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강수지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창가 쪽 자리에 앉아있는 장하늘과 소정운이 보였다.
두 사람은 강수지에게 우르르 몰려왔다.
강수지는 더 머무를 이유가 없다고 느껴져 레스토랑을 나서려했다.
하지만 소정운은 그녀를 순순히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청소 아줌마, 잠깐만.”
소정운은 강수지에게 다가서며 그녀를 강제로 끌어다가 장하늘 앞에 세웠다.
“이모, 아까 뭐라고 하셨어요?”
“이씨 그룹 사모님이라고.”
“네!? 이 여자가... 변섭 오빠의 와이프라고요?”
장하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저번에 변섭이한테 국 가져다주러 제경채에 다녀왔을 때도 봤어. 틀림없다니까.”
그날 이변섭은 강수지의 편을 들며 장하늘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속 좁은 장하늘은 아직도 그 일을 마음에 두고 있었고 언젠간 복수할 생각이었다.
“악!!”
화가 치민 소정운은 비명을 질렀다.
“이 여자가 그 여우라고요?”
“그런데 정운아, 왜 저 여자를 청소 아줌마라고 부르니?”
“저 여자가 이씨 그룹 바닥 청소를 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봤어요.”
장하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정말이니?”
소정운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장하늘에게 얘기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기까지 했다.
“보니까 변섭 오빠는 저 여자를 도와주지도 않더라니까요!”
지금 이 상황은 강수지에게 아주 불리했다.
강수지는 애써 차분한 태도로 소정운의 손을 뿌리쳤다.
“사람 잘못 보셨어요.”
“그럴 리 없어! 너 맞잖아. 내 구두를 닦아주던 그 천박하던 그 모습, 내가 똑똑히 기억한단 말이야!”
“소정운 씨, 시간 날 때 안과라도 가보세요.”
말을 마친 강수지는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이번엔 장하늘이 강수지를 막아섰다.
“그래, 정운이가 사람을 잘못 봤다 치고, 나는 안 보이니? 나는 네 시어머니야. 인사도 안 해?”
“이모, 저 사람 잘 못 본 거 아니......”
장하늘은 소정운에게 눈치 줬다.
장하늘은 연륜의 노련함을 발휘하며 이 상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보아하니 사모님 자리만 차지했지 사랑을 전혀 못 받는구나! 안 그러면 어떻게 정운이의 구두까지 닦아줄 수 있지? 게다가 변섭이도 편 들어주지 않았다니!’
장하늘이 이씨 가문에 발을 들인 뒤로 이변섭은 장하늘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사사건건 장하늘에게 적대적인 태도였다.
그러니 장하늘이 볼 수 있었던 건 이변섭의 가식적인 연기였다.
“이렇게 마주치기까지 했는데 나랑 얘기도 좀 나눠야지.”
장하늘은 강수지를 자기 옆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아직 다른 일이 있어서요. 그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늘 이모.”
“지금 나한테 뭐라고 했어?”
“이변섭 씨...... 제 남편도 그렇게 부르잖아요.”
강수지가 답했다.
장하늘에게 사과했다는 이유로 강수지더러 스스로 자기 뺨을 때리라고 했던 일을 강수지는 잊을 수 없었다.
그 일만으로도 이변섭이 계모 장하늘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앞에서 기세등등한 것 좀 봐.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아나 봐.”
장하늘은 냉랭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변섭 오빠를 남편이라고 부르지 마요!”
강수지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데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계속 저를 붙잡고 이러시면 신고할 겁니다.”
정신병원에 있었을 때, 강수지는 건드리면 큰 일 날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썼다.
그래야만 자기를 건드릴 사람이 없을 테니까.
그 방법을 지금 장하늘과 소정운에게 써먹었는데 제법 잘 통했다.
강수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뜻밖에도 도로변까지 나왔는데 장하늘이 쫓아 나왔다.
그러더니 소정운과 합세해 양쪽에서 강수지의 팔을 붙잡고 차 쪽으로 끌고 가려 했다.
“이거 놔요!”
강수지는 행인들에게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장하늘은 웃으며 말했다.
“제 며느리인데요, 아들이랑 싸우고 이렇게 심술부리네요. 집으로 데려가려고 그러는데......”
행인들은 장하늘의 말을 믿고 그냥 지나쳤다.
강수지 혼자서 두 사람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녀는 그대로 차에 끌려갔다.
“뭘 믿고 이렇게 나대니?”
장하늘은 힘껏 강수지를 꼬집었다.
“오늘 아주 혼 내줄 거야!”
“감히 저를요? 변섭 씨가 알게 된다면 절대 당신들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강수지가 말했다.
소정운은 오만하게 말했다.
“변섭 오빠가 너 따위 청소 아줌마를 위해...... 우리 소씨 가문한테 미움 살 것 같아?”
“그러니까 말이야.”
차는 어디론가 급히 달렸다.
......
이씨 그룹 회의실에서 회의를 마친 이변섭은 시계를 확인했다.
“대표님, 점심 식사를 준비해 뒀습니다.”
범지훈이 말했다.
이변섭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물었다.
“걔는?”
“사모님...... 아..... 지금 연락해 보겠습니다.”
범지훈은 회사에서도 사람 좋기로 유명했다.
또 강수지는 이변섭의 와이프인 셈이기에 이변섭이 특별히 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범지훈은 강수지를 힘들게 하지 않고 그냥 쉬게 했다.
이변섭은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했다.
‘내가 왜 강수지를 불러야 해?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잖아! 보고 싶다고 해도 그 이유는 괴롭히기 위한 것뿐이야!’
“네, 대표님.”
범지훈은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얼른 강수지에게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변섭이 성질부리면 회사 전체가 다 벌벌 떠는 상황이 생기니 말이다.
범지훈은 둘러봤지만 강수지를 찾지 못했다.
CCTV를 확인해 보니 강수지는 3시간 전에 회사를 나섰다.
범지훈은 난색을 드러내며 이변섭에게 보고했다.
“대표님, 사모님이......”
“왜?”
“사라지셨습니다.”
‘또 사라졌다고?’
이변섭은 덤덤히 점심 식사를 이어갔다.
“도망 칠 용기는 없을걸.”
다리를 잃어도 상관 없거나, 부모님이 죽어도 상관 없거나.
이변섭은 강수지가 둘 중 해당 되는 게 없다면 도망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모님께서 안 보인지 세시간이 됐습니다.”
이변섭은 젓가락질을 멈췄다.
‘또 무슨 수작인 걸까?’
이변섭에게 있어서 강수지를 찾는 일은 쉬웠다.
곧바로 이변섭은 메일 한 통을 받게 되었다.
장하늘과 소정운에게 붙잡혀있는 강수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이변섭은 씨익 웃었다.
‘잘됐네, 마침. 죽고 싶어 작정이라도 했나보군!’
이변섭은 느긋하게 물을 마시며 말했다.
“차 대기시켜.”
“알겠습니다, 대표님.”
......
교외에는 소씨 가문 소유의 별장이 있었다.
차 문이 열리자 강수지는 흐트러진 모습으로 차에서 떨어졌다.
그녀의 두 손은 뒤로 묶여있었다.
“하하하, 강아지 같아.”
소정운은 강수지를 거만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왼쪽 얼굴부터 그어 줄까, 오른쪽 얼굴부터 그어 줄까? 어떻게 생각해?”
강수지는 가늘고 뾰족한 칼을 바라보았다.
“소정운 씨. 든든한 집안을 믿고 이러는 건 알겠는데요, 그리고 내가 어떻게 되든 이변섭 씨가 관심없다는 것도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내가 이변섭 씨 소유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변섭 씨는 남이 자기 물건에 스크래치 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거든요.”
이변섭의 강한 소유욕은 강남에서도 유명했다.
이변섭은 싫어하는 게 생기면 직접 망가트려야했고 좋아하는 게 생기면 누군가가 그것을 쳐다봐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소정운은 잠시 멈칫했다.
“아이고, 놀랄 것 없어! 얼굴이 징그럽게 망가져버리면 변섭이가 거들떠라도 보겠니? 당장 내쫓아버릴 거다. 그러면 정운이 네게 기회가 올 거야!”
장하늘은 소정운을 부추겼다.
소정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변섭 오빠와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은 저뿐이에요. 다른 여자들을 절대 가만 두지 않을 거예요!”
강수지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너...... 너 왜 웃어!”
“너무 멍청해보여서 웃음이 나네요.”
강수지가 말을 이어갔다.
“정운 씨, 지금 본인이 장하늘 씨한테 이용 당하고 있다는 거 모르겠어요? 자기 손엔 피 한 방울도 안 묻히고 나쁜 짓은 다 당신이 하도록 사주하고 발 빼는 거잖아요.”
“너 그 입 못 닥쳐?”
장하늘은 욕을 퍼부었다.
“왜요? 제가 너무 정곡을 찔렀나요?”
강수지가 유일하게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은 장하늘과 소정운 사이를 이간질 하며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강수지에 대한 이변섭의 소유욕은 어마어마했으니 지금쯤이면 강수지가 사라진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강수지는 이변섭이 나타날 순간만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