 있다면 두 사람에게 다 좋은 일이었다. 정지헌은 천천히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김소정이 진지한 표정으로 결연히 말하는 걸 지켜보다가 갑자기 그녀를 바닥으로 밀쳤다. “헛수작 부리지 말고 지금 당장 나랑 법원으로 가.” 김소정은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요. 지금 바로 가요.” 김소정이 그보다 더욱 조급해하자 정지헌은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김소정은 대체 무슨 계략을 꾸미는 걸까? 일부러 이혼하고 싶은 척하는 걸까?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걸까? 이때 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던 휴대전화가 갑자기 울렸다. 정지헌은 전화를 받았다. “지헌 씨, 저, 저 신지수예요.” 정지헌의 표정이 살짝 부드러워졌다. “무슨 일이에요?” “잠깐 이리로 올 수 있어요? 우리 결혼 때문에 엄마, 아빠가 지헌 씨랑 얘기를 나누고 싶대요.” “알겠어요. 지금 바로 갈게요.” 김소정은 조용히 시선을 내려뜨렸다. 정지헌과 신지수는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듯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그와 이혼해야 했다. 그래야 둘 다 자유를 되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정지헌이 밖으로 나가자 김소정은 서둘러 그를 따라갔다. “일단 이혼 절차부터 밟아요.” 정지헌은 비아냥댔다. “급한 척 연기하는 거지?” 김소정은 말문이 턱 막혔다. 그녀는 화가 나서 말했다. “지금 바로 이혼해요. 이혼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개가 되는 걸로 해요.” 정지헌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앞에서 감히 그런 욕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기다려. 일단 나갔다 올 테니까. 돌아와서 바로 법원으로 가자고.” “굳이 돌아올 필요는 없어요. 먼저 법원으로 가서 기다릴게요. 빨리 와요. 직원들 퇴근하기 전까지는 꼭 와야 해요.” 김소정은 정지헌의 뒷모습에 대고 말했고 정지헌은 그녀를 비웃었다. 김소정은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간 뒤 서류를 주웠다.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다가 정지헌과 혼인신고를 한 걸까? 설마 직원이 실수한 걸까? 그럴 리는 없었다. 당시 정지헌은 그저 대리인이라고 확실히 설명했었기 때문이다. “소정아.” 바로 그때 이선화가 걸어왔다. 김소정은 서둘러 그녀를 소파로 부축했다. 비록 그녀는 정지헌에게 호감이 전혀 없었지만 이선화는 자애롭고 다정한 할머니였다. “소정아. 방금 밖에서 지헌이랑 이혼할 거라는 말을 들었어.” 김소정은 대답하지 않고 서류를 보여주었다. “이 일 알고 계셨던 거죠?” 서류는 이선화가 가져온 것이었다. 이선화가 전혀 놀라지 않는 걸 봐서는 처음부터 그녀의 혼인 신고 상대가 정지헌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예상대로 이선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내 뜻이다.” 김소정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왜요? 절 정준우 씨 액막이로 쓰시려던 것 아니었나요?” 이선화는 김소정의 어깨를 토닥이며 한숨을 쉬었다. “준우가 깨어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알 수 없어. 넌 착한 아이인데 내가 어떻게 널 과부로 만들겠니? 사실 지헌이는 겉으로만 사나워 보이지 사실은 착한 아이야. 걔는 닭 한 마리 못 죽여. 할머니는 너희가 오래 알고 지내다 보면 분명 서로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믿는단다.” 두 사람이 서로를 좋아하게 될지는 김소정도 몰랐다. 그녀는 다만 정지헌에 관한 기사 한 편을 기억할 뿐이었다. 어느 부잣집 딸이 술기운을 빌려 정지헌의 품에 안겼다가 그날로 아르헨에서 사라졌다는 기사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 집안에서 운영하는 기업도 하루아침에 파산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누구도 감히 정지헌을 건드리지 못했다. 그에게 흑심을 품은 여자들도 정말로 그의 침대에 기어 올라가지는 못했다. 당시 김소정은 그런 이유로 자신과 잔 사람이 정지헌이라는 걸 알고 그토록 두려워하고 걱정했던 것이다. 그저 자기 품에 안겼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집안까지 망하게 하는 사람인데 만약 잤다는 걸 알게 된다면 아마 산 채로 갈기갈기 찢어버리려고 할지도 몰랐다. 예전에 언론에서는 그의 성적 취향이 남다르거나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상대를 위해 순결을 지키는 거라고 보도한 적이 있었다. 김소정은 생각을 멈추고 이선화에게 말했다. “지헌 씨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 반드시 이혼해야 해요.” “지헌이가 널 강요할까 봐 걱정돼서 그러니? 걱정하지 마. 내가 있다면 절대 이혼할 수 없어.” 김소정은 그 말을 듣고 놀랐다. 이선화는 뭔가 오해한 듯했다. 김소정은 황급히 말했다. “제 뜻은 지헌 씨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저도 지헌 씨와 결혼하고 싶지 않으니 이혼하는 게 맞다는 뜻이었어요. 이혼하는 게 저에게도, 지헌 씨에게도 좋아요.” 김소정의 결연한 표정을 본 이선화는 깊이 한숨을 내쉬더니 품 안에서 서류를 꺼냈다. “우선 이걸 보고 고민해 보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이선화는 말을 마친 뒤 밖으로 나갔다. 김소정은 의아한 표정으로 서류를 펼쳐보았다가 안색이 달라졌다. 신씨 일가. “결혼식은 우리 아르헨에서 가장 큰 리조트에서 하는 게 좋겠어요.” “네. 두 분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결혼식장과 예물은...”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정씨 일가에서는 지수 씨를 위하여 가장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할 테니까요.” 신지수 부모님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양지민이었다. 정지헌은 급한 일이 있는 사람처럼 계속해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신지수 부모님은 비록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대놓고 불만을 얘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신지수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다가 갑자기 정지헌의 팔에 팔짱을 끼며 말했다. “우리 요즘 시간 있으면 같이 결혼사진 찍으러 가요.” “그래요.” 정지헌은 그녀의 팔을 풀고는 양지민에게 얘기했다. “양 비서, 내일 지수 씨 모시고 웨딩숍으로 가. 지수 씨가 마음에 들어 하는 웨딩드레스가 있다면 바로 구매해. 맞춤 제작으로 해도 좋아. 전 따로 볼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다른 요구가 있으시다면 제 비서에게 얘기해주시면 됩니다.” 마지막 말은 신지수 부모님에게 한 말이었다. 신지수 부모님은 정지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뻐끔거렸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언짢아한다는 것이 표정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양지민이 서둘러 해명했다. “대표님께서는 굉장히 중요한 볼일이 있으세요. 그러니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결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나요? 제가 보기엔 그냥 우리 지수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은데요.” 노수영이 원망스레 말했다. 양지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신기태는 정씨 일가에 미운털이 박힐까 봐 노수영에게 괜한 소리 하지 말라는 듯 눈치를 줬다. 신지수는 입술을 깨물면서 억울해했다. 다른 한편, 김소정은 불안한 표정으로 방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이제 30분 뒤면 법원 직원들이 퇴근할 것이다. 지금 그녀는 정지헌이 부디 다른 일을 보느라 이혼하는 걸 깜빡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사람 일은 원래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집사가 갑자기 휴대전화를 들고 왔다. “소정 씨, 도련님께서 찾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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