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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밤 9시에 허진우의 환영회 있는데, 올 거야?] 친구 조하영의 메시지가 도착했을 때, 주아린은 작업실에서 야근 중이었다. 설계도 한 장을 대여섯 번이나 고치고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까다로운 고객 덕에 보름 동안 내내 야근을 하고 있던 주아린은 휴대폰 화면을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 ‘그 사람이 돌아왔다고?’ 기쁨을 채 느끼기도 전, 그녀는 휴대폰을 뒤적였다. 하지만 허진우에게서는 문자 한 통, 연락 하나 없었다. 며칠 동안 너무 바빠서 소식을 보지 못한 줄 알았던 그녀는 뒤늦게서야 아무도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린아, 나쁜 소식이 하나 더 있어. 그 자리에 남서희도 와.] 조하영이 또다시 문자를 보냈다. 주아린은 한참을 바라보다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그가 돌아온 것도 자신은 마지막으로 알게 되었다. [재밌게 놀아, 나는 안 갈래.] 주아린은 조하영에게 답장을 보낸 뒤 문을 닫고 작업실을 나섰다. …… 자정이 넘어서야 유원 별장으로 돌아온 주아린은 곧바로 씻고 잠에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허진우가 돌아왔고 잠귀가 밝은 주아린은 밖에서 기척이 들리자 잠에서 깼다. 술 냄새에 전 허진우는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단추 두어 개 풀린 셔츠 아래로 흰 피부가 드러났다. 그 아래로는 은근한 게 가슴 근육이 비칠 듯했다. 허진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선이 분명하고 단단한 이목구비, 연기를 내뱉을 때 움직이는 목울대는 금욕적이고도 매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왔어?” 주아린의 목소리에 허진우는 느릿하게 두 눈을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짧게 응하고 대답하며 주아린을 쳐다보는 허진우의 눈빛은 마치 낯선 사람을 보는 듯 차갑기 그지없었다. 주아린이 걱정을 하며 물었다. “왜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많이 마셨어. 위도 안 좋으면서. 다음에는 이렇게 많이 마시지 마. 응?” 그런 뒤 그녀는 주방으로 가 꿀물을 타왔다. 최진우는 건네받는 대신 테이블을 가리키며 놓으라고 눈짓했다. “진우야….” 허진우는 손을 들어 미간을 꾹꾹 눌렀다. 얼굴의 윤곽이 빛에 가려져 날카롭게 보였다. “이혼하자.” 그녀의 말에 주아린은 심장이 저릿해졌다. 잘못 들었다는 생각에 마른침만 꿀꺽 삼킬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산 분할에서 서운한 일 없게 할게. 다른 조건 있으면 말해도 되고.” 주아린은 아주 담담했다. 그저 호흡만 조금 흐트러진 채 입을 열었다. “바라는 거 없어.” “없어?” 허진우는 그 말이 별로 믿기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쳐다봤다. 주아린은 조용히 대답했다. “응.” “나한테 더 할 말 없어?” “없어.” 주아린은 표정도 목소리도 아주 평온했다. 자신이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그 평온함에 허진우는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어 입을 열었다. “울고불고 난리일 줄 알았는데.” “안 그래.” 억지로 이어진 인연은 좋을 게 없다는 걸 그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마음이 없는 남편 옆에 있는 건 너무 비참해 그녀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왜인지, 그녀는 허진우와 결혼을 하던 그날부터 이런 날이 올 거라는 직감이 들었었다.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지만. 3년의 결혼생활은 이렇게 간단하게 끝났다. “이혼 서류는 김 변호사보고 내일 보내라고 할게. 무슨 문제 있으면 변호사랑 얘기해.” 주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른 얘기는 더 하지 않은 채 허진우의 안색을 본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꿀물을 그의 앞에 놓은 뒤엔 온화하게 말했다. “그래도 앞으로는 이렇게 많이 마시지 마.” 말을 마친 그녀는 방으로 들어간 뒤 문을 닫았다. 이내 밖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허진우가 떠난 것이다. 주아린은 이를 꽉 깨물었다. 가슴에서 둔통이 느껴졌다. 목에 무언가 턱 걸리기라도 한 듯 호흡마저 힘들어졌다. SNS를 열어보니 허진우의 몇몇 친구들이 올린 사진들이 보였다.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방금 전 자신에게 이혼을 이야기한 남편과 젊고 예쁜 여자였다. 그 여자는 바로 남서희로 허진우의 가장 어두웠던 소년 시절의 구원자였다. 그리고 자신은 그저 빈틈을 노려 그 자리를 차지한 사람일 뿐이었다. 이제 주인이 돌아왔으니 자신은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고 떠날 때가 되었다. …… 이튿날, 이혼 서류를 주아린은 작업실에서 받았다. 서류는 보지도 않은 채 서명란에 사인부터 하는 주아린에 변호사가 물었다. “사모님, 확인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만약 서류에….” “호탕한 사람이니 제를 속일 사람이 아니죠. 설령 정말로 절 함정에 빠트리려고 한다고 해도 당신네들 그 큰 기업의 법무팀을 저 혼자서는 이길 수도 없고요.” 주아린은 서류를 돌려주며 한 마디 귀띔했다. “변호사님, 전 이제 사모님이 아니에요.” 변호사는 별다른 말은 없었다. 되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임무를 완성한 변호사는 약간의 사담을 나눈 뒤 일어나려 했다. 그리고 그가 떠나려는데 별안간 주아린이 그를 불렀다. “잠시만요.” “네, 말씀하세요.” 주아린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저 며칠 뒤에 출장 가야 하는데, 내일 모레에 이혼 절차 밟을 수 있냐고 대신 물어봐 주실래요?” “이렇게 급하게요? 그건 저도 확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대표님께선 말씀 없으셨거든요.” 변호사는 조금 놀랐다. 대체 이혼을 서두르는 게 누구인지, 주아린은 허진우보다도 더 급해 보였다. “그럼 죄송하지만 저 대신 물어봐 주세요.” “네.” …… 다시 허진우와 만났을 때는 이혼 절차를 밟기 위해 법원에 왔을 때였다. 시간이 촉박한 듯, 허진우의 휴대폰은 한시도 쉬지 않고 내내 울렸다. 주아린은 조용히 기다릴 뿐 불필요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허진우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통화가 끝난 뒤에야 부드럽게 물었다. “서류들은 이미 준비됐어. 사인만 하면 돼.” 허진우가 통화를 하는 사이 이미 번호표를 받은 그녀는 서류를 제출했다. 오늘 무슨 날이라도 되는 듯, 옆쪽에 결혼하는 부부들은 많았지만 이혼하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주아린이 흘러내린 머리를 넘기자 온화하고 단정한 얼굴이 드러났다. 오늘 그녀는 옅게 화장을 했고 붉은색의 선연한 색의 굴곡진 몸매가 잘 드러나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허진우의 시선이 그녀의 몸쪽으로 잠시 멈춰 있었다. 전혀 알아채진 못한 주아린이 고개를 돌렸을 땐, 허진우는 소리 없이 시선을 옮긴 뒤라 더더욱 알아챌 일 없었다. “받으세요, 두 분. 이혼 완료 서류입니다.” 직원이 건네는 서류를 받아 든 주아린은 자신의 몫을 가방에 넣었다. 결혼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었다. 법원에서 나온 두 사람, 허진우의 차는 길가에 세워져 있었다. 허진우는 고개를 돌려 주아린을 쳐다봤지만 주아린이 한발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 허진우가 대뜸 물었다. “이렇게 가려고?” 주아린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그를 흘깃 쳐다봤다. 허진우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허진우는 외모가 아주 출중한 편이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눈에 띄는 존재였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익숙한 듯 사람들의 시선은 무시한 허진우는 그윽한 눈동자라 붉은 치마를 입은 여자를 보며 말했다. “진짜 아무 요구 조건도 없는 거야?” “응?” 주아린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나중에 귀찮게 굴까 봐 그래? 걱정하지 마, 그럴 일 없어. 당신이 진짜 사랑을 만나게 된 걸 진심으로 축하해.” 허진우가 막 입을 떼려는데 별안간 휴대폰이 울렸다. 안 그래도 일정이 있었고 바쁜 와중에 이혼도 겨우 짬을 내 처리하러 온 것이었다. 허진우는 주아린이 이렇게 이혼을 서두를 줄은 몰랐다. 당장이라도 다음 사람을 만나러 갈 기세였다. 주아린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할 말은 이미 다 했다. 이내 차가 도착했고 주아린은 차를 타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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