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쾅!" 이변섭은 휴대폰을 던져버렸고 눈가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당장 쫓아가! 멀리 도망가지 못했을거야!"
그날 밤, 제경채는 낮처럼 환했고, 수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강수지는 냄새 나는 하수도에 숨어서야 이변섭의 추적을 피할 수 있었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틈을 타, 산에서 내려와 아버지를 만나러 감옥으로 갔다
"아빠..."
"수지야! 너 아직 살아있었구나!" 수지 아버지는 흥분된 목소리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난 네가..."
"아빠, 아빠한테 물어볼게 있어서 왔어요. 이 회장님의 죽음은 도대체 어떻게 된거에요?"
"나도 모르겠어. 난 분명 약을 제대로 사용했는데! 수지야, 넌 아빠 믿지?"
"믿어요." 강수지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아빠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이였다.
그녀는 이변섭에게 빚 진게 없고, 속죄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 우릴 모함한거야. 하지만 이미 다 결론이 난 일이니 바꿀 수 없어..." 아버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강수지에게 "수지야, 너 자신을 잘 보호해야 돼."라고 말했다.
강수지는 수화기를 들고, 유리 맞은 편에 있는 아빠를 꿋꿋하게 바라보았다."아빠, 내가 꼭 증거를 찾아 아빠의 누명을 벗게 해줄게요."
감옥에서 나온 강수지는 어머니를 보러 병원으로 향했다.
그녀는 병원 입구에 다다르기도 전에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 서너 명을 발견했다!
강수지는 바로 몸을 숨겼다.
이변섭은 그녀가 무조건 병원으로 올거라고 확신하고, 일찌감치 병원 근처에 사람을 안배했다.
여기서 붙잡히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지옥과도 같은 처참한 생활일 것이다.
강수지가 경호원들을 어떻게 피해갈지 고민하고 있는데, 맞은 편의 큰 스크린이 갑자기 반짝이더니 강남의 경제 뉴스 화면으로 바뀌었다.
이변섭의 멋진 얼굴이 스크린 정중앙에 나타났다.
그는 검은색 셔츠를 입고 있었고, 이씨그룹 빌딩에 서 있었는데 강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는듯 웃지 않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기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 대표님, 연예계 사업에도 발을 담그실 계획이라고 하시던데, 소문이 진짜인가요?"
"이씨그룹의 인수 계획은 제시간에 마칠 수 있는건가요?"
"대표님, 어제 파파라치가 대표님께서 주민 등록센터에 가는 걸 찍었다고 하던데, 그곳에는 무슨 일로..."
이변섭은 고개를 살짝 들어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결혼하러요."
이 한마디는 현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 대표님이 직접 결혼한 사실을 인정하다니!
이씨 가문의 사모님은 어떤 분이시길래, 강남 제일 재벌가 계승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인가!
카메라는 계속해서 줌인을 했고, 이변섭은 마치 밤하늘처럼 어둡고 깊은 눈으로 카메라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바로 이변섭의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컷 놀았으면 이제 집으로 돌아올 때도 되지 않았나? 이 사모님?."
듣기에는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말투였으나,
강수지는 그가 지금 그녀에게 경고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입가에 번진 미소를 본 그녀는 온 몸에 한기가 감도는 것 같았고, 마치 그가 지금 바로 눈 앞에 있는 것 같았다.
이변섭이 돌아서자 경호원들이 기자들을 전부 막아나섰다.
미디어를 통해 강수지에게 말을 전할 생각이 아니였다면 이변섭은 이런 인터뷰 따위에 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같은 시각, 강수지는 간호사 몇명이 병실 침대를 구급차 옆까지 옮겨 환자를 이동하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사람은 바로 그녀의 어머니였다!
엄마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지!
"엄마!"
강수지는 본인이 노출되건 말건 바로 뛰어갔다.
그녀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엄마, 내가 불효자식이야, 이제야 엄마를 보러 왔어..."
그녀는 이미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였다.
"사모님, 이건 대표님의 명령입니다. 막지 말아주십시오."
"저 도망가지 않을게요, 지금 바로 집으로 갈게요!" 강수지는 간절히 빌었다. "제발 엄마를 저에게 돌려줘요..."
하지만 강수지는 엄마가 다른 곳으로 이동되는 걸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이변섭은 그녀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대충 찔러도 그녀를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할 수 있었다.
반 시간 뒤,
대표사무실.
이변섭은 창가 앞에 서 있었고, 그의 손에는 아직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가 쥐어져 있었다.
"대표님, 사모님 왔어요." 비서 범지훈이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강수지가 창백한 얼굴을 하고 걸어 들어왔다.
이변섭은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고 "돌아오는 건 안 까먹었나 보네?"라고 말했다.
"내 엄마는 놓아줘요." 그녀는 비굴한 태도로 말했다. "나한테 뭘해도 좋으니 엄마는 건드리지 말아줘요."
"네 엄마를 건드릴 생각은 없었어. 강수지, 이게 다 네가 너무 말을 안 들어서 일어난 일이야."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이변섭은 눈을 살짝 치켜 뜨고는 "사과 한마디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강수지는 손톱이 살에 박힐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다시는 도망가지 않는다고 약속해요."라고 말했다.
어차피 그녀는 이변섭의 손바닥 안에서 도망칠 수 없다. 부모님의 생사가 모두 그의 손 안에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강수지는 오직 그의 옆에 남아 있어야만 이현철의 죽음의 진실을 밝혀 아버지의 누명을 벗길 수 있다!
이변섭이 손가락을 까닥까닥하자 그녀는 순종적으로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그녀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른쪽 다리를 부러뜨리는게 좋을까? 아니면 왼쪽 다리를 부러뜨리는게 좋을까?"
그는 가장 부드러운 말투로 가장 섬뜩한 말을 내뱉었다.
강수지는 다리에 힘이 빠졌고 너무 겁이 나서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이변섭은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꽉 잡고 "다음엔 내가 직접 다리를 부러뜨려 줄거야!"라고 말했다.
그는 콧방귀를 뀌며 그녀를 놓아주었고 소파에 여유롭게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강수지는 반쯤 꿇어앉아 라이터를 켜고 그에게 불을 붙여주려고 했다. "이 대표님."
하지만 그는 한참이나 움직이지 않았다.
라이터의 온도가 점점 높아져 아주 뜨거워졌으나, 강수지는 이변섭이 화를 낼가봐 감히 라이터를 놓지 못했다.
너무 뜨거워 그녀의 손에는 물집이 잡혔고, 공기 중에도 타는 냄새가 났다.
그제서야 이변섭은 몸을 숙여 담배에 불을 붙였다.
"네 어머니를 구하고 싶다면 날 기쁘게 할 만한 일을 해봐." 이변섭은 그녀에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남자를 즐겁게 하는 법은 알고 있나?"
강수지는 담배 연기 때문에 연달아 기침을 했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 모습이 이변섭의 기분을 즐겁게 했다.
마치 그녀가 그의 애완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의 웃음이 사라지기도 전에, 강수지가 갑자기 발끝을 살짝 들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이런 방법이 그를 즐겁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녀는 남녀 사이의 일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변섭은 눈 앞에 있는 여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너무 긴장해서 속눈썹이 살짝 떨렸고, 입술은 아주 말랑말랑했으며 그런 자신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끄는지 몰랐다.
그는 바로 느낌이 왔다.
하지만 이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니였다. 강수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딸이다!
"꺼져."
이변섭은 혐오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밀어냈고, 얼굴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
강수지는 조용히 바닥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더 비참한 것은 그녀가 사무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범지훈이 그녀에게 말했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청소팀에 인력이 부족하다고 하셔서..."
"범 비서님, 알겠어요. 저 지금 바로 갈게요."
그녀는 청소부로 일하는 것이 이변섭의 곁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다.
범지훈은 멀어져가는 강수지의 뒷모습을 보고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표님이 진정한 사랑을 만나 이렇게 빨리 결혼한 줄 알았더니, 사모님의 지위가 이렇게 낮을 줄이야.
"대표님," 하루 업무에 대해 보고를 마친 범지훈이 "사모님의 어머님이 병원을 옮기는 건..."이라고 말을 이어갔다.
"최고의 의사를 배정해 치료해주도록 해."
범지훈은 깜짝 놀랐다.
"귀가 멀었어?"
"알겠습니다, 대표님."
이변섭은 무표정한 얼굴로 "강수지한테는 알리지 마."라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하는 건 단지 강수지를 더 잘 통제하기 위해서이다.
그녀의 어머니를 장악하고 있는 한, 그녀는 그의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변섭은 가죽 시트에 기대어 앉아, 별 생각없이 CCTV 화면을 켰다.
화면 속의 강수지는 청소부 옷을 입고 대걸레와 물통을 들고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정신병원에 있는 2년 동안, 이변섭은 가끔 감시 카메라를 켜고 그녀를 관찰하곤 했다. 그는 그녀의 처참한 상황으로 자신이 아버지를 잃은 아픔을 위로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빗나갔다.
강수지는 처음에는 아주 처참했으나, 얼마 안되어 바로 생존방법을 찾았고 천천히 적응해 나갔다.
지저분하고 미친 다른 사람들과 달리, 강수지는 항상 깔끔하고 정결했으며, 마치 흙탕물에서 피어난 연꽃 같이 맑고 우아했다.
만약 아버지의 원수만 아니였다면... 이변섭은 그녀에게 호감을 가졌을 것이다.
전원을 끄려는 순간, 화면에 갑자기 또 다른 여자가 나타났다--
소정운.
그녀는 이변섭의 명의상 약혼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