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집에 도착한 후 주강빈은 주차하러 갔고 신수아가 먼저 집안에 들어섰다. 한편 차유리가 잠옷 치마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서 군것질을 해댔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일부러 차유리에게 물었다.
“오늘 단체 미팅 있어서 집에 못 온다더니?”
차유리는 입꼬리를 올리면서 일부러 수줍은 척을 해댔다.
“그게 실은 있잖아요, 언니, 내가 남자친구랑 다퉈서 일부러 소개팅하러 간다고 걔 약 올린 거예요.”
“간다고 할 땐 신경 안 쓰는 척하더니 파티 나가자마자 곧장 쫓아오는 거 있죠.”
차유리는 일부러 목에 찍힌 키스 마크를 보여주며 도발하는 듯한 눈길로 신수아를 쳐다봤다.
“무슨 질투가 그리 많은지. 차에서 세 번이나 덮치는 거예요 진짜!”
신수아는 주먹을 꽉 쥐어서 손톱이 살을 파고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으면 고통이 온몸으로 퍼져 흐르는 기분이었다.
“언제 남자친구 생겼어? 왜 난 처음 듣는 얘기지?”
신수아가 숨을 깊게 들이쉬고 그녀에게 되물었다.
이에 차유리가 눈웃음을 지으면서 무심코 대답했다.
“3개월 됐어요.”
이 여자가 주씨 일가에 들어온 시간이 마침 3개월 전이다. 이 도시에 취업하러 왔는데 주강빈의 절친이 동생이 마음이 안 놓인다며 꼭 잘 좀 봐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다.
‘역시 이 집에 들어온 첫날부터 침대를 뒹굴었네!’
신수아는 숨이 점점 가빠졌다. 이제 막 뭐라 말하려 할 때 뒤에서 문득 주강빈이 그녀의 어깨를 다잡았다.
“수아야, 오늘 많이 힘들었지? 욕조에 물 받아줄게. 푹 씻고 일찍 자.”
그는 자상하게 말하면서 신수아를 욕실로 데려갔다.
옷을 벗으려던 찰나 갈아입을 옷을 챙기지 못한 게 생각났다.
다시 나가서 옷을 챙기려고 욕실 문을 열었더니 눈꼴사나운 광경이 펼쳐졌다.
주강빈이 숨을 헐떡이며 차유리의 치마에 손을 넣고 그녀를 소파에서 꼼짝달싹 못 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잘록한 허리를 꽉 잡은 채 그녀의 쇄골부터 시작해서 온몸에 키스를 퍼부었다.
차유리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신음을 해댔다.
“아... 아파... 살살해. 언니 아직 샤워 중이란 말이야! 아까 차에서 그만하면 됐잖아.”
주강빈이 더 격하게 밀어붙이자 차유리는 울먹이는 조로 신음했다.
“닥쳐!”
“두 번 다시 딴 남자 넘보기만 해봐!”
그녀는 사악한 미소를 짓더니 뭔가 발견한 듯 매혹적인 눈빛으로 시선을 올렸다.
이어서 문 앞에서 멍하니 넋 놓은 신수아를 도발하듯 쳐다봤다.
“알았어, 안 갈게. 나 이제 오빠 거야. 몸 구석구석 다 오빠 거니까 그만 질투해.”
“에잇, 질투쟁이! 못 말려 정말.”
신수아는 더 이상 쳐다볼 수가 없어서 갈아입을 옷을 챙기고 욕실 문을 닫았다.
물속에 머리까지 담갔지만 눈을 감으면 온통 방금 그 장면으로 차 있었다.
5년 전 하이섬에 신혼여행을 떠났을 때 해변을 거닐던 복근 남을 힐긋 쳐다봤다고 바로 정색하던 그 남자는 스위트룸에서 무려 7일 동안 신수아를 놓아주지 않았다.
7일 뒤, 딸기향 콘돔도 바닥이 나고 침대도 거의 무너질 지경이었다.
주강빈은 그녀를 품에 안고서 충혈된 두 눈으로 애원했다.
“수아야, 나도 복근 있으니까 딴 남자한테 한눈팔지 마. 넌 나만 바라봐야 해. 응? 제발!”
신수아가 연신 맹세하고 나서야 주강빈의 질투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날 뒤로 신수아는 다른 남자에게 눈길조차 안 줬다.
다만 지금 이 자식이 차유리에게도 똑같이 미쳐 발광하고 있다.
신수아는 물속에서 나오더니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욕실 문을 다시 나섰을 때 방안에는 주강빈만 남아 있었다.
과일도 예쁘게 썰어놓고 따뜻한 대추차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신수아를 보더니 재빨리 달려와서 대추차를 건넸다.
“날짜 세어봤는데 너 며칠 뒤에 생리더라. 미리 대추차 마시면 생리 때 배가 덜 아플 거야.”
신수아는 따뜻한 대추차를 건네받았지만 마음은 춥고 시릴 따름이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뻔뻔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이제 막 딴 여자와 몸을 뒹굴더니 곧이어 자상하고 애틋한 남편 이미지로 돌아오다니.
신수아는 이 문제만 생각하느라 밤잠을 설쳤다.
이제 겨우 잠들려고 할 때 옆에 있던 주강빈이 갑자기 외쳤다.
“수아야!’
그는 화들짝 놀라면서 옆을 더듬거리다가 신수아에게 손이 닿자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가지 마, 수아야!”
신수아는 몸이 움찔거렸다.
“왜 그래?”
주강빈은 두려움에 질린 채 두 눈이 벌게졌다.
“꿈을 꿨는데 네가 떠나가 버렸어. 꿈이길 다행이지. 넌 꼭 내 옆에 있어 줘야 해.”
신수아는 시선을 내리고 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맞아, 나 이제 곧 떠나.’
그 악몽 때문인지 다음날 주강빈은 기어코 그녀를 데리고 회사에 나가겠다고 고집했다.
신수아가 아무리 거절해도 이 남자는 허락할 때까지 애원했다.
이딴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그녀도 마지못해 함께 외출했다.
주강빈의 사무실에 왔더니 책상 위에 그녀의 사진을 떡하니 놓고 있었다.
멍하니 사진을 바라보자 주강빈이 백허그를 하면서 그녀의 보조개를 살짝 찔렀다.
“나한테 알짱대는 여자들 많았는데 이 사진 놓은 뒤로 훨씬 줄어들었어. 걱정 마, 난 워낙 자기관리가 투철하잖아.”
신수아는 시선을 내리고 아무 말이 없었다.
이때 마침 비서가 노크하며 회의가 곧 시작된다고 알렸다.
주강빈은 아쉬운 듯 그녀를 조금 더 안고 있다가 마지못해 회의하러 갔다.
“일단 좀 둘러보고 있어.”
신수아는 딱히 둘러볼 생각도 없고 그의 사무실에 남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매 층을 한 바퀴씩 돌아다니다가 점심 무렵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별안간 전화가 걸려왔다.
“신수아 씨, 이민 절차에 따라 본인이 직접 출석하여 서명해야 합니다.”
신수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뒤에서 문득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민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