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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박태성은 넋을 잃고 말았다. 그를 챙겨 주고 잘해주고 싶다고 말한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지만 웬일인지 웃지는 못했다. 그제야 온채원을 오해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싸늘했던 눈빛도 서서히 누그러졌다. 이때, 은은한 향기가 콧속으로 파고들었고 마치 비누 향과 분유 향이 섞여 있는 느낌인데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며 졸음이 슬슬 몰려왔다. 그가 졸리다니...? 어젯밤에 안정을 찾았던 이유도 설마 이 향기 때문인가? 이내 안성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주머니는 먼저 가보세요.” 그녀는 우물쭈물하다가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온채원을 흘긋 쳐다보았다. 그리고 감기약을 찾아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자리를 떴다. 박태성은 굳은 얼굴로 욕조에서 빠져나와 무심하게 말했다. “꼬맹아, 옷 갈아입고 내 방으로 와.” 찬물에 잠긴 온채원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었고, 목소리마저 달달 떨렸다. “태성 씨 방에는 왜요? 그리고 저는 꼬맹이가 아니라 온채원이라는 이름이 있거든요?” “내 인내심이 바닥나기 전에 움직이는 게 좋을 거야.” 박태성은 자연스럽게 명령조로 말했다. 그리고 온채원이 대답하기도 전에 축축해진 옷을 입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남자가 나가자 온채원은 입을 삐쭉 내밀었고, 마치 잔뜩 삐진 한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연상케 했다. 그녀는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곧이어 얼굴을 토닥이며 기운을 차리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채원아, 힘내. 괜찮아. 넌 은혜를 갚으러 온 거야. 이 정도 고생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내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말리고 나서 안성자가 테이블에 올려둔 감기약을 먹었다. ‘대체 방에는 왜 오라고 하는 거야!’ 설마 계속해서 그녀에게 골탕을 먹이려는 건가? 온채원은 망설이다가 결국 2층으로 향했다. 골탕을 먹이는 게 뭐 대수인가? 그녀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박태성의 방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결국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번에는 허락 없이 쳐들어간 게 아니라 박태성이 오라고 해서 왔을 뿐이다. 방으로 들어서자 침대에 기대어 앉은 박태성을 발견했고, 눈을 감은 모습은 마치 자는 것 같았다. 온채원은 아이러니했다. 평소에는 여유만만하고 제멋대로인 느낌이라면 잠이 든 지금이야말로 오히려 더 포악하고 사나운 기운을 풍겼다. 보통은 잘 때 평온하고 차분하기 마련일 텐데... 하지만 어디까지나 호기심에 불과했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곧이어 눈을 번쩍 뜬 박태성은 무시무시한 아우라를 뿜어냈다. 온채원은 머릿속으로 지난번에 곤히 잠들었을 때 가까이했다가 된통 당한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잽싸게 뒤로 피하며 외쳤다. “저예요! 잠깐, 스톱!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성질이 너무 더러운 거 아니에요? 태성 씨가 들어오라고 했잖아요.” 박태성은 험상궂은 표정을 풀고 그윽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성질이 더러워? 그게 무슨 말이지?’ 곧이어 무언가를 참는 듯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리 와.” 온채원은 잔뜩 경계하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왜요?” 박태성은 또다시 잠이 솔솔 오는 냄새를 맡게 되자 목이 살짝 잠겼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얘기할게. 이리 와.” 온채원은 채찍보다 당근에 약한 사람이다. 그리고 몰래 눈을 흘기더니 뒤돌아서 떠나려고 했다. 시도 때도 없이 그의 인내심에 도전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뒤를 봐주고 있는 이상 속수무책이었다. 박태성의 말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우린 결혼했잖아? 원래 부부는 같이 자는 거야.” 온채원은 멈추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가더니 고개를 돌려 박태성을 노려보았고, 발끈하며 반박했다. “아저씨, 어리다고 무시하지 마요. 각방 쓰는 부부도 있거든요?” 아저씨라는 호칭에 박태성은 이마에 핏대가 불끈 섰고, 어조가 더욱 싸늘해졌다. “난초를 망가뜨리지 않았나?” 온채원의 발걸음이 비로소 우뚝 멈추었다. 그리고 태도마저 한풀 꺾였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배상할게요.” “언제?” “나... 나중에? 필요하면 차용증도 써줄 수 있어요.” 온채원은 떳떳할 수가 없었다. 남의 돈을 빚진 상황에서 어찌 큰소리치겠는가? 박태성은 침대에서 일어나 종이와 펜을 꺼내 무언가를 끄적이더니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차용증인 줄 알고 건네받은 온채원은 확인해보니 계약서였다. 내용은 하룻밤을 같이 자면 난초는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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