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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그러니까요, 하늘 이모. 일은 저희가 같이 벌인 건데 그냥 옆에서 지켜보시면 안 되죠.” “정운아, 내가 나이가 얼만데......” 강수지는 장하늘의 말을 자리며 말했다. “거봐요, 장하늘 씨는 애초에 이 일에 손댈 생각이 없다니까요!” 말을 이어가며, 강수지는 손을 묶고 있는 밧줄을 풀려고 시도했다. 소정운은 강수지의 말이 일리 있다고 여기며 장하늘에게 칼을 넘겨주었다. “이모가 왼쪽을 긋고 제가 오른쪽을 긋는 걸로 하죠.” “그래. 네가 먼저 하렴, 난 쟤가 움직일 수 없게 붙잡고 있을게.” 장하늘은 동의했다. “좋아요.” 두 사람은 합의했다. 강수지의 손목은 빨개졌다. 하지만 밧줄은 느슨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장하늘은 강수지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제압했다. “가만히 있으면 그나마 덜 고통스러울 거야! 칼은 자비 없거든. 정운아, 얼른!” ‘희고 곱긴하네. 그러니 변섭 오빠를 유혹했겠지...... 오늘 다 갈기갈기 찢어버리겠어!” 소정운은 흉측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칼은 점점 가까워지더니 강수지의 뺨에 닿았다. 칼이 닿는 느낌은 차가웠다. “내 손에 조금이라도 힘이 들어가면 너의 고운 얼굴은 인젠 없는 거야......” 잔뜩 긴장한 강수지는 마른침만 삼켰다. “저, 정말로 이변섭이 무섭지 않아요?” “소씨 가문이 있는 한 변섭 오빠는 날 건드리지 않을 거야.” 말을 이어가며, 소정운은 칼질하려 했다. 일촉즉발의 순간, 중저음의 위엄있는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멈춰!” ‘이 목소리는......” 강수지는 기뻐하며 있는 힘껏 소리쳤다. “이변섭 씨, 구해줘요!” 타이어가 시끄러운 마찰음을 내며 다가왔다. 차가 제대로 멈추지도 않았는데 이변섭은 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정장을 휘날리며 다가왔다. 이변섭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소씨 가문 따위가 뭐라고.” 이변섭은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소씨 가문을 강남 바닥에서 사라지게 만들어줄 수 있지!” “변섭 오빠.... 악!” 이변섭은 발차기로 소정운을 차버린 뒤,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강수지에게로 다가갔다. 이변섭은 강수지를 품에 안으며 물었다. “다쳤어?” “아니요, 다칠 뻔했지만요.” 강수지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왜 함부로 돌아다녀? 이 씨 그룹이 너를 담아내기에 작았어?” “저......” 강수지는 차마 아르바이트 구하러 갔다가 장하늘과 소정운을 마주쳤다고 말할 수 없었다. 강수지는 말을 아꼈다. “변섭아, 네가 어쩐 일이야?” 장하늘은 미소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나 우리 며느리랑 장난 좀 치고 있었어.” 이변섭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난이요?” “그럼 그럼.” 이변섭은 바닥에 떨어진 칼을 주워 장하늘에게 던졌다. “그럼 지금 혼자서 한번 놀아보세요. 얼굴을 슥슥 그으면서.” “아니......” “그어보라고요!” “변섭 오빠! 왜 이 여자 편을 들어요?” 소정운은 화를 내며 말했다. “내 와이프니까.” 이변섭의 눈빛은 칼날보다도 더 차가웠다. “내 와이프 편을 들지 그럼, 네 편을 들어야 해?” 소정운은 질투 가득한 표정으로 강수지를 바라보았다. 강수지는 그녀만의 서러움이 있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이변섭이 이토록 화내는 이유가 다름 아닌 강수지를 괴롭힐 수 있는 사람이 이변섭 뿐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변섭은 강수지를 증오했고 괴롭히려 했다. 하지만 절대 남이 손대서는 안 되고 꼭 본인이 직접 해야 했다. 달콤해 보이는 이변섭의 말이었지만 그저 한 귀로 흘려보내면 될 뿐, 진지하게 여길 필요는 없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강수지는 순간 몸이 붕 뜨는 것을 느꼈다. 이변섭은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강수지는 깜짝 놀라며 저도 몰래 이변섭의 목을 안았다. 하지만 너무 다정해 보이는 스킨십인 것 같아 이내 손을 내렸다. “수지가 다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거야.” 무표정의 이변섭은 한없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소정운, 소씨 가문을 대신해서 내가 너 혼 좀 내줘야겠다. 너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집에서 반성해! 외출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 “장하늘!” 이변섭은 아예 장하늘의 이름을 불렀다. “올해에는 생활비 한 푼도 없어!” 장하늘에겐 가장 고통스러운 벌과 같은 말이었다. 이현철과 결혼한 뒤부터 장하늘은 사치스러운 생활에 익숙해졌다. 이현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녀는 달마다 이씨 가문 펀드 기금에서 4천만 원 정도의 생활비를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일 년 동안의 생활비를 끊는다니, 사치스러운 장하늘에겐 죽으라는 말과도 같았다. “그럴 순 없어! 그건 너의 아버지가 나한테 남긴 거야!” “그럼 2년.” “변섭아, 너......너!” “3년.” 이변섭은 말한 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장하늘과 소정운은 살길이 막막해졌다. 제경채에 돌아가니 집사는 강수지의 볼품없는 모습에 놀라며 물었다. “사모님, 무슨 일이......” “아무것도 아니에요. 보기엔 좀 이래도 사실은 안 다쳤어요.” 이변섭은 소파에 앉아 넥타이를 풀며 말했다. “안 다쳤다고? 그럼 손바닥은 왜 그런데?” 강수지는 이변섭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나한테 골칫거리를 만들어주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야?” 이변섭은 어두운 표정으로 강수지를 바라보았다. “내가 너를 위해 장하늘이랑 소정운한테 벌을 주니까 어때? 뿌듯하지?” “그런 생각한 적 없어요.” 강수지는 손사래 쳤다. 이변섭은 냉랭하게 말했다. “강수지, 아무도 너의 얼굴을 건드리지 못해. 찢어버린대도 내가 직접 해야 해.” 이변섭은 테이블 위의 과도를 쳐다보며 말했다. 강수지는 두려움에 몸을 움츠렸다. “왜 가만히 있어? 눈치도 없어?” 강수지는 하는 수 없이 두 손으로 과도를 이변섭에게 건네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오늘 잘못한 거 없어요......” “멋대로 돌아다닌 게 네 잘못이야.” 강수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이변섭은 곧 강수지의 하늘이었다. 강수지는 이변섭의 말을 따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차가운 칼날이 다시 한번 강수지의 얼굴에 닿았다. “강수지, 잘 봤지? 날 떠나면 너를 노리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다는 걸 말이야.” 이변섭은 칼끝으로 가볍게 강수지의 얼굴을 톡톡 건드렸다. “하지만 내 옆에 있으면 너를 괴롭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강수지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이변섭은 들고 있던 칼을 어느새 내려놓았다. 너무 오랫동안 억눌려 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래도 저래도 얼굴이 망가지는 건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강수지는 이변섭의 말에 반박했다. “날 괴롭히는 사람이 누구든 저는 다 반항할 수 있어요. 반격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당신한테만은 그럴 수 없어요!” “그건 네가 나한테 진 빚 때문이겠지!” ‘아뇨, 빚 진 거 없어요! 강씨 가문도 마찬가지고요!’ 강수지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부르짖었다. 칼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다. 조금만 더 힘주면 피부가 찢길 것이다. “따르릉-” 옆에 있던 전화기가 갑자기 급하게 울렸다. 이변섭은 전화를 받았다. “네, 할아버지.” “너 지금 당장 본가로 오거라.” 이 회장은 목소리를 높이며 호통쳤다. “지금 당장!” “무슨 일인데요.” “그리고 네 와이프도 함께 오거라!” 이 회장은 전화를 끊었다. 이변섭은 의미심장하게 강수지를 바라보았다. 강수지는 놀랐지만 애써 침착했다. ‘흥미롭군.’ “운 좋은 줄 알아.” 이변섭은 칼날로 강수지의 턱을 건드렸다. “이 얼굴은 일단 남겨두도록 하지. 할아버지가 피 범벅된 얼굴을 보면 놀라실 수도 있으니까.” “할아버지요?” “준비해, 나랑 같이 본가에 다녀와야겠어.” 이변섭은 다리를 꼰 채 말했다. “5분 줄게.” 강수지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가장 빠른 속도로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묶었다. 이씨 가문 본가. 그곳은 제경채보다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캐슬같은 곳이었다. 옛스러운 고즈넉함과 함께 산수가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장하늘은 강수지를 가리키며 새된 소리를 질렀다. “아버님, 왔네요, 왔어! 저 아이가 바로 강 선생님의 딸입니다! 어떻게 강 선생님의 딸을 와이프로 들일 수 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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