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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김소정은 죽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그녀는 집사를 향해 웃어 보였다. “저... 자고 있다고 해주세요.” 집사는 자애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스피커를 켜둬서 도련님께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김소정은 당황하더니 내키지 않는 얼굴로 전화를 건네받았다. “여보... 여보세요?” “자고 있다면서?” 남자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기 전의 고요함과 같은 목소리였다. 김소정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멋쩍게 말했다. “방금 깼어요.” “흥, 나 지금 법원 앞인데 어디 있어?” “저...” “10분 안에 법원 문 앞으로 와. 그러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 정지헌은 웃으면서 가벼운 어투로 말했지만 김소정은 그의 말에서 한기를 느꼈다. 김소정은 이를 악물고 힘겹게 말했다. “미안해요. 지금은... 갈 수 없어요.” “올 수 없다고? 하, 다리가 없는 사람만 올 수 없을 텐데.” 그 말은 지금 오지 않으면 두 다리를 부러뜨리겠다는 뜻이었다. 정지헌의 악마 같은 목소리와 싸늘한 살기가 전화 너머로까지 느껴졌다. 김소정은 손에 땀을 쥐면서 힘겹게 말했다. “사실 갑자기 문제가 좀 생겼어요. 일단... 돌아올래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해!” “지금은 이혼할 수 없어요.” “뭐라고?” 정지헌은 씹듯이 말을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 김소정은 손에 들린 서류를 보고 눈을 감은 뒤 다시 한번 말했다. “당장은 이혼할 수 없다고요.” “... 그래. 김소정. 딱 기다려!” 전화가 끊겼다. 김소정은 피곤한 얼굴로 소파 위에 앉았다. 정지헌은 그녀가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절대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쾅! 누군가 방문을 힘껏 걷어찼다. 김소정이 반응하기도 전에 정지헌이 살기를 띤 채로 그녀 앞에 도착했다. “감히 날 농락해?” 정지헌은 김소정의 멱살을 잡았다. 그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그의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가워서 무서웠다. 김소정은 고개를 저었다. “농락한 거 아니에요. 일단 이걸 봐요.” 정지헌은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녀가 건넨 서류를 쳐냈다. “헛수작 부리지 마. 어쩐지 흔쾌히 이혼하겠다고 하더니, 사실은 이혼할 마음이 없는 거였네. 김소정, 정말 역겨워!” 정지헌은 혐오스럽다는 듯, 마치 쓰레기를 보듯 김소정을 바라보았다. “네가 이혼하고 싶지 않아 해도 반드시 이혼해야 해!” “그만해요!”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죽게 될 거라는 생각에 김소정은 참지 않기로 했다. “내가 이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누가 그래요? 나보다 더 이혼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걸요?” 정지헌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소리 없이 코웃음을 쳤다. 김소정은 힘주어 그의 손을 뗀 뒤 서류를 주워서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능력이 좋으면 이 계약서부터 해결해요. 그러면 바로 이혼해 줄 테니까.” 정지헌의 시선이 그제야 서류에 닿았다. 이내 그의 미간이 한껏 구겨졌다. 곧이어 그의 검은 두 눈동자에 짙은 조롱과 경멸이 드리워졌다. “하, 겨우 계약서 따위로 날 묶어둘 수 있을 것 같아?” 그는 말을 마친 뒤 그녀의 앞에서 계약서를 갈기갈기 찢었다. “내가 널 얕봤어. 내 아이를 낳고 싶다고? 꿈 깨!” 김소정은 조용히 정지헌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정지헌을 좋아할 일은 아마 평생 없을 거로 생각했다. 이선화가 어느샌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갈기갈기 찢긴 서류를 보면서 덤덤히 말했다. “그건 복사본이야. 원본은 지장까지 찍었고 변호사가 보관하고 있어. 효력은 영구적이야. 서류에는 여자가 남자를 위해 아이를 낳아야 이혼할 수 있다고 적혀 있어. 그러니 이혼하고 싶다면 얼른 내게 증손주를 안겨줘.” 정지헌은 순간 온몸에서 살기를 내뿜었다. 그는 몸을 돌려 김소정을 바라보며 경멸에 찬 어조로 말했다. “수완이 대단하네. 감히 우리 할머니를 이용하다니.” “소정이랑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결정한 거야.” “할머니, 할머니는 사람이 얼마나 추악한지를 몰라서 그래요. 김소정이 그날 할머니를 구한 건 다른 목적이 있어서예요.” 김소정은 몰래 주먹을 움켜쥐었다. 억울함과 분노 때문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서, 가녀린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정지헌은 시선을 돌리며 차갑게 코웃음 쳤다. “내 아이를 낳은 뒤에는 아이를 이용해서 날 묶어둘 생각이지? 꿈 깨!” 말을 마친 뒤 그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씩씩대며 자리를 떴다. 김소정은 눈시울이 빨개졌지만 울지는 않았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문 채로 목석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선화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자애롭게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너희는 아직 서로를 잘 몰라서 그래. 지헌이는 어릴 때부터 한 우물만 파던 애였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진심을 다해서 잘해줘. 너는 착한 아이니까 지헌이는 분명 널 좋아하게 될 거야. 할머니는 믿어.” 김소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선화가 헛된 꿈을 꾸는 거로 생각했다. 정지헌이 그녀를 좋아할 일은 절대 없을 테니 말이다. 저녁이 되자 집사는 김소정을 데리고 2층으로 된 건물로 향했다. “앞으로는 여기서 지내시면 됩니다.” 그곳은 본관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고 환경도 좋았다. 가장 중요한 건 조용하다는 점이었다. 집사는 특별히 분부하지 않으면 도우미가 이곳으로 올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김소정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원래 조용한 걸 좋아했다. 그 건물에서 지내게 되자 김소정은 완전히 긴장이 풀렸다. 정지헌과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안방은 검은색, 흰색, 회색으로 된 심플한 스타일이라서 꽤 마음에 들었다. 옷장 안에는 그녀의 옷이 가득 걸려 있었고 욕실에는 새로운 세면도구가 배치되어 있었다. 모두 이선화가 사람을 시켜 그녀를 위해 준비해 둔 것이었다. 김소정은 앞으로 그곳에서 조용히 지낼 생각이었다. 이선화가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이 달라져서 서류를 찢어버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김소정은 기분이 좋아졌다. 밤. 고서준은 양쪽 옆구리에 여자를 끼고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우울해 보이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너 결혼했다며?” 정지헌은 옆에 있던 양지민을 노려보았다. 양지민은 코를 쓱 만지더니 구석에 몸을 숨겼다. “쯧쯧,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어떤 여자길래 네가 이렇게 일찍 결혼이라는 무덤에 들어가게 된 건지. 언제 한 번 소개해 줄래?” “꺼져!” “하하, 우리한테 보여주기 아깝나 봐?” 정지헌은 짜증 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의자에 두었던 정장을 챙겼다. “난 이만 돌아갈게.” “벌써 돌아가서 아내랑 있으려고? 아내한테 잡혀 사나 봐. 쯧쯧, 불쌍한 놈. 결혼해서 앞으로는 이렇게 나와서 놀 기회도 별로 없겠네.” “적당히 해.” 정지헌은 고서준이 입가로 가져갔던 술잔을 빼앗으며 코웃음을 쳤다. “그때 그 일이 없었다면 넌 나보다도 더 빨리 결혼했을 거야. 그러면서 날 비웃어?” 고서준은 정지헌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는 잠시 뒤 옆에 있던 여자를 갑자기 밀치더니 혐오와 경멸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꺼져!” 정지헌은 술을 꽤 많이 마셨다. 조금 전에는 괜찮았는데 집으로 돌아오니 바로 술기운이 올라서 머리가 지끈거리고 기분도 좋지 않았다. 그는 셔츠 단추를 풀고 생수를 한 잔 컵에 따른 뒤 컵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안방에 들어서자 물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눈빛이 확 달라지더니 곧바로 욕실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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